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통일의 그날, 만수대의사당과 여의도의사당의 역할들을 상상하다

나는 만수대의사당 외부와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여러 번에 걸쳐 상념에 빠져들었다. “머지않아 곧 우리 민족의 소원인 자주적 평화 통일이 현실로 다가오면 서울과 평양에 공존하고 있는 두 의사당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통일 조인식이 임박해지면 이곳 평양 만수대의사당과 서울 여의도의사당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긴박하게 돌아가겠지? 국가 통합 논의를 위해 남북 양측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날이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이런 상상들은 양측의 의원들이 통일 정부 구성을 위해 서로 열띤 논의를 거치는 광경들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서 구절처럼 아직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상상하니 통일된 미래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는 통일 코리아의 체제 통합 과정이 큰 갈등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남과 북에는 통일을 대비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들이 각각 활동하고 있다. 양측의 체제를 통합하는 과정을 위해 먼저 통일조약이 이뤄지고 그 결과 통일헌법이 탄생될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분야 등의 통합방법과 절차가 중요할 텐데 70년의 단절이 만들어낸 이질화된 문화와 정서, 사상적 가치관 등의 차이로 인한 진통들이 통일 협상의 방해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통일조약의 프로세스에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적응 연습을 하며 극복해야 할 과정이며 새로 탄생하는 통일헌법에 충실히 따르면 될 것이다.

독일이 통일 직후 정치 통합을 위해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베를린 제국의회의사당에서 연방하원을 구성한 것이다. 남북 간의 통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적 통합은 양측 의회를 구심점으로 추진하고 남측 국회에서는 여당과 나머지 정당들이, 북측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조선노동당과 나머지 제 정당들이 참여하여 정당들 간의 질서 있는 논의와 합의를 이뤄, 마침내 중앙의원 선거와 지방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새로운 통일 의회를 구성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남과 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민족적 정서보다는 극과 극을 달리는 양쪽의 이념과 체제가 서로 쉽사리 양보되거나 조율되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이런 간절한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지금이라도 남과 북의 의원들 간에 왕성한 교류가 선행돼야 하고 허심탄회한 정치적 소통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남북 분단 이후 지금까지 양측 의원들이 교류한 역사를 살펴보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물론 남북 간의 국회회담 성사를 위해 1980년대부터 수차례 준비접촉과 협상노력을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여의도국회의사당의 의원들이 이곳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적이 1991년 4월경 단 한 차례 있었다. 그것도 정식적인 남북 의회 교류가 아닌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당시 남측 국회 대표단 25명이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국제기구 행사 차원에서 방문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그 의미는 매우 컸다. 하루빨리 남측의 국회의원들과 북측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서울과 평양을 자주 오가며 최고 주권기관으로서 민족의 통일 대업을 가장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방법으로 논의하여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최고지도자들의 다양한 직책들을 추인했던 산실

고풍스런 분위기 속에서 대의원 전용 기다란 테이블과 거기에 앉을 수 있는 2천여 좌석을 구비한 이곳 의사당 대회의장은 그동안 북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최고지도자들의 각종 직책들을 추대하거나 선출, 추인했던 파란만장한 역사적 공간이다. 1948년 8월에 첫 개원한 최고인민회의는 그 후 김일성을 내각 수상으로 선출하는가 하면, 1972년에는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하며 국가 주석직을 신설해 당시 김일성 수상을 주석직에 선출하였고 동시에 김 주석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도 추대하기도 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993년(제9기 최고인민회의 5차 회의)에는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어 김정일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추대했으며 이듬해인 9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면서 최고인민회의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했다. 원래 김 주석 서거 시점이 제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는데 김 주석의 타계로 전 인민과 나라 전체가 큰 슬픔과 충격에 빠지는 바람에 선거가 4년 후로 연기돼 1998년에 가서야 치를 수 있었다(3년상을 치fms 후 노동당은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선로동당 총비서’에 추대하며 공식적으로 김정일 시대를 열었다).

