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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신년사에서 평창을 거론하면서 남북관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평창에서 북한이 남한에 기대하고 있는 것은 명료하다. 미국과 마지막 대결을 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징검다리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미를 ‘이간질’하려 한다는 시각은 당연하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가 쟁점이다. 

하나는 평창을 위해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했다면 평창 이후에 아예 중단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가? 다른 하나는 올림픽, 이산가족을 넘어 남북교류협력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는가?  

후자에 대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은 미국의 대북 포위망에 한국이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교류협력, 구체적으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개발은 무엇인가? 이들 사안이 남북간 화해협력에 도움이 되는 민족 내부의 문제인가? 아니면 북한이라는 ‘악당국가’를 제재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포위망과 관련된 문제인가?

그리고 이는 평창 이후의 정세 전망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평창 이후 비핵화회담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평창-북미협상으로 이어지는가? 전자의 흐름으로 이어질 경우 북한은 남한과 회담할 이유가 없다. 후자에서 뭔가 여지가 있다면 남북관계는 진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금석은 한미합동 군사훈련과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남측의 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남한이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북한은 남북회담을 계기로 북미 협상으로 가려할 것이고 남한이 운신이 폭이 없다고 판단되면 남북회담을 깨고 바로 북미 대결로 전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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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입장이 심플했던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2017년 내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제제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제재의 강도는 막상 북한의 평창 참가 문제가 될 정도이다.

2017년 흐름대로라면 평창에 참가하려는 북한의 여지를 봉쇄하는 것이 맞다. 평창 참가는 대북 포위망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한미합동 군사훈련 연기까지 시사하며 북한의 참가를 요청했다. 2017년 대통령이 보여준 메시지와는 다른 행보였다. 미국이나 보수진영이 불안해했던 것도 이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은 균열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고위급 회담 합의에 따르면 정작 선수단은 수십 명인데 여타 명목의 방남 인원을 합하면 수백 명을 넘는다. 체육교류를 넘어 포괄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선을 그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다음은 연합뉴스 기사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고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을 위한 회담이 목표일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대화만이 해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북한이 다시 도발하고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는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독자적으로 대북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지금 없다"며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므로 한국은 국제사회와 제재에 대해 보조를 함께 맞춰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중 경제 제재 해제 등은 국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제재, 특히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의 틀 속에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 범위 속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그 부분을 해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남북대화 성사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등이 남북간에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UN 안보리 틀 속에서 판단할 문제라면 도대체 남북대화는 왜 하는가? 결국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남북대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의 연장선에서 벌어지는 외교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수준의 대책은 북한이 수세에 몰렸던 1990년대 초중반에도 불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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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황당했던 것은 민주화 세대의 반응이다. 다음은 한미 정상의 전화통화에 대한 <jtbc>의 반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Ocj1-8vNHo&feature=share

<jtbc>는 보수언론의 우려와 달리 한미공조가 잘 유지되고 있다며 김영삼-클린턴, 김대중-부시, 노무현-부시 때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맞다. 지금 한미는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밀월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철저히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월 10일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비슷한 시기 미국의 논조와 비교해 보라. 필요하다면 조선일보의 아래 사설을 소개한다. 사설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요약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회견은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 줬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조선일보가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으므로 그냥 대통령의 회견을 인용하면 될 정도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0/2018011003137.html

2018년 초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할 것처럼 보였던 정세는 생각보다 빨리 좌초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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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대로라면 남북은 사사건건 싸우게 될 것이다. 합의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합의할 게 없다면 남북대화는 공중분해 되고 바로 북미 대결로 넘어간다. 남북대화가 무산된 조건에서 벌어지는 북미 대결은 최소한의 완충지대도 없는 정면충돌일 것 같다. 

2018년 초의 남북관계는 북미 사이의 정면 대결 국면에서 남북에 주어진 귀중한 기회이다. 

지금 상황에서 절대 유일의 가치는 평화다. 평화는 비핵화보다 위에 있고 통일보다도 위에 있다. 남북은 최대한 긴장과 대결을 완화하는 방향에서 운신해야 한다. 미국과 보수 세력의 눈치나 보며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남북관계에서 긴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관을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은 2017년 내내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앞장섰고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발전에 결정적인 제동을 걸고 있다. 남북관계의 거의 모든 주도권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는 조건에서 대통령의 행보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더 큰 문제는 민주화 세대의 입장과 태도이다. <jtbc>를 대표하는 손**의 멘트는 다음과 같다.  

“그 동안에 한미 양국의 정권이 보수와 진보로 엇갈릴 때마다 우리와 미국은 북핵 해법에 대한 갈등을 노출했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 끝까지 보일지 주목된다.”

우리는 촛불 이후 대북관계에서 미국-정부-진보와 보수 진영이 입장을 같이하는 희한한 시대를 살고 있다.  

영화 <암살>이 있었고 <택시운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1987>이다. 나 또한 6월항쟁 때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30년 전 과거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눈앞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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