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 전략과 패권 전략의 충돌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자유무역’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세계사에 일으킨 가장 근본적 변화는 미국의 ‘자유무역’ 포기다.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1.24),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부정(3.1),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4.26),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 재협상 통보(7.12) 등 후보 시절의 관련 공약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

“당신이 백악관 사무실 책상 뒤에 앉으면 평생토록 들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결정을 하게 된다(8.21. 아프가니스탄 추가파병 TV연설)” 등 약속 뒤집기를 결코 마다치 않는 그가 왜 이럴까? 비주류 트럼프의 이단적 언행이란 해설은 사실과 다르다. 작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겨룬 힐러리 클린턴 역시 TPP 반대를 강력 주장했다. 2016년 8월 힐러리 당시 대선 후보는 러스트벨트(지금은 쇠락한 옛 공업지역) 지역의 대표 격인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TPP 반대 공약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나 많은 기업이 상품을 외국에 팔 목적으로 무역협정 성사를 위해 로비를 해 놓고 정작 그들은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한 뒤 물건을 미국에 다시 되팔았다.”

디트로이트는 1903년 헨리 포드의 자동차공장 설립 이후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3대 기업이 집중된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군림, 미국의 5대 도시로 성장했다. 오대호의 물길을 타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과 인근 주들의 철강, 기계, 정유 등 연관 산업이 시너지를 내면서 러스트벨트 9개 주의 전성기가 열렸다. 그러나 값싸고 질 좋은 일본 자동차가 몰려오면서 “1990년에는 베스트셀링카 10대 중 4대가 일본차일 정도로(조선일보.2013.7.19)” 자동차 자본은 위기를 맞는다.

돌파구는 ‘자유무역’이었다. 1993년 9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나프타협정에 서명한다. 포드, 카터, 아버지 부시 등 민주, 공화당을 망라한 전직 대통령들의 서명식 참석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지배세력의 담합 결과다. 이로써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은 관세 없이 상품과 기업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경제권이 됐다.

미국의 제조업 자본이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앞 다퉈 멕시코로 이전한 것은 불문가지다. 이렇게 세워진 멕시코의 미국계 공장들은 자동차, 전자제품, 식품 등 온갖 상품을 미국 시장에 팔았다. 세금은 예전과 같은데 임금은 몇 배 저렴해진 덕에 미국의 자본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다.

대신 미국 제조업은 비어갔고 일자리는 사라져갔다. “미국 디트로이트시가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때 전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공장들이 빠져나가면서 도시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VOA.2013.8.2)” 중앙선데이(2017.4.16)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만 미국 일자리 600만 개가 사라졌다. 그러고도 공장 이전은 멈추지 않았다. 올해 초 에어컨 회사 캐리어가 1,400명 규모 인디애나 공장 멕시코 이전을 발표하는 등 일자리 유출은 계속됐다. 3개 국가 간 경제통합이 이 정도의 결과를 낳았는데, 12개 나라를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묶는 TPP가 발효되면 어떻게 될까? 미국인들은 ‘자유무역’이 두렵다.

트럼프는 작년 5월 공화당 주류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이른바 ‘대의원 매직넘버’ 1,237명을 확보, 대선 후보를 예약한다. “그의 충격적인 공화당 경선 승리는 과거 공화당이 지지하던 무역협정에 반대한 게 주효했다.(뉴스위크한국판.2016.7.25)” 민주당보다 훨씬 더 ‘자유무역’에 노골적이었던 공화당 주류를 그 당원과 지지자들이 심판했다. 내부 반란, 미국 정치의 ‘충격적’ 변화다.

그러나 공화당 주류의 상당수는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힐러리 지지로 돌아선다. 5월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전 대통령, 매케인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등 공화당의 대표적 인물들이 트럼프를 후보로 공식 확정하는 7월 전당대회 불참을 선언한다. 6월 헬리 폴슨 전 재무장관,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등 공화당 주류 인사들의 힐러리 공개 지지, 9월 아버지 부시의 공개 지지 선언이 나왔다. 민주당 힐러리와 공화당 주류가 사실상 연합한 것이다.