한편 1998년 제10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라는 내용이 포함된 사회주의헌법이 수정되면서 김일성 주석을 단 한 명밖에 없는 영원한 주석으로 정의하고 선포하기도 했다. 또한 이때 국가 주석직을 폐지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다시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했고 그 후 2011년 12월 그가 서거 할 때까지 국방위원장(최고인민회의 직책)과 당 총비서(노동당 직책)를 병행하도록 추인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또한 1972년 사회주의헌법에 의해서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이던 ‘중앙인민위원회’도 김 주석 사후 4년이 지난 1998년 9월 헌법 개정에 의해 폐지시키고 새롭게 상임위원회가 신설되며 이전의 중앙인민위원회의 권한을 이양 받은 것도 큰 변화 중에 하나였다. 그동안 중앙인민위원회는 주석, 부주석, 서기장, 위원으로 구성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주석의 지휘감독과 통제를 받아왔다. 따라서 주석이 위원회의 수위(首位)이므로 중앙인민위원회는 주석의 보조 기관 내지 자문기관이었다가 직제를 바꾸고 바야흐로 상임위원회가 국가주권의 최고지도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한 곳도 이곳 의사당이었다.

국가 주석제가 폐지된 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 총리,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권력이 적절하게 3등분으로 나누어졌다. 물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이전보다 더 대폭 강화되어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사실상의 최고 권력을 지닌 직책으로 바뀌었으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조항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헌법상 국가원수가 되도록 결의한 것이다.

그러나 11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에 이르러 최고인민회의는 다시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최고령도자”라는 내용을 추가하면서 공식적인 국가원수는 다시 국방위원회 위원장에게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하면서 이듬해 봄(2012년 4월 11일)이 되자 제4차 로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원한 총비서’직에 추대됐으며,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그 직책이 ‘당 제1비서’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열린 제12기 최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 보충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영원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법령을 채택하였으며 국방위원장직을 공석으로 남겨둔 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다시 4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6월 29일, 또 다시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 의해 국방위원회는 ‘국무위원회(國務委員會)’로 대체하도록 직제를 변경했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국무위원장(國務委員長)’으로 추대하였다.

김정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 구현을 위한 존재했던 ‘국방위원회’를 대신해 국정을 총괄하는 새로운 최고 기구가 된 ‘국무위원회의’는 선군정치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핵보유국 반열에 오르면서 세계를 향해 보다 더 폭넓게 경제, 외교, 안보, 통일 등 국정 전반을 다룰 수 있도록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최고인민회의 전체 대의원들의 절박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이로서 국가원수로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공식 직책이 2016년 6월말부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무위원장’으로, 당에서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확고하게 결정되어 2018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 지도자들의 다양한 직책들을 추대하거나 선출하고 추인하는 모든 일들을 결행한 장소가 바로 이곳 만수대의사당 대회의장이었으니 그 주역들인 ‘영원한 주석’과 ‘영원한 국방위원장’은 이곳 주석단 위에 서서 환한 미소를 띤 채 채색입상의 형상으로 대의원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아직도 건재한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명예부위원장의 근황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필자에게 근황이 매우 궁금한 인물들 여럿이 문득 생각났다. 특히 고위직에 있었거나 최고지도자 가문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욱 궁금하다. 그러나 그들의 소식이나 근황은 아무도 자발적으로 잘 알려주지 않을 뿐더러 들려오는 소식도 전무하다. 또한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일부러 알려고도 하지 않고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부담스러워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최고인민회의에서 가장 궁금한 인물을 우선 한명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김일성 주석의 친동생 김영주 상임위원회 명예 부위원장일 것이다. 언젠가 필자가 몇몇 안내원들과 관리들에게 김영주 선생의 근황에 대해 살짝 물어 본적이 있었다. 그 결과 아직도 그가 생존해있으며 건재하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증언해주었다.

