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양 여운형선생 서거 70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이 29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학술심포지엄에는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장을 비롯해 4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몽양 여운형선생 서거 70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은 서거일인 7월 19일을 한참 지난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준비된 300석을 꽉 채우고 보조의자도 모자라 뒷편 곳곳에 선채로 발표를 경청하는 청중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몽양의 행보를 되짚어 얼어붙은 한반도 문제와 남북관계를 풀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기대와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겠고 이날 새벽 북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실험 소식도 심포지엄 장소로 발길을 돌리게 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내외 좌우합작운동과 오늘의 남북관계'라는 이날 학술심포지엄의 주제에 걸맞게 발표자들은 해방정국에서 몽양이 주도한 좌우합작운동은 서거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한 생명력을 갖고 정치연합, 남북협력으로 변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단이 고착되기 전 유일하게 남북을 넘나들며 좌우합작·남북연합을 추진했던 여운형의 정치적 노력과 정신은 자주적 평화통일 시도이자 활동이었다."

몽양 연구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좌우합작운동과 여운형'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몽양 여운형과 좌우합작 운동의 진정한 가치는 이것이 필연적으로 남북연합, 남북협력으로 연결되는 점에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왼쪽부터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병준 교수에 따르면, 몽양은 남북의 정치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북을 방문해 남북합작과 남북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모색한 사람이었다. 1946~1947년 동안 다섯차례 이상 공개적으로 방북했고 평양과 주고받은 편지가 11통 이상 남아 있다.
 
자연인으로 갔지만 북에서는 그를 남의 주요 진보정치인으로 대접했다. 북과 합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합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을 넘나들고 좌우를 막론했으며, 미군정·소련군정과의 협력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정치활동은 적수들에 의해 '기회주의'와 '이상주의'로 공격당했고 급기야  테러분자의 흉탄에 의해 통일정부를 향한 그의 꿈은 스러졌다. 

정 교수는 "너무 늦은 것이었지만 몽양 사후에 진행된 1948년 남북협상은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겪기 전에 우리 민족이 유일하게 경험한 화해와 통일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많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굉장히 비극적이고 비참하며, 모멸적인 역사로 기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해방직후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몽양의 노선은 지금 절대 실현될 수 없는 '가장 이상주의적인 노선'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연합정치와 혼합정체, 그리고 민주주의와 공화평화'라는 주제의 발표문에서 우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가도 아니면서 누구보다 먼저 격렬한 이념 갈등에 앞서면서 결과적으로 분단을 막지 못했다며, 연합, 연대의 전통이 부재한 가운데 좌우합작운동을 벌여나갔던 몽양의 지혜와 경로는 지금도 유효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미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 않고 갈등을 조정하는 연합정치와 타협정치를 통해 국가발전을 이룩해 왔다며, 몽양의 좌우합작 운동을 오늘날 정치연합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평화라는 말은 연합에서 나온 것이다. 내부의 연합과 연대만큼 내부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외부와의 연대의 기반이 된다"며, "정치연합을 하지 않고는 민족, 노동, 분단 문제를 풀수 없다는 것이 수천년 인류의 지혜이다. 내부의 이견세력은 타도하려고 하면서 이념적으로 나뉜 국가세력과는 연합하는 질서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구조를 해체하는 정치연합을 실현해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으로 이어지게 하고 그에 기반해서 남북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축사를 통해 "몇몇 민족지도자들의 회고록에는 해방이 느닷없이 왔다는 대목이 더러 눈에 띄는데, 몽양은 누구보다도 해방을 미리 알고 준비했던 분이다.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어 해방에 대비했고 해방이 되면서 남북 대립의 조짐이 보이니까 최초의 평화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좌우합작운동을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인류는 2차례의 세계대전과 동서냉전을 겪은 비참한 20세기의 제국주의 시대를 마치고 민족국가와 국민국가의 벽을 낮추는 평화주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주변국들과의 평화공동체가 실현되어가는 큰 변화속에 이제 주변 4강이 문제가 아니라 남북이 협력해서 평화통일을 이룰 때가 다가왔다. 그렇게 되면 여운형 선생의 생각, 사상이 100배, 200배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좌우합작은 현재진행형이다. 몽양에 대한 테러와 모략도 현재진행형이다"라는 제목의 개회사로 이날 심포지엄의 취지와 최근 양평군의 불미스러운 처사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가감없이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몽양이 오매불망 바랬던 일은 남의 식민지에서 벗어났으면 이제 우리끼리 분열하지 않고 평화롭게,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의 주역이 되어서 우리나라와 민족이 살아가는 일이었다"며,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우리가 살아갈 길, 남북간 화해와 평화, 교류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하겠다. 그길이 바로 몽양선생이 12번의 테러끝에 돌아가시면서도 목숨을 내놓고 추구하신 길이었다"고 이날 학술심포지엄의 취지를 밝혔다.

또 경기도 양평군이 몽양기념관에서 기념사업회를 쫓아낸 처사로 인해 서거일을 한참 지나서야 추모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게 된데 대해 "몽양의 좌우합작도 현재진행형이고 몽양에 대한 테러와 모략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하는 만큼 끝까지 버텨내면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가 '우사 김규식의 좌우합작 구상', 김기협 프레시안 편집위원이 '민세 안재홍의 좌우합작 구상'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으며, 조민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신용옥 고려대 한국사학과 강사, 이준식 연세대 연구교수,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 소장이 발표자들과 함께 종합토론에 나섰다.

▲ 이날 심포지엄은 준비된 300석을 꽉 채우고 보조의자도 모자라 뒷편 곳곳에 선채로 발표를 경청하는 청중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학술심포지엄에는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장을 비롯해 김규식 손녀 김수옥 여사 등 4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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