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발표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위안부 TF, 위원장 오태규) 보고서는 2015년 12월 28일 합의 관련 새로운 사실을 일부 밝히고,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공식 확인하고 있다.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한.일 간에 ‘이면 합의(밀약)’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 측이 정대협 설득 및 제3국에 기림비(소녀상) 설치 반대, ‘성노예’ 표현 사용 중단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가 사실상 용인하는 비공개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기사 참조).

31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또한 여러 차례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답변하지 않았던 중요한 사실들을 공식 확인했다. 이병기-야치 쇼타로 간 고위급 채널을 통해 ‘위안부’ 합의가 최종 타결됐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고위급 협의는 2015년 2월 처음 열렸다. 한국 측 대표는 당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일본 측 대표는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이었다. 이병기 원장은 1차 협의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고위급 협의를 계속 주도했다.

▲ 오태규 위원장은 27일 위안부 TF 보고서 발표 계기에 2015년 한일 합의에 '불가역적' 표현이 들어가게 된 경위를 도표를 통해 설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2015년 4월 11일 제4차 고위급 협의 때 대부분의 쟁점이 타결되어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공식 발표 8개월여 전이다.

‘잠정 합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사죄’의 불가역성이 ‘해결’의 불가역성으로 맥락이 바뀌었다는 데 있다. 2014년 4월 피해자 단체들은 “범죄 사실과 국가적 책임에 대해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한 방식의 공식 인정, 사죄 및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도 국장급 협의에서 ‘사죄’의 불가역성을 요구했으나, 고위급 협의 과정에서 ‘해결’의 불가역성이라는 일본의 입장에 가깝게 탈바꿈한 것이다.    

2015년 12월 23일 8차 고위급 협의에서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최종 합의 내용은 제3국 기림비와 소녀상 부분이 일부 수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잠정 합의 내용과 동일하였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합의의 성격과 관련, 보고서는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 공동 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며, 그 성격은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고 규정했다.

당시 “피해자 쪽의 3대 핵심 요구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사죄, 배상”인 반면, 일본 쪽 요구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 노력,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였다.

보고서는 “3대 핵심 사항은 일본 쪽이 다른 조건을 걸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였”으나 “일본 쪽의 요구를 한국 쪽이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타결되었”으며, “결국 일본 쪽의 구도대로 협상을 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3대 핵심 사항과 한국 쪽의 조치가 교환되는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3대 핵심 사항에서 어느 정도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조차도 그 의미가 퇴색하였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게다가 공개 부분 외에도 한국 쪽에 일방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비공개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도 모두 시민사회의 활동과, 국제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사항들이다. 이 때문에 공개된 부분만으로도 불균형한 합의가 더욱 기울게 되었다.”

보고서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결여”가 2015년 한.일 합의의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돈의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였다.”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박근혜 정부 정책 결정과정과 체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정상회담 개최를 연계함에 따라 역사 갈등과 함께 안보,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고,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미국이 양국 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한다는 전략을 택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미국 안에 ‘역사 피로’ 현상을 불러왔다.” 미국을 통한 대일 압박 전략이 미국의 대한 압박을 불러들이는 역효과를 초래한 셈이다.

보고서는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위안부 협상에서 조연이었으며, 핵심쟁점에 관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다. 또, 고위급 협의를 주도한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유기적 협력도 부족하였다”고 비판했다. 

검토 결과에 기초하여, 위안부 TF는 “전시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좌충우돌이 정책 혼선을 불렀고, △대통령과 협상 책임자, 외교부 사이의 소통이 부족했으며, △고위급 협의는 비밀협상으로 일관하고, 한국 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 지난 7월 31일 위안부 TF 1차 회의. [사진제공-외교부]

위안부 TF는 올해 7월 31일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출범했다. 외교부가 제공한 협상 경위 자료와 청와대와 국정원 자료 검토, 협상 주요 관계자 면담, 20여 차례 회의를 거쳐 합의의 경위를 파악하고 내용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겨레신문> 논설실장 출신인 오태규 위원장을 비롯해 선미라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이상 부위원장), 김은미 이화여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이상 민간 위원), 백지아 외교안보연구소장, 유기준 국제법률국 심의관, 황승현 국립외교원 교수(이상 외교부 위원)이 위원으로 활동했다.  

‘위안부 TF 보고서’는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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