“평양 고려호텔 부근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건강하게 여생을 잘 보내고 계시며, 거동은 약간 불편하시지만 우리 원수님을 잘 보필하며 공화국을 위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매우 정력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귀띔을 해준 사람들의 증언들을 취합하면 공통적으로 저런 내용들이었다. 또한 김영주 관련 문의는 이미 평양의 일반 인민들에게도 익히 공개된 사실들이라 그들은 나에게 숨김없이 당당하게 알려 주었다. 김영주 명예 부위원장은 2018년 현재 백수를 앞두고 있는 98세의 고령이다. 맏형 김일성 주석보다는 8살이 적다. 원래 김 주석의 부친 김형직 선생은 슬하에 장남 김성주(김일성), 차남 김철주, 삼남 김영주 등 삼형제를 두었다. 김영주의 둘째형 김철주는 연길에서 일제와 맞서 무장투쟁을 하던 중 전사해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돼 있고 큰형 김일성 주석은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돼 있으니 삼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마침 그 무렵 95세의 김영주가 노구를 이끌고 2015년 7월 19일 실시된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투표에 참가하는 모습을 당시 조선중앙텔레비전 보도 화면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당시 활약상을 확인해 보니 다리를 불편하게 걷는 것 외에 특별히 건강에 이상은 없어 보였으며 오히려 건장한 체격의 옥골선풍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투표장에 도착해 남녀 관계자로부터 용지를 받아들고 투표를 마친 후 벽에 걸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향해 허리를 숙여 깍듯이 절을 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북 안내원들의 말에 의하면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는 이전에도 꾸준하게 김영주의 근황을 전하거나 선거철마다 그가 투표하는 모습을 매번 보여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그의 활약상들을 확인해보니 94세 때인 2014년 3월 9일에는 자신도 출마했던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인민복장의 모습으로 투표하는 모습을 보도했는가 하면, 91세인 2011년 7월 24일에 치러진 선거에서는 반팔 인민복을 입고 투표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또한 89세 때인 2009년 3월 8일에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선거에서는 넥타이를 맨 양복 정장차림의 모습으로 투표하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하는 등 김영주 명예부위원장은 생전의 김일성 주석과 흡사한 외모를 아직도 간직한 채 이북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국가원로로서 품위를 지키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만경대 가문’ 1세대로서 유일한 생존자인 그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이북 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그동안 그의 최고인민회의 직함은 1962년 제3기 대의원을 시작으로 1967년 제4기, 1972년 제5기 대의원과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1976년 5월 이후 특별한 직책이나 활동들이 모두 중단됐다가 다시 1998년 제10기 대의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 부위원장을 시작으로 2003년 11기, 2009년 제12기, 2014년 제13기에 선출돼 연속해서 상임위원회 명예 부위원장 직에 몸담고 있는 중이다.

과거 그의 당 직책을 보면 1967년 노동당에서도 핵심기관인 조직지도부 부장으로 활동했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당시 김일성 수상의 전권을 위임받아 남측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만나 사전 조율하는 역할도 했고 성명 이행을 위해 설치된 남북조절위원회의 북측 공동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형님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왔었다.

뿐만 아니라 1976년 5월 이후 무려 17년간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고 있던 그를 향해 남측과 서방세계 언론들은 각종 의혹을 품고 낭설들을 퍼트렸으나 1993년 평양에서 열린 7.27 전승절 승리기념탑 준공식과 정전협정 4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 행사에 최고지도부들과 함께 나타나면서 모든 의문을 일시에 해소시켰다. 아울러 과거 정무원 부총리를 지냈던 그는 공식석상에 재등장하던 그해 12월에 부주석에 선출된 후 지금까지 활약 중이다.

