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타인의 눈을 통해서만이 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 (레비나스)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서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도원(桃園)에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혈 사나이가 의형제 결의를 맺는다.

뜻이 맞는 가족이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유비는 ‘출가(出家)’하려 한다.

가정은 안락하지만 세상 속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뜻을 펼치지 못한다.

천하의 인재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 한다.

장비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유비는 안다.

삼형제로서는 천하를 도모할 수 없다고.

우리 사회는 온갖 ‘가족’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가족에 속해 있지 않으면 생존조차 힘들다.

거창한 뜻을 내세우지만 서로 가족으로 묶여 있어 자신의 생각, 뜻은 사라지고 만다.

뜻을 펼치기 위해 어떤 가족에 들어가지만 곧 가족 구성원이 되어 가족을 위해 희생 봉사하게 된다.

요즘 가끔 ‘운동권’에 있을 때 부르던 상록수가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때는 내 가슴이 얼마나 뜨겁게 불타올랐던가!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끝까지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그 당시 함께 활동하던 동지들이 이제 각 단체의 책임자, 핵심을 맡고 있다.

그런데 옛 동지들을 만나보면 단체, 조직들이 이제는 ‘어떤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끝내 하나의 가족이 되어 버렸다는 슬픔.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가!

그렇게 뜨겁던 사랑이 매독으로 끝나다니!

시인은 ‘황혼 그 마비된/한쪽 다리’로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 길을 걸으며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울부짖는다.

왜 우리는 유비처럼 가족 너머를 꿈꾸지 못하는가!

각 단체, 조직들을 보면 철옹성 같다.

그 가족 속에서 조용히 늙어가기 위해 우리가 그렇게도 뜨거운 피를 흘렸던가!

유비가 제갈공명을 받아들였기에 조자룡, 마초 같은 천하의 영웅들이 촉나라로 들어온다.

우리는 삼형제로 만족하는 장비 같다.

자유니 평등이니 해방이니 협동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들을 내걸고는 가족이라는 자그마한 성을 쌓아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

우물 안에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작은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견고한 것들은 대기 속으로 녹아버린다(마르크스).

최승자 시인은 철옹성을 향해 달려갔다.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시 <너에게> 중에서’

하지만 성문은 열리지 않고 성 밖에서 주저 앉아 기다리던 그녀는 큰 병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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