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무 / 종주대원

일자 : 2017년 12월 24일 (일요일)
구간 : 괘방령 – 가성산 – 눌의산 – 추풍령
거리 : 11.4 km (접속구간 없음), 7시간 반 (식사/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 11명


 

▲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대원들이 17구간 하산길에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15년 전쯤 지하철역 카메라 회사 광고판에서 본 문구다. 그 당시 내게 조금 충격을 준 문장이었다.

우리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의 산행후기는 훗날 남북한 백두대간 최초 종주대의 공식 기록으로 남을 기초 자료이자 증거물이 될 것이다. 히말라야 지역 네팔의 엘리자베스 홀리 할머니 인터뷰처럼.

그리고 또 중요하게는 이 산행기를 통해, 완주를 하지 못하는 모든 대원들도 마음으로 함께 대간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직 한 번도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공식적으로 현재 대원이 60명이 넘는다.) 매번 산행 때, 버스 출발 순간부터 산행 중 비경을 실시각으로, 그리고 산행 후기까지, 함께 걷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랜만에 사당역으로 갔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무릎이며 발목 상태가 산을 오를 여건이 아니지만, 올해 마지막 종주 산행마저 빠질 수는 없다는 강박이 새벽에 눈을 뜨게 했다.

몸이 무거운 탓인지 휴일 새벽 지하철도 더디게 간다. 결국 꼴찌로 버스에 탑승. 모두 차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늦게 버스에 도착했는데...    
이 사람들 다르다.

지난 4월 백두대간 마루금에 첫 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사당역 근처 김밥집에서 맞춰 놓은 김밥 찾아오고, 주욱 늘어선 버스들 중 우리 버스 위치를 찾지 못해 전화를 계속 주고받고, 버스 바퀴가 구르기만 하면 소주 돌리고, 좁은 버스 안에서 홍어도 꺼내 돌리고... 내가 그랬고 이 사람들도 그랬다.

지난 9개월을 매월 두 번씩, 그리고 지리산과 덕유산이라는 큰 마루를 넘어온 이들 중에서도 정예화한 열 명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 여유 있는 차분한 표정 속에서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느껴진다. 초등학교 5학년 이가빈 대원에게서도.

올해의 마지막 대간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송년회 참석할 마음에 흥분해서 짧은 생각을 갖고 뛰어나왔다가 느닷없이 맞닥뜨린 이 후회는 이날 해가 질 때까지 내게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이번 산행 후기는 오랜만에 함께 한 내가 상대적으로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본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할 수도 있겠다며 좋게 생각해 본다.

크리스마스 이브, 겨울비에 젖다

이제는 대간 구간이 북상해 두 시간여 달리면 산행 목적지에 도착한다. 사당부터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날리던 비가 괘방령에 도착해 버스를 내리니, 제법 옷을 적신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다리에 스패츠(각반)를 채우고, 방우용 재킷을 챙겨 입었다. 괘방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하는데, 모두들 멋진 판초 우의를 입고 있다. 난 이런 게 없는데. 또 한 번 살짝 의기소침해진다.   

▲ 날머리 괘방령에서 기념사진. 괘방령은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있는 주요 길목으로,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는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과거급제 길’이라 이름 붙인 지자체의 관광마케팅에 힘입어 자녀들의 대학 입시를 위한 기도처가 되었다 한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에 어느 길이 한양과 통하지 않았으랴.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번 구간은 해발 300미터 괘방령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살살 올라, 700미터급 가성산, 눌의산을 넘고 추풍령으로 얼른 내려오면 되는,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다. 게다가 접속구간을 힘들여 걸을 일도 없다. 말로는 그런데, 쉬운 대간 길이 어디 있으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그것도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예상했는데 추적추적 비가 온다. 크리스마스가 화이트하다고 설레고 할 나이들은 지났지만, 이런 날 겨울비, 진흙길 이런 것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스패츠와 아이젠, 스틱 등 뽀송뽀송 눈 내리는 하얀 길을 재미있게 걸을 준비가 됐는데, 한겨울에 비가 온다.