연합군의 화력은 대단했다. “클린턴은(...) 지금까지 1억5660만달러(1722억원)를 TV 광고에 썼다. 반면 트럼프는 3360만달러(370억원)에 그쳤다.(조선일보.2016.9.23)” 4-5배에 이르는 TV광고비를 쓸 정도로 돈이 몰렸고, 거의 모든 주류 언론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힐러리는 패했다. “미국 공화당이 1988년 이후 벌어진 여섯 번의 대선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지역이 미시간 주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간발의 차이(1만704표, 0.3%포인트)로 승리했다.(한국경제. 2017.1.15)”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 힐러리를 거부했다. 이른바 러스트벨트 9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TPP 반대로 말을 바꾸긴 했어도 오바마 정권의 초대 국무장관으로서 TPP협상에 관여했던 힐러리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호감도 조사에서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더 나쁜 점수를 받았다는 점이 말하듯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는 대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자유무역’보다는 트럼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 정치의 농담꺼리에서 대통령이 된 트럼프, 그 뒤엔 미국인들의 이런 딱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거나 지지했다간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 미국 정치인들의 뼈저린 체험이다.

패권 유지에 꼭 필요한 ‘자유무역’

트럼프의 TPP 폐기선언 이후 그것을 비판하는 발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을 소개한다.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이 타고 갈 수 있는 말들을 각각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말을 초원에 방목을 해 버렸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경주를 할 수 없게 됐다.(미국 컨설팅 기업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ASG)의 에릭 알트바흐 부회장. 뉴시스.2017.1.24)”

TPP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페루,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12개국이 참여, 2015년 10월 5일 타결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이다. 참가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치면 세계 40%를 차지, 유럽연합(EU)보다 1.5배나 더 크다.

그런데 그런 TPP에 중국은 참가할 수 없다. ‘국유기업에 대한 지원 철폐’란 바리케이드 때문이다. 미국과 정반대로 중국은 국영기업 비중이 높다.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가 에너지, 통신, 전력, 운송 등 국가 기간산업을 운영한다. 중국석유화공(시노펙),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 등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기업들이 거기서 배출됐다. 국유기업 지원을 철폐하란 것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포기하란 것이며 중국 경제를 해체하란 말이다.

미국이 2015년 10월 TPP를 타결한 것은 그해 6월 서명식을 마치고 본격 출범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견제할 필요성 때문이다. 중국은 2014년 10월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를 내놓으며 21개국을 모아 AIIB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2015년 2월까지 이른바 서방 국가는 여기 얼씬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통제가 먹힌 것이다.

그런데 가입 신청 마감일인 3월 31일을 얼마 앞둔 3월 12일, 미국의 둘도 없는 맹방 영국이 전격 참가를 선언한다. 둑은 무너졌고 3월 13일 호주, 14일 프랑스가 가입 의사를 발표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중 4개를 포함, 모두 56개 나라가 중국에 줄을 섰다. “미·일 연합군이 중국과의 줄다리기에서 졌다는 것이다. 패권이 교차하는 시대마다 익숙한 풍경이 있다.(조선일보.2015.4.6)” 일대일로 밑그림에, AIIB란 물감도 중국은 갖게 됐다. 일대일로에 투자할 돈과 정보와 사업 결정권까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집중되는 마당에 그 거대한 흡입력을 상쇄할 미국 주도 단일경제권을 빨리 만들지 않는다면 승부는 너무나 뻔했던 것이다. “변화하는 경제 규칙을 중국이 아닌 미국이 써야 한다” 오바마의 말이나, “TPP는 항공모함을 갖는 것만큼 중요하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말은 다 그런 맥락이다.

트럼프의 TPP 폐기는 남중국해 정세에 정확히 반영된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건 베트남이다. 난사군도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베트남은 1979년 중국과의 전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던 저력이 있어, 아세안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과 군사적 대치가 가능한 나라다. TPP가 발효되어 의류, 신발 등 주력품목을 중국보다 값싸게 미국에 수출하면 그만큼 미국과 밀착, 남중국해에서 가장 믿음직한 중국 견제 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베트남이 변한 것이다. 첫째, 베트남은 6월 21일 난사군도 해양에서 석유시추에 들어갔다. “시추 지역은 베트남이 '블록 136-03', 중국이 '완안 베이 21'이라고 각각 부르는 곳이다.(연합뉴스.2017.7.24)” 중국은 시추 시작 당일 ‘중국, 베트남 우호교류회의’ 대표단을 귀국 시키는 등 강력 항의했고 베트남은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시추작업을 중단(7.24)한 것이다.

