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 (원불교 교무)


교무로서의 내가 첫 근무한 곳은 경남 신창원 교당이었다. 청년, 대학생, 학생과 어린이 법회까지 신바람 날리는 교화 시절이었던 1989년, 나의 공식 용금은 5만원이었다. 

그 당시 내가 결혼식에 내는 축의금은 1만원을 넘지 못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넉넉히 전하고 싶은 나의 축하와 조문 태도를 살펴본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2000년 초반에도 나의 축하금은 5만원이 최고였다. 미안한 마음을 지우고 곤궁한 주머니 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채우는 나의 작은 실천법은 깊은 기도였다. 

축의금 봉투를 전하기 전 그 친구를 떠올리며 행복 에너지를 채우고, 결혼생활이 무탈하도록 기도 정성을 가득 담는다. 때로는 며칠 전부터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 물질개벽(물질만능)의 시대를 살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근원적 질문에 몸으로 응답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정신개벽의 작은 한걸음은 시작된다. [사진제공-정상덕 교무]

나는 이 작은 실천법을 스승님의 지혜와 사랑에서 배웠다. 원불교 교무로 첫 발령을 앞두고 나의 스승님은 살림살이를 챙겨주시기 앞서 당신의 방에 나의 사진을 걸어놓고 몇 달을 기도해주셨다. 스승님의 그 소중한 기도를 보면서 정성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체득했고, 이것은  사람을 대하는 나의 최고의 자산이 되었다. 

시장가치가 교육, 환경, 가족, 건강, 정치 등 예전에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모든 영역 속으로 확대되어 돈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물질개벽(물질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근원 질문에 몸으로 응답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정신개벽의 작은 한 걸음은 시작된다.

2017년 11월 29일 정 상 덕 합장

 

 

원불교 교무로서 30여년 가깝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해 왔으며, 원불교백년성업회 사무총장으로 원불교 100주년을 뜻 깊게 치러냈다.

사회 교화 활동에 주력하여 평화, 통일,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늘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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