많은 대원들이 조한덕 대원을 원망한다. 그러나 어찌 12월 말의 겨울비가 조한덕 대원의 불참 징크스 때문일 수 있을까. 그건 조 대원의 막내아들 조민성 대원을 보고 싶은 마음들의 표현일 게다.

그리 높지 않은 해발고도지만 비오는 날 기압이 낮은 관계로 능선길은 구름에 자주 갇혔다. 아니 정확하게는 흘러가는 구름을 산이 등허리로 자꾸 잡아놓는 것일 터. 시계가 채 10미터가 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산길을 비척비척 올라가니 사람들이 영 보이지가 않는다.

나중에 안 일지만 사실 앞에 사람들이 없었다. 일행들과 나 사이의 간격이 심하게 벌어져 뒤쳐진 내가 많이 미안해해야 마땅하지만, 안개로 꽉 찬 산길은 나의 무안함을 덮어주었다. 우중산행. 산길을 느리게 걷는 나에게는 참 고마운 상황이 되었다.  

▲ 오동진 후미대장이 본 대열을 등 뒤에 두고, 거꾸로 서서 겨울비에 몸을 식히고 있다. 비와 구름 때문에 산행 내내 모습이 이랬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내가 뒤에 쳐지니 오동진 후미대장이 몸과 마음으로 고생이 심하다. 후미대장은 대열의 후미를 책임져야 하는데 한 명이 계속 그 뒤에 처져 있으니, 그 맘을 말해 무엇 하랴.

게다가 오 대장, 심한 감기에 걸렸다가 채 낫지 않은 몸으로 나를 기다리느라 중간 중간 가다 서서 추운 겨울비에 땀을 식히고 있다. 내가 봐도 감기가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강한 마음으로 계속 천천히 걷는다. 이 팀은 나를 버릴 수 없다. 내가 없으면 후기도 없다.  

▲ 비구름이 지나간 사이에 전격적인 식사.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가성산 정상석에서 기념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어느덧 가성산 정상. 모두 둘러 앉아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일행이 너무 반가워 살짝 눈이 뜨거워진다. 빗물과 땀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나를 보지도 않았으니. 내가 반가우면 된 거다.

헬기가 앉을 수 있는 자리에, 구름이 지나가고 소강상태다. 이런 데에서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전날 장을 보고 도시락 반찬을 시간 들여 만들었다.

이제 나의 시간이 펼쳐진다. 전용정 등반대장이 김지영 고문의 협찬품인 고급 보드카 스미르노프를 꺼내 돌렸다. 역시 좋은 술은 많이 먹힌다. 별 안주 없이도. 심 총무의 안동소주와 김성국 대원의 패트병 소주 등 다른 술들을 음식과 본격적으로 먹으려 할 때,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얼른 서둘러 짐을 꾸렸다. 먹다 만 음식을 배낭에 꾸역꾸역 넣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나는 이후에 이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

▲ 이번 구간 최고봉 눌의산에서 전용정 산악대장.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백두대간 해설사로 등장한 이지련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김성국-김경숙 부부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장소영-이가빈 모녀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작은 능선들을 짧게 오르내리며 도착한 이번 구간 최고봉 눌의산. 여기에서 모두 기념촬영 후 미끄러운 진흙길에 대처할 아이젠을 착용한다. 출발 전 착용한 스패츠가 눈길 아닌 빗길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미끄러운 진흙길에 아이젠을 차게 될 줄은 생각 못했었다.

돌이켜 보면 눌의산 꼭대기부터 추풍령까지 일관된 내리막길에서 아이젠과 스틱이 없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을 것이다.

전진하는 대열을 뒤에 처져서 잡아당기는 나와 달리, 앞서서 길을 가며 시원시원하게 미끄러져서 넘어져, 지친 대원들에게 큰 웃음을 준 김성국 대원도 이 구간에서 아이젠 덕을 본다. 그래서 우린 웃을 일이 없어졌다.