또한 김영주는 ‘공화국의 마지막 부주석’으로도 기록됐다. 1972년 12월 사회주의헌법에 의해서 신설된 ‘중앙인민위원회’는 현재 상임위원회 전신인데 김일성 주석 서거 후 1998년 9월 헌법 개정에 의해 폐지되는 바람에 폐지 직전의 김영주는 이종옥, 박성철, 김병식 3인과 함께 공화국의 마지막 부주석 4인방으로 기록된 것이다. 아무튼 무려 1세기를 영위하는 그의 건재함을 확인하니 반도의 역사는 빠르게 지나면서도 동시에 정체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최고인민회의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당선된 수많은 대의원들 중에는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닌 인물들이 많았다. 전쟁 아로서 평양방직공장 직포공 출신의 리화순은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생산능률과 성과를 올려 공장을 일으켜 세우고 마침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돼 그런 인간승리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었는가하면, 6.25전쟁 중 황해도 신천군을 진격한 미군에 의한 총상으로 어린 시절 두 팔이 모두 잘려나간 리옥희 여인은 결혼 후 삼남매를 두었는데 얼마나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품었는지 아이들 이름을 ‘복수하리라’로 지었다. 첫째 아이를 ‘복수’, 둘째를 ‘하’, 셋째 이름을 ‘리라’로 지었으며 그 후 교편생활을 하다가 불굴의 의지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까지 선출되었다. 이처럼 대의원들 대부분은 우리의 상식을 깬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일성 주석의 가문도 최고인민회의와 깊은 사연들이 있다. 생전의 김일성 주석은 1948년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된 이후 서거할 때까지 9선을 지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2년 황북 송림에서 7기 대의원에 선출된 이후 서거할 때까지 6선에 선출됐다.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 상임위 명예 부위원장은 3기 대의원에 선출된 이후 중간에 6,7,8,9기를 제외하고 10기부터 13기까지 연임하며 현재 7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13기 대의원 중에 최다선 대의원은 11선 고지에 오른 양형섭 상임위 부위원장이다. 김일성 주석의 고종 사촌 누이동생인 김신숙의 남편이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에게는 사촌 매부가 되는 양형섭은 1962년 3기부터 시작해 한 번도 빠짐없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그 뒤를 이어 김일성이 항일투쟁 하던 시절 같은 부대원이던 오중성의 외아들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10선을 기록했다. 또한 일제시대 김일성이 지휘하던 항일무장대원으로 함께 생사고락을 했던 혁명 1세대인 리을설은 1967년 최고인민회의 4기를 시작으로 5기, 7-13기까지 모두 9선을 기록했다. 조선인민군 차수에 이어 원수 계급까지 오른 리을설은 제6호 축전선거구에서 당선되었는데 이듬해에 폐암으로 타계해 국장으로 장의식을 거행했다.

북측의 중앙선거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687명 명단을 공개한 것을 살펴보면 당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제111호 백두산선거구에서 선출됐다. 이를테면 의회에 정식 입문하는 첫 선거라고 볼 수 있었는데 대의원 추대를 위해 인민무력부 청사에서 추대대회가 열렸고 평양시 관할임에도 불구하고 출마지역에 ‘백두산’이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군인들의 추대로 대의원 후보자가 되는 형식을 취했다. 김 위원장은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중에 단연 최연소 당선자에 해당되었으며, 최고령자는 항일 빨치산 여전사로 유명한 1919년생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이다.

또한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핵심 실무 4인방과 원로 2인방의 선거구를 알아보니, 김영남 위원장은 제55호 은하선거구에서 당선됐고, 양형섭 부위원장은 제21호 개선선거구, 김영대 부위원장은 제77호 봉화선거구에서 당선되었고, 상임위 홍선옥 서기장은 제64호 력포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또한 원로들인 김영주 명예 부위원장은 제30호 룡흥선거구에서 당선되었고, 최영림 명예 부위원장은 제37호 동대원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13기 중요 요직 3인방을 살펴보면, 최고인민회의 최태복 의장은 제62호 휴암선거구에서 당선 되었고, 안동춘 부의장은 제615호 명간선거구에서, 리혜정 부의장은 제547호 초원선거구에서 각각 당선되었다.

