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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文科) 정부<연재> 민경우의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9)
민경우  |  mkw19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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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1  00: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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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랜 기간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사회운동을 접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한국 수학교육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5년 정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업활동가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 첨단 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촛불과 신정부 출현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의 종말과 시작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대도시에 출현한 청년 인텔리들의 꿈과 염원이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해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선생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격식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필자 주

 

                                                  1.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예산에서 과학예산이 삭감된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무엇이든 말로 되는 법은 별로 없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0&aid=0002664433)

문재인 정부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50대, 남성, 문과(文科)이다. 50대와 남성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문과에 집중하기로 하자.

대선 직후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문재인 시대 파워 엘리트”라는 책을 낸 바 있다. 3부에는 파워 엘리트 114명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114명을 학부 시절 문·이과로 구분해 보았다. 114명 중 문과 출신이 106명으로 약 93%이다. 나름 예상은 했지만 많이 놀랐다.

비문과 출신은 다음과 같다. 강기정(전남대 공대), 김용익(서울대 의대), 박정(서울대 농생), 손혜원(서울대 응용미술), 염한웅(서울대 물리), 우원식(연대 토목), 전현희(서울대 치대), 정청래(건국대 산업공학)이다.

이 중 강기정, 우원식, 정청래는 이과로 분류하기 어렵다. 그럼 퍼센트는 더 올라간다.

더 조사해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다. 누가 시간이 되면 해보면 좋을 듯하다.

                                                 2.

문과와 이과를 둘러 싼 파워게임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1회전은 안철수이다. 정계 입문하기 이전 안철수는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김연아, 이국종 급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정계에 입문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할 때 너는 어디서 뭐했냐는 식이다.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 엘리트는 조롱감이 되었다. 국감에 등장한 이해진의 모습도 비슷했다. 2017년의 한국이 한국의 운명을 짊어질 CEO를 그렇게 대우해도 되는지 의심스럽다.

가장 뜨거운 격전장은 산업현장이다. 2007년 스티브 잡스로 상징되는 과학기술 혁명과 범세계적 과학기술 재편 국면이 2011년 한국에 본격 상륙했다. 그런데 2012년의 대한민국 대선은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비서실장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대선은 시종 박정희의 독재와 친일 경력으로 얼룩졌다.

3차 격전장은 대선 이후 조각 과정이다. 상징적인 사건이 박성진 벤처 장관 임명 과정이다. 1차적인 쟁점은 그의 역사관이었다. 반면 창조과학은 부차적인 쟁점이었다. 내가 볼 때 뉴라이트 역사관은 틀렸지만 참고할만한 여지가 있다. 나는 뉴라이트가 편찬한 역사 교과서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반면 창조과학은 그냥 거짓이다. 과학은 장관 임명 과정에서 그냥 참고 사항에 불과한 것이다. 박성진 논란은 한국의 이념 지형이 얼마나 관념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3.

그러나 세상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학교 현장은 거꾸로다. 학교에서 문과는 퇴출 상태이다. 내가 볼 때 문과는 완전히 환골탈태해야 한다. 역사학이라면 DNA 분석이나 해양 고고학, 사회학이라면 빅데이터, 심리학이라면 뇌과학을 결합시켜야 한다. 여전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류인데 저걸 왜 가르치나 싶다.

과학기술과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심지어 봉건적이고 주술적인 신념체계를 가진 듯한 박근혜마저 창조과학을 내걸 정도니 말이다.

결정적인 것은 과학기술인들의 정치관이다. 나는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일단 서양은 다른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쓴 것이 1976년이다. 도킨스는 생물학을 통해 종교에 정면 도전했다. 에드워드 윌슨이 ‘사회생물학’을 쓴 것이 1975년이다. 사회생물학은 인간 본성의 뿌리를 생물학에 두고 있는데 사회경제적 관계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와 결을 달리 한다.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수학 선행을 하면서 읽게 된 이들 저작은 경이로웠다. 특히 이들의 도전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서양에서 과학자들은 그냥 과학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관에 개입하고 정치에 도전한다.

물리학이나 수학 교양서들에는 여지없이 철학적 문제가 등장한다. 내가 역사와 철학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희한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영화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은 산드라 블록이 지상에 땅을 딛고 굳건히 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중력이 무엇인가와 우주에서 중력이 존재하는 지구 위의 인간에 대해 묻는다. 영화는 지루했지만 라스트 신은 압권이었다.

반면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무력하다(여기서부터는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할 시간이 없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 혹시라도 실례가 된다면 내 책임이다).

가장 기억나는 사람은 초파리를 연구하는 김우재 씨이다. 이 사람이 가장 정치적인 듯한데 김우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우재 씨는 문재인 정부를 인문학 정부라고 규정하며 이과의 정치화를 주장하고 있다. 흥미 있는 사람이다.

박형주는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이다. 1986년 김세진 군이 분신사망 했을 때 상여를 맸던 학생이란다. 이제 그는 유수의 석학이 되어 수학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형주가 공격하는 대상 중 하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교육관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관으로 연결된다)의 수학관이다.

양자역학을 한 김상욱은 과학기술도 인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인문학의 위세에 눌려서인지 대담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라면 인문학은 사기라고 주장했을 법하다. 그만큼 한국의 과학기술은 너무 얌전하다.

이종필은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을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그는 중력파를 한마디로 알기 쉽게 소개해달라는 주장에 그런 것 없다고 말한다. 나도 많이 겪었다. 문과 출신들의 맹점은 플라톤이나 칸트처럼 수백 년에서 2천년도 더 된 낡은 고문서를 이잡듯 공부하면서 수학 문제 하나 푸는 것은 하찮게 여긴다.

이들 모두의 전력에는 유수한 경력과 학생운동과 같은 진보적인 배경이 어른거린다.

요약하자면 한국은 진보적인 배경을 가진 최첨단 이과 엘리트들을 권력내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흡수하기는커녕 문재인 정부는 그들과 대척점에 있다.

                                                 4.

향후 정치 지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쟁점은 북핵 문제와 문·이과이다. 나머지는 주변적이거나 왜곡되어 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청년들의 저항이 꺾였다는 점이다. 88만원세대, 김예슬, 청년유니언으로 이어졌던 진보적인 흐름은 체제내로 포섭되었다. 공무원을 둘러 싼 논쟁은 청년 담론의 황폐화를 보여준다.

여성들의 저항은 출산 파업이라는 사회적 형태로 전환되었다.

적폐청산이나 노동문제는 착시현상이다. 적폐청산은 서서히 집권 여당의 꽃놀이패로 변질되고 있다. 노동문제는 정부가 키를 쥐고 있다. 노동문제는 부동산·교육·에너지 문제 등과 같이 386이 20대 초반에 정초했던 사회적 이념의 실험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대한 의미 있는 저항은 자영업자와 기업이다. 불행히도 이들의 저항은 출산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형태를 띠고 있다. 자영업자는 무인화와 가족노동으로, 기업은 투자의 탈한국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

유력한 대상 중 하나는 이과적 기반을 가진 전문 생활인들이다. 이게 안철수-유승민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대체로 일치한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서 호남 중진을 배제하면 과학기술-친기업-성장과 혁신이라는 새로운 정치 공간이 열린다. 한국의 산업화와 함께 폭넓게 형성된 과학기술적 감수성이 정치권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은 보다 정치화되고 급진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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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7-12-12 12:08:46
소식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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