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브레히트)


 쉽게 씌어진 시(詩)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제논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거북이가 먼저 출발하고 아킬레우스가 뒤에서 출발하면 최고의 용사인 아킬레우스도 절대로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그 유명한 제논의 역설이다.

 분명히 (경험적으로 보면) 틀리는데 제논은 이것이 진리임을 논증했다.   

 서양의 철학, 과학은 오랫동안 이렇게 ‘머리’로 논증하는 역사였다.

 몸은 분명히 아니라고 하는데, 머리는 옳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서양의 철학자, 과학자들은 몸의 판단은 허상이니 ‘이성(理性)’으로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래서 서양은 이성의 힘을 기르기 위해 수학 교육을 철저히 했다.

 수학은 순전히 머리로 판단하는 학문이다.

 지진 때문에 전 국민이 공포에 떨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 공무원들이 수학적인 데이터를 들이대며 ‘원전’의 안전성을 논증했던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려운 논리 이전에 몸이 (경험적으로) ‘원전’의 무서움을 안다.

 ‘지진의 공포’로 전 국민이 벌벌 떨 때 그동안 원전의 안전성을 얘기했던 그 많던 과학자들, 공무원들은 꿈쩍도 안했다.

 아마 그들도 온 몸으로 원전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이성(理性)’으로 쌓은 이 세상이 얼마나 허약한 지를 잘 알기에 현대 철학, 현대 예술은 비이성적(非理性的)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현대 미술을 보면 도무지 머리로는 알 수가 없다.

 그냥 몸으로 느끼면 쉽다.

 예술가들은 이 시대의 엉터리를 온 몸으로 알기에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여전히 ‘이성 중심(理性 中心)의 세계관’을 가르친다.

 지진의 공포에 떨며 이성 중심의 수능 시험을 봤다.   

 이성(理性)은 인생을 논리적으로 보게 한다.

 이 세상이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에 그 법칙만 알면 이 세상을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논증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매뉴얼대로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세상이 과연 법칙대로 움직이는가!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양자 물리학에서도 객관적인 법칙을 부정한다.

 세상은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세상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했다.

 ‘삼가하기를 마치 살얼음 낀 겨울 내를 건너는 듯이 한다 豫兮若冬涉川’

 공자도 군자는 평생을 힘들게 산다고 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쉽게 씌어진 시(詩)’를 부끄러워했다.

 시가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읊조린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물결을 따라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

 설령 어떤 자연의 법칙에 있다 해도 살아 있는 물고기는 그 법칙을 거스른다.

 우리는 인생의 매뉴얼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몸을 믿어야 한다.

 몸은 정신과 육체를 합친 지혜의 샘이다.

 모든 생명체의 지혜, 모든 인류의 지혜가 몸에 다 전해져 온다.

 인류는 머리를 믿었다가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참화를 겪었다. 

 머리를 믿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진, 원전으로 자신은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여차하면 어디로 튈 사람들이다. 
   
 우리는 머리로 쌓은 거대한 바벨탑들 앞에 망연히 서 있다.

 과감히 바벨탑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엄청나게 크고 정교하게 보이는 바벨탑들- 지식 체계, 건축물들, 온갖 물질문명- 은 우리가 속아서 끌려와 쌓은 만리장성, 피라미드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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