둘째, 11월 12일 트럼프와 시진핑이 동시에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트럼프는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양자 무역협정”을 요구하고, “무역 불균형 해소책으로서 미국 무기 구입”을 제안했다. TPP라는 공동의 밥솥을 깨뜨리고 베트남 쌀독에 바가지를 들이댄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찌 중국과 대치를 계속하랴.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은 “공동 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을 통해 남중국해 평화,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로”합의한다.

다음은 필리핀의 변화다. 작년 7월 필리핀이 제기한 국제중재재판소(PCA) 판결에서 남중국해의 중국 영유권을 전면 부정하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작년 10월 중‧필 정상회담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합의, 확전 대신 종전으로 방향을 잡는다. 올해는 거기에 속도가 붙었다. 5월 8-9일 중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초의 ‘양자 회담’을 연다. ‘승소’한 필리핀이 “중국의 영유권 없음”을 주장하지 않고 양자 간 협의로 문제를 풀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PCA 판결은 의미를 상실했고, 이를 고리로 중국을 압박하려던 미국의 계획도 힘이 빠졌다. 8월 25일 중국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석유, 가스 공동 개발에 합의”한다.

11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렸다. 관전 포인트는 첫째,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중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인가, 둘째,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 간 ‘남중국해 행동준칙(COC)’ 제정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었다. 트럼프는 “나는 매우 훌륭한 조정자이며 중재자(11.12)”라면서 중국과 아세안 10개국 간 중재 역할을 자임했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전선에서 이탈, 홀로 남은 미국이 남중국해 논의에 개입할 여지는 중재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세안은 이를 일축했다. 그리고 첫째, 의장성명에서 중국 비난을 일체 제외했다. 둘째, 아세안과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남중국해 행동준칙제정 협상에 공식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베트남을 떠나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역시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조선일보.11.14)”

2. 재정적자 확대 - 엔젠가는 터질 폭탄

미국 정부도 이자는 물어야

미국의 재정적자 심각성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이후 노상 들었으나 아직도 미국은 멀쩡하다. 과도한 빚을 안고도 이렇게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얼까?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돈이 달러인 까닭에 ‘외환위기’란 게 없다. 그러나 이런 ‘요술’에도 제약은 있다. 첫째 “연준을 국책은행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JP모건, 씨티은행 등이 주주인 사(私)기업이다. 연준은 미국 재무부 채권을 담보로 잡고 그 가치만큼 ‘빌려주는’ 형식으로 달러(지폐)를 발행한다. 이자도 받는다.(동아일보.2017.11.1)” 둘째 미 연준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 세계적으로 달러가 흔해지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달러 패권도 휘청거린다. 그래서 새로 찍는 것보다 미 재무부 채권을 중국, 일본 등에 팔아 ‘있는 달러’를 회수해 쓰는 것이 낫다. 여기서도 이자는 피할 수 없다. 이처럼, 부채가 늘면 이자도 늘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 정부라도 적자를 무한정 확대할 순 없다.

심각성 1 - 적자 확대 일변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2000년 5조6741억달러에서 2008년 10조달러로 증가한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2003) 결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퍼주며 재정적자는 다시 크게 증가, 2010년 14조3000억달러에 이른다. 재정적자가 증가했단 것은 그만큼 정부 부채가 늘었단 것인데, 미국에서 정부부채 증액 결정권은 의회에 있다. 2011년 8월 미국 의회는 ‘국가부채 한도 증액’ 협상에 들어간다.

금융위기 주범인 은행, 대기업 등을 구하기 위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정부 부채를 또 다시 늘린다니 국민 여론은 차갑다. 어떤 식으로든 여론 무마책이 필요했다. 당시 미 의회는 국가부채 한도를 2조4000억달러 증액하면서, 대신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의 재정 적자 감축 방안을 2012년 12월 31일까지 마련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재정 적자 감축 방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2013년 1월 1일부터 자동으로 예산을 10년간 1조2000억달러 삭감한다”는 예산통제법을 제정했다. 그 예산통제법에 따라 2013년 3월 2일 자동 예산 삭감(씨퀘스터)이 시행된다. 7개월 동안 850억달러를 삭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2013년 12월 민주, 공화 양당이 합의한 2014-15년 예산안을 오바마가 서명하면서, 예산 삭감 규모는 2년간 630억달러로 줄어든다. 10년 동안 1조2천억달러를 축소하려면 1년에 1천2백억달러를 줄여야 하는데, 2년 동안 고작 630억달러만 감축한단다. 이렇게 어물어물 하다가 결국 판을 뒤집는다. 2015년 10월 미국 의회는 향후 2년간 정부 예산을 800억달러 증액하는 한편, 당시 18조1천억달러에 묶인 부채한도를 증액하는 2016-17년 예산안을 통과시킨다. 그 결과 “미국의 정부부채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9조8000억달러(약 2경2360조원)에 달한다.(한국경제.2017.9.7)”

