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 (원불교 교무)


2005년 성공회대학원 NGO대학원 시절, 신영복 선생께 ‘교육사회학 특강’을 받기 시작했을 때였다. 수강생 한 분이 "저는 선생님의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엄중한 태도로 무릎을 꿇고 정독했습니다"라고 강의를 신청한 각오를 말했다. 나도 그 마음이었다. 강의실 안의 10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의 마음 또한 모두 그랬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오랜 징역살이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더 큰 나무로 우리에게 오신 선생에 대해 그동안 쌓인 그리움, 눈 앞에서 뵙는다는 설렘, 존경의 마음 그득한 시간이었다.

▲ 그 분의 2주기(1월 15일)을 앞두고 그리움을 쓴다. 신영복 선생의 친필 '思無邪'(사무사). [사진제공-정상덕 교무]

종강하던 날 '수업태도 우수 학생'으로 선정되어 선생의 친필인 '思無邪'(사무사)를 직접 받는 기쁨도 누렸다.

'思無邪'는 『논어』 위정편(爲政編)에 나오는 문구로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시경』 삼백 편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했다.

이 시절 선생의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으로 새겼던 '함께 맞는 비', '대동의 의미', '건축가의 드로잉은 지붕이 아닌 바닥' 등등 많은 뜻글들은 경계마다 몸에서 살아나온다.

우연의 일치처럼 나는 ‘思無邪’ 글씨를 1987년에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군 제대 후 광주교당에서 간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교당에서 정진하시던 원불교 스승 고산(高山) 이운권 종사님께서 내게 글을 내려주신 것이었다. 이후 나는 '思無邪'를 나의 소중한 정신적 지표로 삼아왔다.

선생의 호 '쇠귀'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뜻이 매우 궁금했다. 쇠귀라는 호의 연원은 선생이 서울의 우이동(牛耳洞)에 살면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동네 뒤에 있는 삼각산(북한산) 봉우리 가운데 '소' 귀 같아 보이는 봉우리가 있어 '소귀봉', 우이봉 아래에 있다 하여 우이동(牛耳洞)이 되었다.

소 뿔은 언제나 더 강한 존재를 만나면 꺾이고 만다. 그러나 부드럽게 아래로 드리운 소귀는 남의 말 듣기를 본분으로 삼고 힘보다 지혜에 의존하므로 오래갈 수 있다. 그리고 멀리까지 복속시키는 무위와 합리적으로 포용하여 실천하는 겸손한 군자(君子)의 삶을 지향한다.

2016년 1월 선생은 겨울 날씨 만큼이나 엄혹했던 시절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근원을 찾던 구도자, 별과 자연을 사랑한 자유인, 늘 '함께'를 강조한 더불어 숲의 친구였던 신영복 선생님이 그리운 겨울밤이다.

선생은 당신의 고단했던 삶을 세상에 승화시켰던 지혜로운 철인이었다. 남남갈등, 남북적대, 미국패권이 갈수록 쇠뿔처럼 사납지만 선생께 배웠던 우공이산(愚公移山) 정신으로 평화의 노래를 더 높이 부르겠노라는 마음 속 다짐은 겨울밤처럼 깊어갈 뿐이다.

2017년 12월 26일 정 상 덕 합장

 

 

원불교 교무로서 30여년 가깝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해 왔으며, 원불교백년성업회 사무총장으로 원불교 100주년을 뜻 깊게 치러냈다.

사회 교화 활동에 주력하여 평화, 통일,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늘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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