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K(Action for One Korea) 운동을 시작하고서 대개 일년에 두 번 정도 한국에 나가 국내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10월 6일부터 11월 6일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여러 통일운동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강연하거나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이번에는 강원도 화천에서 열렸던 DMZ 평화 국제컨퍼런스와 예술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지역주민의 인식변화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운동, 그리고 예술가들과 결합한 문화운동이라는 면에서 평소에 내가 추구하던 통일운동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천 주민과 함께한 DMZ국제컨퍼런스와 평화문화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라는 작은 마을. 폐교된 초등학교를 교육수련원 (해산농촌체험연수원)으로 만든 곳에서 10월 28~29일 양일간 열린 DMZ 평화 국제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행사는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가 주최하고, 동협회와 (사)한강생명포럼, 민통선예술제조직위원회가 주관, 강원도 후원으로 열렸고 3일차는 철원까지 DMZ(비무장지대) 투어로 이어졌는데, 3일차는 동행치 못했다.

컨퍼런스에서는 연변대학교 김태국 교수가 동만주지역 독립운동과 재중동포사에 대해, 그리고 내가 ‘미국에서 보는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 그리고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의 이대수 운영위원장이 ‘화천에서 아시아 평화의 미래를 꿈꾸다’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평화예술제는 9개국 65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는데 주제가 일품이었다. “반전(反戰) 그리고 반전(反轉).” 반동강 난 나라의 깊숙한 오지에서 여러 나라의 예술가, 활동가들이 모여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반전의 아우성이라니!

▲ 2017 DMZ 평화예술제 국제컨퍼런스에서 연사들이 연단에 앉은 가운데, 메인 행사 배너의 그림을 그린 예술가가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정연진]
▲ 2017 DMZ 평화예술제 국제컨퍼런스에서 미국에서의 평화운동과 AOK 활동을 소개하는 필자. [자료사진 - 정연진]
▲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컨퍼런스 참석자들. [사진제공 - 박기윤]

컨퍼런스는 마을 축제로 이어졌다. 마을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로 시작해 아리랑과 아이들의 북소리가 절묘하게 어울어진 타악 공연, 불춤을 비롯한 행위예술가들의 공연, 음식 만드는 아주머니들의 분주한 몸짓, 고기 굽는 소리와 연기 속에 군인들과 주민들의 화기애애한 어울림. 밤에는 예술가들, 행사 관계자들이 모닥불 위로 축하주를 나누는 대화 한 마당... 동촌리 마을의 축제이자 평화공동체의 축제였다.

▲ 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주민들, 외국인 예술가들, 군인들이 한데 어울렸다. [사진 - 정연진]

화천은 어떤 곳인가. 철원의 동쪽에 위치한 화천은 DMZ와 맞닿아 있는 최전방 부대가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남북이 서로 이 땅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일제징용피해자와 한국전쟁희생자를 함께 추모할 수 있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절절히 서린 곳이다.

이곳에 아시아평화시민네크워크가 2013년부터 화천댐 건설에 동원된 강제징용 희생자와 수 만이 넘는 전사자를 낸 대붕호(파로호) 전투 전사자를 추모하는 행사인 ‘화천댐과 한국전쟁 희생자추모 DMZ 평화기행’을 실시해왔다. 이 평화기행에 해마다 동참한다고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지난 5월 이 평화기행에 동행할 수 있었고, 이번이 나에게는 두 번째 화천 방문이었다.

▲ 하늘에서 보면 커다란 봉황이 나는 모습 같다고 해서 대붕호라고 이름붙여진 화천호수, 중공군을 상대로 연합군이 대승을 거둔 후 파로호로 불리게 되었다. [사진 - 정연진]

화천호수는 일제말기 식민지배와 중국침략을 위한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일제가 강행한 화천댐 건설로 생긴 저수지이다. 화천댐과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일제는 조선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강제동원했고 징용된 노무자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도망가다 붙잡혀와서 죽도록 매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고사 당하는 노무자들의 머리를 잘라 상자에 담아 집으로 보냈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린다. 공사 중 사고로 죽은 자들은 너무도 많았다. 현재 화천발전소 전시판에는 약 1천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공사 자체가 대참사였다.