심각성 2 - 최대 안보 위협은 이자

재정문제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초당적으로 구성된 미국의 ‘재정책임개혁위원회’는 2012년 12월 보고서에서 1) 2025년경이 되면 미국 정부의 세금수입은 이자 상환과 의료보험 등 자격급여로 다 빠져나가, 그 밖의 모든 사업은 빚으로 충당해야 한다. 2) 늘어난 부채 때문에 2035년경에는 미국의 1인당 GDP가 15%나 감소할 수 있다(프레시안.2011.1.16)고 예측했다. 올해 현실은 어떨까? “미국 공공 부문의 총지출에서 이자 비중은 2009년 4.8%에서 올해는 5.8%, 2021년 8.2%까지 확대된다. 이에 비해 방위비의 비중은 올해 12.1%에서 2021년 10.3%로 떨어지며, 2026년에는 이자보다도 적어진다.(중앙일보.2017.2.27)”

2010년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은 “미국 안보에 있어 최대의, 유일한 위협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부채다. 이를 억제하지 못하면 미국은 결국 다른 나라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살일까? “대영제국이 해체된 것은 지급불능 때문이었다. 빚이 너무 많아서 해외 군사기지를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만약 미국이 군사적으로 제국의 쇠퇴를 겪는다면 금융적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재정적 무능 때문에 쇠퇴하는 것이다.(조선일보.2010.1.1)”

국무부 예산 삭감이 뜻하는 것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 행사의 기둥은 국방부와 국무부다. 국방부가 군사력으로 ‘위협’한다면 국무부는 말과 돈으로 회유, 포섭한다. 그런데 올해 그 기둥 중 한 개가 크게 상처를 입었다. 5월 23일 트럼프는 4조1천억달러 규모의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국무부 예산을 550억 달러에서 380억 달러로 30% 이상 대폭 삭감했다. 줄어든 돈에 따라 무엇이 줄어들까? 첫째 인력이다. 국무부 인력 7만6천명 가운데 8%를 감축한다. 둘째 해외 원조다. “대부분 국제개발처 등 해외 원조 예산에서 줄이는데요. 외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VOA.2017.5.24)”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것은 환경보호청 예산이 31.4%나 삭감돼 57억 달러로 내려앉은 것이다.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6.1)한다. 지구 온난화의 재앙에서 인류를 지키기 위한 195개국의 합의를, 세계 질서를 주도한다는 미국이 거부한 것이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6월 2일 중국과 유럽연합은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준수를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트럼프는 왜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나? 협정을 준수하려면 미국은 “2025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보다 26~28% 줄이고, 이를 위해 2020년까지 30억 달러를 지원하게 돼 있었다(중앙일보.2017.6.2)” 여기에 개도국의 온실 가스 감축 비용 지원금이 추가된다. 그런데 환경보호청 예산을 대폭 깎았다.

국무부 예산 삭감은 또 어떤 결과를 만들까? 미국은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2017년 출연금 3250만달러의 집행을 보류(4.3)한다. 또한, 분담금 5억5천만달러를 연체중인 유네스코(UNESCO,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탈퇴(10.12)한다. 국제기구뿐 만이 아니다. 이집트에 대한 군사, 경제 원조 1억 달러를 삭감하고 2억 달러의 집행을 연기한다고 발표(8.22)한다. 중동 전략에서 없어선 안 될 국가, 이집트한테도 이런다. “멕시코와 이집트, 태국, 타지키스탄, 기니 등 5개 나라 정상이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 초청국 대표로 동참합니다. 이집트는 트럼프 새 미국 행정부가 대규모 원조금을 삭감하거나 보류하면서, 경제협력 대상을 새로 찾아야 하는 형편입니다.(VOA.2017.8.31)” 미국의 견인력이 약해지면 중국의 흡입력이 작용한다.

3. 불길한 징조 - 경제 포기, 군사력 증강.

경제포기 1 - 재정적자 1조5천억달러 추가

트럼프는 향후 10년간 세금 수입이 1조5000억달러 줄어드는 세제 개편을 관철했다. 그중 1조달러는 법인세 감면, 나머지도 고소득 전문직 소득세 감소, 상속세 면제 범위 확대 등 전부 부자감세다. “이번 감세로 기업이 고용, 투자를 늘려 장기적으로 3-5%의 경제성장과 개인당 연 4000달러의 소득 증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백악관의 주장이다.