한편 당선된 687명의 대의원들 중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왕성하게 활약하는 평범한 노동자, 농민, 관료들도 많았고, 정당 간부, 지식인, 고위직 군인, 정치인 등 유명한 인사들도 많았다. IOC위원이며 국가 체육계를 이끌고 있는 장웅은 548호 독산선거구에서, 내각을 이끌고 있는 박봉주는 총리는 제170호 제약선거구에서 당선됐고, 조선인민군 차수로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는 제370호 정방선거구에서,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출신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으로 남북협상 분야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해온 대남통 원동연은 제377호 동현선거구에서 당선됐다.

특히 의사당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인물은 평소 우아한 기품을 유지하며 북의 인텔리 여성들의 상징성을 지닌 홍선옥 서기장이다. 위안부 문제 사업을 오랫동안 맡아왔던 그는 12기에서는 부의장이었는데 이번 13기에서는 가장 중요한 실무 권한 직책인 상임위원회 서기장에 선출됐다. 행사장에 만난 필자는 홍 서기장에게 잠시 미국에서 통일운동과 위안부 운동을 하는 여성운동가의 안부를 전해주기도 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임기 중에 사망하는 경우 남측처럼 공개적으로 재선이나 보궐선거는 안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석 중인 자리를 보궐선거를 실시해 채우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라고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업적과 공로를 세운 유명한 스포츠 선수나 국제대회에 입상해 국위를 선양한 인물들을 이례적으로 대의원으로 보선하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폐암으로 사망한 리을설을 비롯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제50호 승리선거구), 폐암으로 사망한 류미영(제670호 덕흥선거구), 식도암으로 사망한 강석주(제84호 오리선거구) 등은 해당 선거구가 아직도 공석 중에 있다.

임기 중 변수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상임위원회 위원들

최고인민회의가 휴회 중일 때는 상임위원회가 최고 주권기관으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 상임위원회는 국가주석 제도 하에 있었던 ‘중앙인민위원회’가 김일성 주석 서거 후 1998년 9월, 헌법이 개정되면서 확대 개편된 것으로 사실상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이 된 것이다. 중앙인민위원회가 폐지되면서 상훈권, 대사권, 특사권, 행정구역 개폐권 등의 권한이 상임위원회로 이관됐으니 그 권한은 막강하다.

그런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상임위원회에 선출된 위원 명단을 보면 김양건, 태종수, 전용남, 현상주, 리명길, 김정순, 김완수, 류미영, 강명철, 강수린, 전경남 등 모두 11명이었는데 3년이 지난 시점에서 확인을 해보니 이들 중 절반이 넘는 6명이 교체됐고 전체 인원도 11명에서 10명으로 줄었다.

회기 중간에 새로 선출된 5인과 기존에 유임된 5인을 포함한 새로운 2기 명단을 보면 김영철, 박태성, 전용남, 주영길, 김정순, 강명철, 강수린, 전경남, 장춘실, 박명철 등 모두 10인이다. 이중 전용남, 김정순, 강명철, 강수린, 전경남등 5인은 그대로 유임됐으나, 6명(사망자 2명 포함)이 임기 중에 교체되고 새롭게 5명이 영입되면서 총인원이 10명이 된 것이다.

타계한 김양건과 류미영의 자리는 당연히 새로 선출돼야함이 마땅하나 내각부총리를 지낸 태종수,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장을 지낸 현상주, 조선농업근로자연맹 위원장 리명길, 12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완수 등은 어떤 이유에서 도중하차 했는지 잘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들 4명에 대한 교체는 매우 의외였다.

