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외교와 경제에 힘 실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강력한 핵 억지력,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5호 시험 발사 후 김 위원장은 “비로소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강국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선포한 바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핵 무력 완성 선언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호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군사적 선택을 배제하면 남는 과제는 외교와 경제다. 미국이 최고수위의 압박과 제재를 하는 가운데, 이에 맞서는 대안으로 대외 고립 탈피와 경제 건설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전략적 노선으로 삼고 있다. 신년사에서는 이를 기초로 올해 목표와 과제가 제시돼 있다. 우선 ‘핵 무력 건설’에서 올해의 목표는 ‘실전 배치’로 제시됐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 연구 부문과 로케트 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제시했다. 문맥상으로만 보면 이미 핵과 미사일의 위력과 신뢰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핵 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보다는 대량생산을 통한 실전배치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로는 ‘핵무기의 실용화’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실증하겠다는 것으로, 역으로 ‘동결과 유예’에 기초한 북미협상을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올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보다 올해 하반기에 새로운 인공위성(광명성 5호)을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북미관계에 따라 북한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역시 경제 건설분야다. ‘핵과 미사일’과 달리 경제분야는 속도전으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년사는 2016년 조선노동당 7차대회에서 제시된 ‘국가경제개발 5개년 전략’에 기초해 올해의 목표와 과제를 제시했다. 신년사에서 제시한 구호는 “혁명적인 총 공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 쟁취하자”이다.

지난해 이룩한 핵무력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를 새로운 도약대로 삼고 경제건설에서 총공세를 벌려 나가겠다는 취지다. 북한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우는 만큼 올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경제 건설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의도다. 미국의 ‘대북 제재 무용론’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최소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거나 넘어서야만 한다.

전력문제 해결은 여전히 난제

전반적인 기조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서 제시된 경제목표를 달성해 경제분야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으로 제시됐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부문에서 ‘최고 생산 연도’의 생산치를 돌파하고, 산업별·지역별 불균형과 격차를 해소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기본목표가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여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북한은 지난해 김책제철연합기업소와 뜨락또르(트랙터)공장의 현대화 등 금속, 기계공업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특히 방직, 신발, 식료공업 등 경공업 분야에서는 상당한 실적을 낸 것으로 보인다. 신년사는 “방직 공업 신발과 편직 식료공업을 비롯한 경공업 부문의 많은 공장들에서 주체화의 기치를 높게 들고 우리의 기술 우리의 설비로 여러 생산공정의 현대화를 힘있게 벌여 인민소비품의 다종화 다양화를 실현하고 제품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담보를 마련하였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전망”, “실현할 수 있는 담보”라고 표현했듯이 북한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관과 과제는 산적해 있고, 목표 달성 여부도 유동적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강화로 대외무역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북한은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 강화, 인민생활의 개선 향상을 경제 건설 주요 방향으로 제시했다. 북중무역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자강력제일주의’를 내세워 중국 의존도를 줄이며, 중공업분야의 기반 시설 투자를 늘리고, 경공업분야의 국산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은 전력문제의 해결이다. 신년사에서도 전력 부문을 가장 먼저 거론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전력공업 부문에서 자립적 동력 기지들을 정비 보강하고 새로운 동력자원 개발에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각 도에서 “자기 지방의 특성에 맞는 전력생산 기지들을 일떠세우며 이미 건설된 중소형 수력 발전소들에서 전력생산을 정상화하여 지방 공업 부문이 전력을 자체로 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제시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전기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갈 수 없고, 인민생활 개선도 어렵다. 김정은체제 출범이후 북한은 중앙에서 전담하던 전력공급사업을 각 도들이 국가통합관리체제 안에서 자체의 실정에 맞게 책임적으로 하도록 했다. 또한 전력공급에서 ‘평균주의’를 없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단위들에 우선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되, 그 단위가 생산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전기 공급을 하지 않고, 원료와 자재를 비롯해 생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춘 단위들에 전기를 공급해 낭비를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공업의 재건을 위해서는 지방별로 자체 전기 확보가 대단히 중요해졌다. 자강력제일주의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자강도 초산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초산군은 압록강과 접해 있는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초산청년1호, 2호발전소를 건설한데 이어 2016년 초산청년3호발전소를 완공했다. 이를 통해 수천KW의 발전능력을 조성했고, 군내 지방산업공장과 주민들에게 전기 공급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자 포도술공장, 비누생산 화학공장 등의 현대화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력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데 북한 당국의 고민이 있다. 신년사에서 “지방의 특성에 맞는 전력생산 기지” 건설을 강조했지만 지방의 시·군 자체적으로 중소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북한은 전력설비의 현대화, 전기 절약, 시간대별 교차 공급 등 여러 대안들을 제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단기적으로 초산군이나 원산시(군민발전소 완공)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대규모 단천발전소를 완공하고 각 지열별로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 지열·태양광 발전을 확대하고, 중국·러시아와 협력해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특구 확대, 지방 도시 재정비 강조