MB가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를 하며 불렀던 노랫소리와 같다. 상위 1% 세금 감면해준 이후 우리 경제가 살아났나?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경우는 판매가 늘어나, 생산을 늘려야 할 때다. 판매가 증가하려면 소비가 되살아나야 하는데, 그 소비자는 여기나 거기나 99% 서민이다. 부자감세는 투자, 고용이 아니라 재정적자를 늘려, 경제에 무거운 짐만 지운다.

경제포기 2 - 복지예산 삭감

트럼프 정권에게 재정적자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8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5.23)하면서 향후 10년 간 재정적자를 3조6천억달러 축소할 방법도 동시에 내놨다. “여러 복지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10년 동안 3조6천억달러를 줄인다는 겁니다.(VOA.2017.5.24)” 경악스런 방법이다.

메디케이드(빈곤층 건강보험) 8천억달러, 푸드스탬프(빈곤층 식료품 보조) 1930억달러, 연방 공무원 연금 630억달러, 실업수당 532억달러 등 복지예산이 다 날아간다. 재정적자를 줄인답시고 복지예산을 대폭 깎으면 사람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의료비 부담이 늘고, 연금과 수당이 줄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는 더욱 얼어붙고 경제는 더욱 악화된다.

‘미국 제일주의’ 1년 - TPP, 미국 빼고 출발

트럼프는 TPP를 폐기하면서, 거기 참가했던 나라들을 각개격파,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양자 간 자유무역 협정’을 맺으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TPP참가 12개 국가 중 미국이 전체 GDP의 60%를 차지하니, 자국이 빠지면 TPP도 깨질 것이란 계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달랐다. 일본은 TPP 각료 회담(5.21)에서 “나머지 11개 나라가 TPP를 조기에 발효시키자”는 합의를 이끌어 낸다.

정상회담 차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는 경제계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TPP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11.6)”이라고 말해, 미국 제외 TPP 발효를 금기시한다. 그러나 일본과 베트남은 미국을 제외한 11개 나라가 2019년까지 TPP를 발효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11.11)한다. 이름도 ‘포괄적이고 선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꿨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11월 14일(...) 미국 기업들은 자력으로 아시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일회성의 긴 협상 목록이나 양자 협정은 그 손실(티피피 탈퇴)을 보충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한겨레.11.15)”

미군의 힘으로 경제를 살린다?

12월 18일 트럼프는 새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도전세력, 북과 이란을 불량국가로 지목한 것은 이전 정권과 맥락이 같다. 패권에 대한 집착, 중국에 대한 초초함 등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무얼까?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군사력에 더욱 의존할 것임을 직설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중국을 지목하며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을 확장하며,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지역 질서를 재편하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미군의 힘을 재건할 것이며 우리는 이 게임에서 승리할 것”이라 했다. 중국과의 경제 전쟁에 왜 ‘미군의 힘 재건’이 필요할까? 트럼프 주장은, 미국 경제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게 중국 탓이다. 이런 ‘남 탓 경제관’은 중국이 변해야만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로, 중국의 변화를 강제할 힘, 군사력 증강이 필요하단 결론으로 이어진다.

군사비 순위 2위에서 20위까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미국 군사비는 많다. 그런데도 올해 13.1%를 증액, 7000억달러로 늘렸다. 새로 증가한 액수는 “러시아나 일본의 연간 총 군사비만큼이나 많고, 중국 연간 총 군사비의 대략 1/3에 상당한다.(환구시보.2017.3.17/통일뉴스.2017.3.20)” 어디에 쓸까? 전략핵무기를 강화하고 전투기 100대, 핵항모 2척 등 공군과 해군을 증강한다. 지상군도 늘린다. “현재 66만 명인 지상군(육군·해병대)을 11% 정도 증원해 73만 명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과거 지상군이 늘어났던 이유는 전쟁, 즉 수요가 있기 때문이었다.(중앙일보.2017.3.25) “평택에는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가 있고, 한반도 주변에서는 세계 최대 군사훈련이 수시로 벌어진다. 중국도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한반도 담당 북해함대에 배치했다. 미국과 중국이 붙으면 한반도는 가장 먼저 타오른다. 위험하다. 끝.

<다시 보는 2017>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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