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새해 들어 한반도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비록 미세먼지는 살벌하지만.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고, 북의 표현으로, ‘평창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에서 가슴 벅찬 장면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드디어 남북관계에, 한반도에 다시금 봄이 올 것인지,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참 많은 일들이 이 땅에서 이뤄졌다. 타의에 의한 분단이었건만, 시간이 갈수록 내적인 증오와 반감을 키워온 남북은 어느 새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잊고,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남이든 북이든 서로를 이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생각만 했다. 부끄럽고 가슴 아픈 시간들이었다.

물론 가슴 뜨거웠던 시간들도 있었다. 남북이 만나 통일을 이야기하고,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들도 있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에 오해도 많았고, 상대에 대한 무지로 인해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그 자체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돌아올 통일의 그날을 준비하는 연습의 시간이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여전히 대내외의 어려움도 많지만, 이제 남과 북은 과거 10여 년의 단절과 반목을 끝내고, 다시금 조심스럽게 대화와 협력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고, 양측 국민 모두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절실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핵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겠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우직하게 갈 길을 갔으면 좋겠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정영철·정창현 지음,『평화의 시선으로 분단을 보다 - 남북관계사 20장면』, 유니스토리, 2017.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러한 시기, 시의 적절하게 이 책이 나왔다. 반가울 따름이다. 한국전쟁 이후, 아니 그 이전 분단의 시작부터 최근까지 남북관계사의 주요한 장면, 혹은 사건들을 스무 가지 꼽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와 교훈을 짚으며, 과연 어떠한 내일을 만들어가야 할지 되묻고 있다. 남북관계 및 한반도 현대사에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자들이기에, 술술 읽히면서도 또한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어떤 문장에선 스스로 읽는 이를 부끄럽게 하고, 어떤 문장에선 울컥할 수밖에 없다. 힘과 지혜가 부족했던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수치와 아픔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지금, 두 저자의 작지만 강렬한 울림은 고스란히 분단 조국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꿈꾸고, 또한 만들어가야 할까.” 무지하게 어려운 질문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분단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아온 지난 세월 속, 서로를 증오하고 박멸해야 할 존재로 여기며 살아온 세월을 딛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다시 평화와 통일의 꿈을 꿀 수 있을까.

이산가족상봉을 이야기하며, 김연철 교수의 『냉전의 추억』을 인용하는 장면에서, 어쩔 수 없이 코끝이 아려왔다. “아버지의 두 뺨에도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곁에 있던 기자들도, 안내원도, 음식을 나르는 호텔 종업원들도 함께 울었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들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단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그 아픔을, 지금도 매일 매일 가슴이 무너지는 이들의 눈물을, 우리는 언제쯤 닦아줄 수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아픔을 언제쯤 끝장낼 수 있을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글에서도 안타까움이 절로 터져 나온다. ‘평화로 가는 여권’이었던 금강산 관광, 남북 경제공동체 모델이자, 작은 통일의 연습장이었던 개성공단은 지금, 적막에 싸여있다. 이러한 작은 통일공간마저 닫아버리고 그 무슨 통일을 떠들고 대박을 떠들었을까. 부끄러움이 온몸을 후벼댄다. 분노가 가슴을 때린다. 남북문제와 통일을 단지 정권의 권력 수단으로만 여겼던 수많은 이들의 어리석음이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고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민족주의를 경계하며 살아간다. 민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역사적 죄악을 익히 알기에,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잘 알기에, 민족이란 이름을 신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할 때, 편협한 민족주의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 통일된 한반도, 그 한반도가 뻗어나갈 대륙의 꿈을, 민족주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동안 분단에 갇혀 꿈마저 반쪽이 되어버린 우리를 되돌아보고, 다시금 평화와 번영, 공존과 화해의 꿈을 꾸자는 것이다. 더 이상 철책 선으로 막혀버린 갇힌 나라가 아니라 대륙으로, 바다로 뻗어갈 수 있는 열린 나라가 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민족이라면 지극이 합당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꾸자는 것이 저자들의 마지막 호소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꿀수록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고 했다. ‘한반도의 분단이 남겨놓은 반쪽짜리 꿈이 아니라 온전한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철길과 땅 길의 연결은 남북의 화해와 협력, 신뢰와 연대를 의미한다. 나아가 한반도가 중심이 되어 동북아 국가, 세계인 모두에게 평화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전파하는 것이 된다.’

1997년,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 입학한 뒤 지금까지 왔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통일문제 언저리에서 서성댔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한 점 후회나 부끄러움은 없다. 물론 얼치기로 살아온 삶은 후회되지만, 적어도 이 분야에서 일을 해온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다는 소리다. 앞으로도 여건이 도와준다면(!) 계속 이 분야에서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 어찌 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개인적 문제로 서평을 부지런히 쓰지 못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가 단 한 분뿐이라 해도, 송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철이 덜 들고, 어리석은 녀석이기에, 이리 흔들리고 상처받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덕의 소치이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앞으로도 많은 꾸짖음 주시기 바란다. 언젠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낸다. 항상 많이 감사하고 또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산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모처럼 조성된 이 평화무드가 부디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빠른 시간 내에 금강산이나 평양에서 모두 앉아 소주 한 잔 기울이게 되기를 바라본다. 개성공단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일을 하던 내 친구 녀석이 다시 개성을 왔다 갔다 하며 바쁘게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날선 공격과 반목보다는 따뜻한 안부 인사가 오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래야 살맛이 비로소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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