아무튼 새로운 위원으로 선출되어 영입된 5인의 직책을 살펴보면 제59호 배산선거구의 박태성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출신이며, 제212호 북창선거구의 김영철은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제444호 전천선거구의 장춘실은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제196호 문덕선거구의 박명철은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위원장 출신이며, 주영길은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당연직 상임위원에 종교, 사회단체 대표들을 선출하다

10여명 안팎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들 중에는 종교단체와 사회단체, 각 정당대표들이 주로 선출되는 관례가 있다. 남측 국회에 비교한다면 직능직 비례대표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이들 단체 대표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균형 잡힌 민의가 더 잘 반영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일단 대의원에 선출된 기독교, 불교, 가톨릭, 천도교 대표들 중에서 상임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하는 형식이다. 13기 기독교 대표로는 제351호 금곡선거구에서 선출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중앙위 위원장 강명철 목사이며, 불교 대표는 제485호 금강선거구에서 선출된 강수린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 위원장, 천도교 대표는 제670호 덕흥선거구에서 선출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 위원장 류미영이다.

한편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직,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직 등 이 세기관장들은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 세 기관의 수장직을 장재언과 강지영이 수십 년 간 번갈아 가며 맡거나 이중으로 겸직해왔기 때문이다. 제46호 정오선거구 등에서 선출된 장재언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이다. 강지영 위원장은 이번 13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다. 이처럼 각 종교 기관 수장들에 대해 당연직으로 구성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들은 이북의 각 사회단체, 종교단체에 속한 신자나 회원들의 민의를 상임위원회에 직접 반영하거나 대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상임위원회를 이끌어가는 시스템이다.

특히 필자와 여러 차례 만남이 성사된 강명철 목사는 과거 조그련 평양시 위원장을 맡던 중 2013년 7월에 조그련 위원장에 선임되었고, 이듬해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다음 달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남측 종교계와는 달리 북측 사회는 종교단체 대표들이 이처럼 정치에 적극 참여하거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북의 정치문화와 정서상 그럴만한 이유와 근거들이 있었다.

필자가 북의 종교단체 지도자들과 대화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정치는 곧 신성하다”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더 나아가 “정치는 곧 거룩한 것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가장 정치적인 것이 가장 거룩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종교가 거룩한 영역이 되려면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현재 조그련의 강 목사를 비롯해 천주교, 불교 등 여러 종교 대표자들은 대부분 정당과 내각의 영향력 있는 간부 출신들 중에서 선출되거나 겸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측 종교인들 입장이나 관점에서 북측 종교인들과의 비정치적인 순수한 종교적 교류는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남측 기독교는 보수주의 계열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보수 한국교회가 바라는 ‘순수한 종교적 교류’ 혹은 ‘종교 교류의 비정치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강명철 목사의 아버지 강영섭 목사도 생전에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에 선출된 뒤 20년 넘게 대의원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강량욱 목사도 해방 직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을 지낸 후 최고인민회의 1기 대의원과 서기장 등을 지내기도 했고, 1972년과 1981년에 걸쳐 국가 부주석을 두 번이나 역임한 전력이 있다. 이처럼 북의 기독교 지도자들 대부분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겸직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의 사고 또한 종교적인 것을 너머 매우 정치적이다. 내가 만나 본 강명철 목사 또한 부친과 조부 못지않은 정치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동시에 매우 영적인 면도 갖춘 보기 드문 인재로 보였다.

