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사이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예민한 쟁점은 지지기반의 문제, 특히 호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국민의당에서 호남 중진과 안철수 사이의 갈등이 그러하다.

1987년만 해도 민주화운동의 동력은 서울·부산·광주로 삼분되었다. 3당합당으로 부산이 이탈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영남에 승리했다. 2002년을 끝으로 주도권은 서울로 이동한다.

2008년 촛불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서울이외의 모든 동력을 합쳐도 서울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외형적으로 영호남이 승부를 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수도권에서 표심의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2년 4월 총선에서부터 선거에서의 지역구도 또한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12년 4월 총선에서 당시 민주당·통합진보당이 전체 득표수에서 새누리당을 앞섰다. 부산경남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지만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표 차이는 의미 있게 줄어들고 있었다.

2017년 촛불시위도 이런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부산과 광주, 대구 시위 규모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촛불 시위 당시 대구 시위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대구가 보수의 아성이라는 것은 60대 이상의 이야기다.

대체로 50대와 60대 어느 지점에서 계선이 갈린다. 지역을 중심으로 민심을 가를 수 있는 것은 주로 60대 이상이다. 20~40대는 호남이나 영남이나 그냥 동질의 집단이다. 그들은 아마도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사람들을 구분할 것이다.

지역의 몰락은 보다 심각한 함의를 담고 있다. 한국은 전국에 고루 인구가 밀집된 영토국가에서 수도권 중심의 점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수도권이 비대해지면서 충청·강원권으로 확대되는 반면 영호남은 빠르게 공동화되고 있다.

이제 수도권은 영호남과 교류하기보다는 해외와 교류한다. 연휴 때면 해외여행이 줄을 잇는다. 향후에는 서울-부산-대구-광주를 연결하는 선보다 서울-동경-북경-하노이를 연결하는 선이 보다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지역은 역진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 기반을 두자는 이야기는 논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면 퇴로가 없다. 당연히 수도권이 정세의 중심이다.

                                                            2.

수도권에는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 중 누구를 지지기반으로 해야 하는가?

첫째, 20~40대 청년층, 민주화 감수성이 농후한 집단이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지지기반이다. 민주화와 진보적 사회경제정책을 주된 담론으로 하고 있다.

이들 중 50대·남성·문과형 파워 엘리트 집단이 한국사회의 주역이다. 이들을 대체할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위 집단 내부에서 사변적 색채가 강하고 감성적인 이벤트에 강한 이념적 좌파의 영향력이 큰 점이다. 2003년 노무현 정권 당시와 많이 다르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엘리트 집단이 실용적 색채가 짙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보다 이념적 지향이 강한 듯하다.

장기간의 적폐청산 국면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는 초입국면에서 발생한 사건이 대통령의 중국방문과 서민 교수의 반발, 문빠의 반격이다. 중요한 정치적 변곡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감싸고 있는 돌출적이고 사변적 분파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구성하는 세력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 분파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이게 대통령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풍모와 부정적인 방향에서 어울리는 것 같다.

20~40대 청년·여성층이 진보적 사회개편, 특히 복지담론의 주역인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타켓으로 한 대담한 정책을 추진해볼 만하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 정책이 전체 사회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최저임금제와 같이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농후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경제정책이 진행되어야 한다.

위 흐름이 정규직 고용의 노동경직성, 일자리와 가정이 양립하는 대개혁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이들 사안은 한국사회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등장한 50대·남성·문과 집단과 충돌한다. 지금은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여성 집단이 적폐청산이라는 거대한 허구에 단단히 묶여 있다.

범세계적으로 보면 드문 현상이 아닌가 싶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오큐파이(occupy, 점령하라) 운동 등이 진행되고 이를 배경으로 젊은 리더들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8년의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간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50대 중반에 불과하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보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도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이다.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또 다른 집단은 자영업자를 비롯한 도시 서민이다. 자영업자는 대책이 없다. 386 버전의 역사책에는 자영업자는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우파라면 적폐청산이나 안보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자영업자의 불만에 착목할 것 같다.

미국과 유럽에 저학력 백인 노동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50~60대 고령 자영업자가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입장에서는 유혹적인 대상이지만 여기에 발을 담그면 안 된다고 본다.

비슷한 대상이 노인이다. 어쩌면 한국의 노인은 반려견보다도 못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ㅜㅜ)

                                                             3.

50대·남성·문과 파워 엘리트 집단과 경합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한국의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이과형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은 성장과 혁신에 민감하고 신기술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변화할 지에 주목한다. 시야 또한 글로벌하다.

문과형 엘리트 집단에게 주도권이 있지만 실력 차이는 아득하다.

나는 남한산성이 어떻고 위안부가 어떻게 하는 것에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칸트나 플라톤, 맑스나 케인즈를 논하는 것도 비슷하다. 거기에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불행히도 권력에 근접한 정도가 강할수록 거대 담론과 이념적 성향이 강하다. 그들의 삶과 일상은 권력 관계 또는 사람들 사이의 친소관계로 얽혀 있다.

당연히 과학기술과 디테일한 전문성에 약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과학기술 예산이 삭감되고 창조과학자를 벤처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일에 치여 우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것이다.

지난 6년간 내가 배운 귀중한 결론 중 하나는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수학이나 과학에 보내는 관심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관심은 양념이나 구색 맞추기에 가깝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한 실력을 내장한 과학기술인들의 정치적 발언이 너무 온순하다는 점이다. 당연할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지난 수십 년간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절을 거쳐 왔다. 반면 이과형 엘리트 집단은 정치적으로 풋내기에 가깝다.

                                                            4.

결론을 내려 보자.

지역에 뿌리를 둔 구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여기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 당연히 정치의 중심은 수도권이다.

수도권에서 문재인 정부의 입지는 견고하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은 50대·남성·문과 엘리트 집단과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불행한 것은 청년·여성들이 여기에 너무 강하게 포박되어 있는 점, 이과형 엘리트 집단이 파워 엘리트 집단의 주도권을 너무 쉽게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다음과 같은 기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분배에 대응하는 혁신과 규제 타파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둘째는 역사·문과형 문화와 사상을 과학과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셋째, 진보적 사회개편이 정규직 고용을 포함한 노동 개혁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북핵을 용인하는 새로운 발상이 중요하나 이걸 국민의당·바른정당에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둘째, 정치적 포지션은 정지지형을 3분화하고 중간지대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을 토대로 청년 등 새로운 세력이 정치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화세대의 쓸데없는 우려는 우파의 복권 가능성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맏형인 55년생이 60살을 넘어 섰다. 1987년 6월항쟁 때 학생이던 내가 50대 중반이다. 촛불 시위 당시 대구는 청소년들의 대거 참여로 광주 시위에 버금갔다. 우파의 복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이후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하는 대통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철수나 국민의당의 입장에서는 그거야말로 자멸의 길이다.

범여권과 자유한국당 중간 지대에 새로운 감수성과 사회세력으로 무장한 신선한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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