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일 오전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 당국회담과 민간교류의 재개를 제안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올해 신년사의 초점은 경제와 남북관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 당국회담과 민간 교류의 재개를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7월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을 발표하고 북한에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한지 6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돌발변수만 없다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한미합동군사 연습의 연기가 확실시 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에는 “자주통일의 새시대”, 2017년에는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에 비해 추상적 표현을 피하고 상당히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은 점이 눈에 띈다.

또한 남북 당국회담과 함께 정당, 사회단체 등의 전면적인 교류와 대화의지도 밝혀 조만간 남북 민간교류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북과 남의 접촉과 내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여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진심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해 신년사에서 “각 정당,단체들과 해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이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실현하고, ‘거족적 통일운동의 전성기’를 열어나가자고 제안했던 것에 비해 다소 수위가 낮아졌다.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민간교류 재개와 함께 지난해 무산된 전민족대회 추진을 다시 추진할 의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1948년 남북연석회의가 열린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대화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 수용,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통과 다음 날 평양 강남개발구 설립 발표 등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12월 5년 만에 열린 당 세포위원장 대회 폐회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놓은 일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당 중앙은 인민을 위한 많은 새로운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 적극적으로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대남정책 기류가 변화하고 있는 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을 통해 남북 교류와 대화에 강력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은 데는 몇 가지 대내외적 환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향적인 북한의 남북대화 제안 배경

첫째는 미국의 대북압박과 ‘탐색적 대화’에 대응해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으로 맞서면서 ‘평화 의제’로 대화를 모색했으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 공식, 비공식 북미접촉을 통해 북미대화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석방된 오토 웜비어의 사망, 김정남 사건 등으로 역풍을 맞았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화와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고려 등으로 북미관계는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으로서는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외교와 평화공세에 나설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북한 내부의 대미, 대남 강경 입장을 내세운 목소리가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3년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내놓은 후 지금까지 이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도 기본 골격은 ‘경제와 핵 병진노선’에 정확히 기초해 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이 노선이 나온 후 국면마다 병진의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 정책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지를 두고 상당한 정책적 공방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나타난 ‘이상한 널뛰기’는 대외적 환경과 함께 이러한 내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북미관계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국가보위성의 주요 간부들은 모두 교체됐고, 인민군 총정치국도 조직지도부의 검열을 받았으며, 지난해 말 김정은 위원장의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군부의 발언권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남쪽에서 상대적 대남강경파로 분류되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대남담당)도 지난해 하반기에 견책을 당해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부적으로 ‘고립 탈피’를 위해 국면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외교·경제관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셋째는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에 성과를 내고, 신년사에서 언급한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을 ‘대경사’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 마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신년사에서 언급한 대로 북한이 올해 9월을 ‘대경사’로 맞이하고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이 수반되어야 하고, 이것은 이미 ‘완성’을 선언한 핵과 미사일 개발 성과로는 대체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의 확고한 전망을 열고 나라의 경제전반을 보다 높은 단계”에 올려 세우기 위해 경제건설에 주력하겠다고 피력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소기의 경제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예고한 만리마선구자대회가 개최되지 못하고, 올해로 연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디지 못하고 나오든, 북한의 내부적 필요로 국면전환을 시도하든 북한의 올해 핵심키워드는 ‘경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고립 탈피와 ‘평화적 환경’ 조성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적 환경’ 마련의 한 축인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북한만 빼고 주변국에 특사 파견한 것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7월 이후에는 ‘올해 말까지 우린(북한은) 남쪽과 상대 안 한다. 미국과 끝장 보기 위해서 우리 길을 간다’라는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도 긴장완화를 위해 필수적인 남북관계를 마냥 단절된 상황으로 두기는 어려웠고, 미국이 북미대화에 언제 나올지 모르는 조건에서 평창올림픽이라는 호기를 활용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병행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대내외 환경 속에서 북한 최고지도자가 신년사를 통해 직접 남북 당국대화와 민간 교류를 사실상 제안했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에는 남북대화와 교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일단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고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른 후 남북대화를 정례화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특히 평창올림픽과 겹친 시기에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연습이 미국의 동의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재인 정부에게는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체육회담과 적십자회담이 최우선 순위

북한의 대화 제안에 청와대는 환영의 뜻을 표하며,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시기·장소·형식에 구애됨 없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협의를 거쳐 회담의 형식과 내용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미 국무부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남북대화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했기 때문에 남북대화에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은 우선 평창올림픽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체육회담을 열고 선수단 숙소와 방한 경로, 응원단 문제 등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년사에서 선수단이 아닌 ‘대표단 파견’을 언급했기 때문에 북한은 선수단 외에 고위급대표와 응원단도 함께 올 것으로 보이며, 육로 통과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최휘 당 부위원장 등이 포함된 대표단이 올 경우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남북간 군사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회담 개최 등이 자연스럽게 논의될 것이다. 체육회담과 적십자회담이 동시에 열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말 대한적십자사 고위관계자는 “조만간 발표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체육회담과 비공식접촉을 통해 응원단이 포함된 북한의 대표단과 선수단이 평창올림픽에 육로로 참가하고, 올림픽 개막식 전날 금강산에서 ‘남북 평화콘서트’ 같은 공동행사를 개최하는데 남북이 합의한다면 최상의 모양새가 될 것이다. 물론 대화 기간 북한이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유예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 대화 창구 필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남북 간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 신호”가 될 것이다. 문제는 올림픽이 끝난 이후다. 북한이 남북관계와 별개로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에 반발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자주적인 권리행사를 내세워 위성 발사 로켓을 발사할 경우 상황은 대단히 복잡해 질 것이다. 일단은 김정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남북대화와 교류를 언급했고, 문재인 정부도 대화의 연속성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이기 때문에 6월 또는 8월까지는 대화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대화 제의를 한 것에 대해 ‘통남봉미’(通南封美) 전략, 즉 당장 미국과의 직접 대화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는 대립각을 계속 세우는 반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신년사는 통미봉남에서 통남봉미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 선후의 문제이지 통남통미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 사정권 앞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위협’했지만 미국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한 대응차원으로 보이며, 전반적으로 대미 비난의 수위는 조절된 느낌이다. 서울을 거쳐 워싱턴과 대화를 모색하든, 서울과 워싱턴 동시대화를 추진하든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은 북미·남북대화 병행에 맞춰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반기 중간선거를 앞두고 ‘군사적 선택’보다는 정세 관리와 대화에 중점을 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 대화가 시작돼 긴장이 완화되면 북미가 대화에 나설 공간이 확보되고 이는 곧 북핵문제와 평화체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북핵폐기를 전제로 하는 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이 북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남북대화를 이어나가야 하고, 남북대화와 교류를 북핵문제와 분리해 동시에 추진하는 한편, 북미대화에도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시점에 남북관계 전반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특사의 상호 교환 또는 남북장관급회담을 추진하고, 다양한 형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북한 당국이 집중하고 있는 산림녹화정책을 활용해 육로로 묘목을 지원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어렵사리 남북관계에서 국면 전환의 계기를 잡았지만 대화가 시작되면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미국과 중국과는 어떻게 대북정책을 조율해 나갈지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서게 될 것 같다.

* 신년사 분석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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