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였다. 여자 검사라고 하면 1970년대까지는 있지도 않았다. 검사는 남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다. 판사나 변호사도 여자가 한다면 극히 드문 일로 알았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제는 여성 검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늘었다. 그렇게 보면 성 평등이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검사가 된 여성이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남성들이 독점하던 직업에 엘리트 여성들이 진출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해서 성 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여성에 대한 차별과 성적 학대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사실 성추행이 우리 사회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직장 내에 얼마나 성추행, 성희롱이 만연해 있는지는 눈을 감고 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문제가 대학에서, 예술계에서 문제가 된 지 오래 이고, 심지어 그런 점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해 왔던 시민단체, 노조 등 진보진영에서도 적지 않게 있어 왔던 일이다. 그런데 이번 성추행 폭로가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이유는, 그 조직이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등 성적 범죄를 조사하고 처벌해야 하는 검찰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도둑놈에게 도둑질의 조사와 처벌을 맡겨 왔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사실 검찰이 성범죄의 문제에서 결코 깨끗하지 않은 조직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같은 조직원들을 대상으로도 버젓이 벌어지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불이익까지 주었다는 사실이 피해자에 의해 적나라하게 밝혀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이 왜 지금 터져 나왔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서지현 검사는 피해자가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을까를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의식했든 안 했든 이 문제가 지금 터진 것은 바로 그 가해자들이 몰락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구체적 당사자인 안태근이 돈봉투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점도 그렇지만 그를 비롯한 검찰 내 적폐 세력들이 청산의 대상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문제가 바로 적폐 그 자체이며, 이 문제를 적폐 청산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단지 검찰 내의 문제로, 혹은 특정인의 문제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검찰 조직 나아가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성범죄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척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좀 더 나아가 보자.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의 고통을 당해야 했던 이른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해 보자. 그 최초 폭로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왜 거의 반세기나 지난 1991년에야 그 사실을 증언했을까? 그것은 불완전하나마 민주화가 시작되던 1987년 이후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아마도 일본군‘위안부’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이승만 정부 때나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때 있었다면 죽임을 당하거나 그에 준하는 탄압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전쟁 기간 양민학살을 4.19혁명 이후의 민주화된 시기에 폭로하고 처벌을 요구한 사람들이 박정희 군사독재에 의해 사형 등의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므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폭로와 그에 대한 진상규명 및 사과요구를 위한 투쟁은 우리의 민주화가 이루어낸 성과 중 하나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모든 민주화 성과를 뒤집어 버리려고 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위안부’ 합의를 일본과 졸속적으로 처리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성범죄의 문제는 다른 적폐들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그것은 직접 가해자만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거나 외면하는 주위 사람들 역시 간접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자. 주인공 나옥분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출신이지만 신고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미국에 사는데 누나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딸을 위로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는커녕 그것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반세기 넘게 침묵 속에 보내게 한 것이다.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그들의 선조인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직접적인 가해자라면 그들의 만행을 알면서도 피해자를 외면하고 냉대했던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간접적인 가해자였다는 점을 이제라도 자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외세에게 짓밟히고 동족에게 버림받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살아온 것이다.

이러한 간접 가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맞먹을 만큼 길겠지만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사례로 보아도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냥년의 역사를 보자. 화냥년의 어원은 환향녀(還鄕女)로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의해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일컫는 말에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외세에 의해 끌려가서 온갖 고초와 수모를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냉대하고 마치 그 사람들에게 커다란 잘못이라도 있는 듯이 대하다가 마침내 ‘화냥년’이라는 말까지 생긴 것이다. ‘화냥년’은 행실이 좋지 않은 여자를 가리키는 비속어이다. 우리가 잘 아는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보자. 옥희 엄마는 옥희를 위해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 까닭을 옥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략) 옥희두 아빠가 없는 건 아니지. 그저 일찍 돌아가셨지.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중략)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아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재혼을 한다는 것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인지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것을 욕하면서 왜 ‘화냥년’이라는 말을 쓰는지도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외세에 의해 끌려가고 고난을 당한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 주기는커녕 외면하고 멸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그것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가해자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이룬 중요한 조건이 바로 민주화였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모든 억압당하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아주 강력한 무기인 것이고, 억압의 주체들은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싫어한다. 그들이 바로 요즘 표현대로 하면 적폐들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진전은 바로 적폐청산과 동전의 양면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주의가 저절로 적폐청산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해 용기를 내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일본을 질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은 이제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앞서 헤쳐 나가신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이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온 많은 사람들, 특히 최근 소녀상을 철야로 지켜온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정부가 이전 정부의 잘못된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적폐청산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이제 우리 모두는 서 검사를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적폐청산을 방해하는 가해자들의 온갖 2차 가해로부터 서 검사를 지키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적폐청산은 끝난 것이 아닐뿐더러 끝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은 적폐청산이 단순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몇몇을 잡아넣거나 제도나 법 몇 가지를 뜯어 고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사회 곳곳에서 적폐가 드러날 것이다. 그것을 청산하려는 세력과 저항하는 세력의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은 적폐로서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만의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적폐를 추방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간접가해자가 된 적은 없는지, 현재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고 행동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말하고 싶다. 혹시 성 범죄의 피해자가 된 적이 있더라도,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닥칠지라도, 서지현 검사의 말처럼 그것은 절대로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한 그것을 과감하게 고발하고 피해자의 사과와 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서지현 검사와 같은 용기를 갖기 바란다.

딸들아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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