화천은 38선 이북이어서 해방직후에는 북녘땅이었다가 6.25전쟁 직후 남녘땅이 된 곳이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1951년 5월 일주일간 전개된 화천전투는 국군과 UN군의 대승으로 기록될만큼 중국군 전사자들이 많았다.

1만명의 포로 이외에도 전사자 수 기록은 제각각이다. 중국측은 8천명, 미군은 1만 7천명, 한국군은 2만 5천 또는 3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에게 참전이후 최대의 패배였고 국군과 UN군에게는 최대의 승전지였던 셈이다.

하늘에서 보면 봉황이 나는 것 같아 대붕호로 이름붙여진 이 호수는 화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이승만이 깨드릴 파波, 사로잡을 로虜 (또는 포로로) 휘호를 내려 파로호로 개명하게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고 죽어간 아픈 전장의 현장.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는 일은 어쩌면 화천호수가 파로호가 아닌 대붕호로 원래의 이름을 회복될 때,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해마다 외지활동가들이 벌인 위령제, 지역주민이 참여하다

중국군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전장에서 사라진 이 호수, 대붕호에서 이름없는 넋을 위로하기 위해 외지 활동가들이 찾아와 위령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끔찍한 전투의 현장을 상생과 화해의 길로 바꾸어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가자는 움직임이었다.

▲ 지난 5월 28일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가 주관한 화천 평화기행. 파로호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낸 후 참가자들과 주민들이 함께했다. [자료사진 - 정연진]
▲ 지난 5월말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의 화천 평화기행의 일환으로 진행된 화천댐 강제징용피해자와 한국전쟁 전몰자를 위한 제사. 마을 유지 임락경 목사가 제문을 읽고 있다. [사진 - 정연진]

처음엔 외지에서 평화활동가들이 마을에 와서 지내는 한국전쟁 희생자 위령제를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파로호를 국군이 적군 중공군을 쳐부순 ‘승전지’로만 기억하고 있는 반공논리에 젖어있던 주민들에게는 “중공군이 대규모 전사한 통쾌한 승리에 무슨 위령제인가” 마땅찮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을 터이다.

지난 5월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가 위령제를 마친 후 화천 주민들과 가진 대화에 나도 동석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위령제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지역 주민대표들 의견은 ‘위령제에 대해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직 조심스럽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평화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평화와 주민들의 인식하는 평화의 개념이 다르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한과 증오를 걷어내고 희생자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어찌 중공군만 전사했을까. 중공군에 포함된 조선족들도 있었을 것이고 세계 각지에서 온 UN군, 그리고 국군도 많았을 것이다. 화천전투 당시 호수는 전사자들의 익사체로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주민들은 10년동안 이 호수에서 잡힌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아니었다면 그 젊은 목숨들이 그렇게 참혹하게 수장될 필요도 없지 않았겠는가.

▲ 10월 29일 화천호수가에서 황해도 만신이라 불리는 이해경 여사와 제자들이 진행한 위령제. 그동안 작은 규모의 제사로 열리던 의식이 본격적인 위령제로 거듭났다. [사진 - 정연진]

이번 문화제에서 전쟁에 희생당한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10월 29일 화천호수에서 황해도 만신 이해경 여사의 팀에 의해 아주 훌륭한 공연 수준으로 펼쳐졌다.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이 본격적인 위령제를 통해 주민들의 마음이 좀 더 열리고 생각도 조금씩 변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천의 귀농시인이 2013년에 쓴 시의 일부이다.

전쟁이 아닌 때에 서로 만났다면
서로 어울려 우정과 사랑과 기쁨을 나누었을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죽이고 죽어간
가장 쓰라리고 아픈 역사의 현장, 화천에서
평화를 염원하며 우리는 모였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타오르는 산불도
그 시작은 작은 불씨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거대한 불기둥, 전쟁의 불씨는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 공포와 두려움.
평화는 그래서 평화롭고자하는 의지와 결단과 용기입니다.
- 귀농시인 백승우 화천평화선언의 일부

▲ ‘반전(反戰) 그리고 반전(反轉)’이라는 주제로 9개국 65인의 예술작품을 가지고 참여한 평화문화제. [자료사진 - 정연진]

 

‘열정은 사회와 마찰을 빚을 때 새로 태어난다’ - DMZ를 Dream Making Zone으로!