금속·화학·기계공업과 농업·수산업 분야에서는 기존의 정책과 다른 방향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건설분야에서는 기존에 착수한 사업의 완수와 새로운 단위의 건설 사업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에 군민이 힘을 합쳐 원산갈마해양관광지구 건설을 최단기간 내에 완공하고 삼지연군 꾸리기와 단천 발전소 건설, 황해남도 물길 2단계 공사를 비롯한 주요 대상 건설을 다그치며 살림집 건설에 계속 힘을 넣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갈마해양관광지구 건설은 원산경제특구 건설의 일환으로 보이며, 마식령스키장·갈마비행장 건설, 호텔 건설, 석왕사 정비 등에 이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부터 원산특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12월 21일 평양시 남서부에 있는 강남군 고읍리 일부 지역에 강남경제개발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이 사실을 23일 발표했는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2397호가 통과된 다음 날이다. 경제 제재와 관계없이 경제특구 확대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보인 셈이다.

‘삼지연군 꾸리기’는 백두산지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며,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11월과 지난해 12월 직접 삼지연군을 시찰했고, “삼지연군꾸리기에 전당, 전국, 전민이 총동원되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이 10여 년 만에 다시 삼지연군 개발에 힘을 쏟는 의도는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 삼지연군을 산간도시의 본보기, 표준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김정성 량강도당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조선노동당 이론기관지 <근로자>(2017년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삼지연군 개발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삼지연군을 혁명전통교양의 대로천박물관으로, 우리나라에서 감자농사의 본보기단위, 지방공업이 제일 발전된 잘사는 곳으로, 농촌경리의 종합적 기계화를 실현하는데서 제일 앞선 전형단위로,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희한한 고장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삼지연군을 산간도시의 본보기, 표준으로 꾸리려는 당의 의도를 실천으로 받들어나가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지만 ‘본보기’ 단위를 만들고 이를 다른 분야나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사업방식이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평양에 애육원, 양로원을 현대식으로 건설하고, 이를 모델로 지방 주요 도시에 애육원과 양로원을 새로 건설했다. 평양의 김책공업종합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에 전자도서관이 우선 설치된 후 이어서 각 도에 전자도서관이 들어선 것도 같은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혁명전통의 상징적인 지역이지만 고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상 낙후된 삼지연군을 현대적인 마을로 재건축하고, 이를 북한 전역의 산간마을로 확산시키겠다는 게 북한의 구상이다. 평양에 창전거리, 미래거리, 여명거리에 아파트와 주상복합 고층빌딩이 들어선 후 신의주, 원산, 함흥 등 주요 도시에 고층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도시 재정비사업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2000년대 후반에 지방 도시 재건축계획안을 확정했지만, 지방 자체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하도록 해 속도 자체는 빠르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 도입 재확인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기반 확충과 함께 경제관리의 개혁방안으로 제시된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의 안착에도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신년사에서 “국가적으로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가 공장·기업소·협동단체들에서 실지 은을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경제관리방식의 개선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업경영방식과 협동농장의 포전담당제 도입이 시범적으로 실시된 후 2014년 5월 30일 당·국가·군대기관 책임일군(간부)들과 진행한 담화 ‘현실발전의요구에 맞게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데 대하여’(5.30담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관리방법으로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를 제시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공장, 기업소의 자율성을 높여 계획과 경영 권한을 기관과 공장, 협동단체에 대폭 이관한 것이다.

기업 책임관리제의 확산은 각 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새로운 ‘경영전략’을 고민하도록 사회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5.30담화’에서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은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의 요구에 맞게 경영전략을 잘 세우고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하여 생산을 정상화하고 확대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경영전략의 초석”이라며 간부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 책임관리제의 전국적 확산은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의 사고방식을 실리 추구로 바꾸고, ‘시장경제적 요소’를 사회주의체제에 접목시키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단기적으로 북한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주민들의 소득증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올해 신년사를 통해 북한 경제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 스스로도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기본목표에 따라 낙후된 산업을 현대화하고,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방향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제제재 완화 또는 해제이후를 대비해 경제특구 확대와 기존 경제특구의 기반 확충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북한 경제에 일정한 타격을 주겠지만 북한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내부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무역과 중국의존도를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경제특구 확대 등 대외개방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북한이 ‘경제와 핵 병진노선’에서 어느 쪽에 더 방점을 찍느냐, 어느 정도 대외적 환경이 뒷받침되느냐가 올해 경제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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