노동당과 다른 정당들과의 역학적 관계를 이해하다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는 1년에 한번 꼴로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다. 임기가 5년인데 한 회기에 개최하는 회의 숫자는 보통 6-7회 정도이다. 회의가 열리지 않는 평소에는 최고인민회의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상임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를 꾸려가고 있는데 상임위원회는 상시 가동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수시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8년 9월 5일, 같은 날 선출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최태복 의장은 그 직책을 아직까지 고수하며 장수하고 있고, 양형섭 상임위 부위원장도 의장직에 오래 재직하다가 상임위 부위원장에 선출되어 지금까지 최고인민회의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 큰 무리 없이 이끌고 있어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이처럼 핵심지도부 모두에 대한 대의원들의 신임이 두터워 종신직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연임할 듯 보였다.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87명의 구도를 보면 여대야소의 형국이다. 조선로동당 607석, 조선사회민주당 50석, 조선천도교청우당 22석,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재일 총련) 5석, 무소속 3석 등으로, 노동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차지한다. 687석에 대한 과반수는 344석이기 때문에 제1당인 조선로동당(대표 김정은 제1비서, 2012년 4월 11일 선출)은 이번 13기뿐 아니라 항상 매기마다 과반석의 85%가 넘어 수권정당으로서 흔들림이 없다. 제2당은 조선사회민주당(대표 김영대 위원장, 1998년 8월 선출)으로 50석을 확보했고, 제3당은 천도교청우당으로(대표 류미영, 1993년 7월 선출) 22석을 확보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300만 명에 이르는 평당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조선로동당에 비해 조선사회민주당은 어떤 당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상황을 알아보았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은 3만 명의 당원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당원 수 규모는 조선로동당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원들은 자신들의 월급에서 2% 정도의 당비를 납부해서 그 돈으로 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아울러 당에서 직접 경영하는 자체 기업소의 소득사업을 통해서도 당 경비를 보충하고 있다고도 했다.

조선사회민주당의 당원은 주로 평양에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자강도에는 지역당이 없고 주로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당원들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당원들의 직업 분포도는 주로 종교인, 소자산계급, 여성상업 종사자, 사무원들이라고 한다. 또한 당 관계자들은 우당으로서의 의식도 확고해 보였다. 조선로동당과 대외적적으로 볼 때 차별화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한 위급한 상황에서 당리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우선한다”며 야당성향이 아닌 우당성향의 입장을 강조하려고만 했다.

또한 1946년 2월 8일 ‘북조선천도교청우당’이라는 명칭으로 창당된 조선천도교청우당도 조선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였다. 청우당은 정당으로서 종교적 색채를 띤 유일한 정당이지만 운영방식은 종교와는 무관해 보였다. 1980년대 최덕신, 류미영 부부와 오익제의 연이은 월북을 계기로 이들이 청우당에 본격적으로 영입되면서 청우당은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서며 왕성한 활약을 시작했다. 대성산 혁명렬사릉에는 종교인으로, 민족운동가로 일생을 마감한 박인진의 묘와 흉상이 건립되어 있고, 신미리 애국렬사릉에는 최동오, 최덕신, 류동렬 등 모두 6인의 천도교 신자들이 북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어 사회주의 건설에서 천도교인들이 차지했던 역할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천도교의 위상은 이북 사회에서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활력이 되었으며 청우당의 당세(黨勢)는 곧 천도교의 교세(敎勢)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천도교 평양교당을 비롯해 여러 교당과 조직들을 거느리고 있는 교세를 바탕으로 청우당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마다 매기 20명 이상의 대의원을 당선시키는 저력 있는 정당으로 발전해왔으며 노동당과의 관계는 매우 협력적인 우당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남북의 의원들은 자주 소통하며 통일국가의 헌법을 미리 준비해야

만수대의사당을 떠나면서 남북의 최고주권기관인 서울과 평양의 의사당은 지금부터라도 서로 소통하며 통일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할 통일헌법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히 밀려왔다. 어떤 절차에 따라 통일헌법이 제정되든 안정적인 정세 속에서 정상적인 합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통일헌법의 기초를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양측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과정 논의에 앞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7천만 겨레를 위한 통일국가의 헌법적 가치를 확정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어서 국가형태, 정부형태, 의회구성 원리 등의 문제를 한 가지씩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다. 남북의 사회적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적절하면서도 강력한 의회 제도를 만들어서 통일 이후에도 이념 갈등의 잔재 요소 때문에 지역갈등과 계층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법치국가를 만들어야 하며 전체 민족이 하나가 되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힘찬 전진을 했으면 좋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