▲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진 김성국 대원. 사진이 각도가 이상하게 표현되어서 그렇지, 김성국 대원은 분명히 누워있는 거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미끄러진 김성국 대원를 보고 파안대소하고 있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미끄러움과 함께 이번 산행에서 어려웠던 것은 손시림이다. 몸과 발은 악천후에 대비를 잘 해 별 문제가 없었으나,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장갑들이 젖어 애로가 많았다. 가빈이 같은 경우 장갑이 젖어 엄마 장소영 대원이 단속을 새롭게 해주느라 중간에 자주 서 있곤 했다. 산길에서 나를 만나다니...  

▲ 겨울 찬비에 어린 종주대원들도 고생이 심하고, 엄마는 마음도 노고가 깊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물론 나도 겨울비에 손이 시리긴 마찬가지였다. 비에 젖지 않는 방수 장갑이 필요한 건가. 등산용 방풍 보온 장갑이 집에 몇 개나 있는데, 딱 요 방수장갑만 없다. (물론 가빈이에게 얘기해 주었듯이 목장갑에 설거지용 고무장갑을 덧끼면 완벽해지긴 한다.) 불과 몇 시간 산길 걷는데, 그걸 걷고 나면 몇 달 어치 아쉬운 장비가 생긴다.

▲ 하산길. 오동진 후미대장과 함께 보무당당히 내려오는 변광무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하산길 끝이다. 다왔다. 만세!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추풍령을 기억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추풍령을 보고 싶었다. 이제껏 살면서 경부고속도로를 셀 수 없이 오가며 추풍령을 지났다. 우리 종주대의 문화해설가 이지련 대원 설명대로, 백두대간을 끊어 타고 있는 경부고속도로가 그 한 점을 지난다.

결과적으로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순간 추풍령 포인트를 지나다닌 거다. 그리고 연전에 출장길에 추풍령 옛 길을 차로 지난 적도 있다. 그 때 길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추풍령을 걷고 싶었다.  

▲ 이 토끼굴이 백두대간 추풍령 본 길 맞다. 이 굴 위가 경부고속도로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내 형이 대학교 다닐 때,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 온 형 친구가 부산에 있는 애인과 매주 일요일 영동에서 만나 데이트를 한다고 했었다. 서울역과 부산역 딱 중간이라고. 중학생이었던 나는 괜히 영동이란 곳이 궁금했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아무 뜻 없는 10시간이 주어지면 영동 황간 읍내에 있는 짜장면집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것만은 아닐 게다. 산길을 내려와 경부고속도로로 덮인 토끼굴로 남아있는 대간길을 걸으며 이지련 선배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죽은 77명의 위령탑, 이런 얘기들도 해 주었지만 또 그것만도 아닐 것이다.

스무 살 시절, 당시에도 내게 별 다른 의미가 없었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선배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술이 많이 되면 그는 항상 추풍령이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도 별로인 노래고, 그 선배도 노래를 잘 못 불렀다.

아마 노래를 별로 할 줄 모르는 양반이 아는 노래가 이거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근데 그 때 이 양반 노래를 들으면 참 슬펐다. 그냥 그런 유행가 가락인데 내 기억에 그 노래는 그런 느낌으로 남아 있다.

날씨가 맑았으면 오히려 안 좋았을 수도 있다. 그 길에서 내려다 봐야 경부고속도로가 너무 많이 보였을 거니까.

▲ 날머리 추풍령에서 기념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어쨌거나 난 추풍령을 걸어보고 싶었다.

추풍령 읍내에 내려서니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둑한 저녁 하늘엔 어느새 비구름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발에 묻은 흙을 적당히 털고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 후기

그나저나 큰일이다. 새해 들어 지금 돌아가는 모양이. 졸고 앉았는데 새벽이 온 꼴이다.

우리가 희망했듯이,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북측 구간을 가는데, 생각보다 일정이 빨라지는 건 아닌지. 또 이걸 걱정해야 되는 건지. 어쨌거나 시간이 없다. 개인 체력 강화와 종주대의 전열 정비가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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