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라파엘처럼 그리는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피카소)

 

묵화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무슨 미술 대전에서 상을 받은 동창생이 자신의 그림과 자축하는 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전통 한옥과 폭포가 있는 흑백 사진 같은 동양화 옆에 그의 약력이 빼곡히 적혀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그가 몇 년 만에 화가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뒤샹이라는 화가를 생각했다. 그는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작품명을 붙여 일약 세계적인 화가가 된 사람이다.

그를 언급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현대는 ‘한 생각’이 작품이 되는 시대다.

한 세계적인 현대 작가는 조각상을 받치는 ‘좌대’만 거꾸로 전시했다. 나는 그 작품을 인터넷에서 보는 순간, ‘아, 지구가 작품이구나!’하고 탄식했다.

학창 시절에 피카소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당시 좋은 그림을 ‘무엇과 거의 똑같이 그린 그림’으로 알고 있었기에 도무지 무엇과 조금도 비슷하게 그리지 않은 그림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나는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인문학을 접하고서 피카소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현대의 미술은 더 이상 ‘똑같이’ 그리려고 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큰 아이는 다섯 살 때 한 미술 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았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딸을 미술학원에 보낸 걸 후회하는 어느 철학 교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우리 아이는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미대 입시를 앞두고 아이를 입시미술학원에 보내며 가슴이 아팠다.

석고상을 똑같이 그리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 미대 입시에서 실기를 없앴다가 다시 부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큰 아이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는 똑같이 그리는 그림을 아예 입시에서 보지 않았다.

주로 ‘아이디어’를 보는 것 같았다.

아이는 독일의 미술 공부 방법이 참 좋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쳤으면 한다.

피카소가 한 평생 가지려 했던 ‘아이의 마음’ 같은 것.

김종삼 시인은 ‘묵화’를 보고 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마음’이 서려 있다.

그런데 요즘 동양화에서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영혼 없는 그림’ 같다.

오랫동안 똑같이 그리려 노력한 마음이 짙게 느껴진다.

그러면 화가가 되는 건가?

오랫동안 공무원의 한 길을 걸어 간 동창생.

‘그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면 어떨까?

술기운에 발그레해진 얼굴로 자신의 인생을 푸념하던 그의 마음이 보고 싶다.

자신의 마음이 아닌 그럴듯한 동양화 한 폭을 그리고선 화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위안하는 그가 안타깝다.

그가 ‘화가’를 포기하고 ‘현대미술’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의 인생이 훨씬 풍부해질 텐데.

그에게 ‘화가’라는 명함은 버릴 수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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