이번 평화예술제를 통해 DMZ가 생명과 평화의 땅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다채로운 시각예술을 볼 수 있었다. 지난 9월 방문했던 베를린에서는 동서 베를린을 30여년 간 나누어 놓았던 베를린 장벽의 두께가 생각보다 너무 얇아서 깜짝 놀랐었다. 두께가 한 뼘도 안 되는 벽이 동서 베를린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과 소통을 막고 있었다니!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한반도 남북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얄팍한 장벽이 아닌, 남과 북 각기 2km 도합 폭이 4km에 달하는 드넓은 지역이다. 분단 70년 동안 수풀이 자라고 철새가 찾아오고 희귀 동물의 안식처가 되는 생명의 땅으로 거듭났지만,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라는 원뜻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온갖 무기와 지뢰가 넘쳐나는 모순의 땅.

첨예하게 무장된 지대가 ‘비무장지대’로 불리는 우리 시대의 이 어마어마한 모순을 풀기 위해서, 예술가들의 힘이 필요하다. 70년 세월을 가고 막고 있는 저 철조망, 저 사나운 철조망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화천 평화예술제에서는 세계 9개국 65명의 작가가 참여해 ‘반전(反戰) 그리고 반전(反轉)’을 주제로 다양한 시각예술과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되었다. [사진 - 정연진]
▲ 화가들과 주민들이 예술제의 현수막에 다양한 평화그림을 채워넣고 있다. [사진제공 - 박기윤]

이번 평화예술제 전시를 기획한 박주만 조각가는 소개말에서 “열정은 사회와 마찰을 빚을 때 새로 태어난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 시대정신을 가진 예술가라면, 남과 북을 가로 막고 있는 저 철조망을 결코 당연시 여겨서는 안 될 것이고, 분단사회의 통념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가 위협받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획자는 “생명평화의 땅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예술을 통해 DMZ는 Dream Making Zone이 될 수 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했다. 꿈이 실현되는 곳이 된다면, 분단이 종말을 고하는 극적인 기적까지도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Dramatic Miracle Zone이 되는 DMZ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싶다.

아울러 이러한 전시는 결코 행사를 위한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예술제 참여자,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여 분단의 장벽도 녹일 수 있는 줄기찬 열정으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결합해 나가야한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제의 제목처럼 정말 커다란 역사의 반전, 획기적인 전환의 시대를 꿈꾸어 봄직하다.

새로운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갈 DMZ 주민협의회가 결성되다

▲ 10월 29일 평화예술제 집행위원장인 이헌수 한강생명포럼 대표가 DMZ 주민협의회 발족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 정연진]

이번 행사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예술가들이 함께 새로운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취지로 DMZ 주민협의회가 결성된 것이다. 작년부터 강원도 DMZ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협의체를 만들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DMZ 평화문화제 백승우 행사총괄팀장 (화천군 용호리 이장)에 의하면 이번 주민협의회에는 화천, 인제, 철원 3개군이 참여했지만, 향후 고성과 양구, 경기지역과도 연대해 ‘DMZ 평화벨트’를 만들 구상이라고 한다.

화천에 14년전 귀농해 귀농현장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박기윤 교장은 “그간 접경지역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 관주도로 이뤄져 왔고 지역주민들은 통제대상에 그쳤는데, 남북 간 교류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이때, 민간 차원에서 접경지역에 관한 논의를 한다는 것은 단단한 벽에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전쟁이 남긴 깊은 상흔으로 인해 반공의식이 첨예하던 지역, 남북 서로를 적대시하는 안보교육, 안보관광의 장으로 활용되던 접경지역에서 극단의 대립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야한다는 진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 풀뿌리시민의 참여에 의해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드는 희망찬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유라시아대륙횡단 마라톤이라는 대장정을 오로지 평화통일을 위해 달리고 있는 강명구씨는 지난 11월 19일을 기해 16,000km 여정에서 3,000km를 돌파하고 지금은 터키에 안전하게 당도해있다. 지금은 ‘평화통일’ 구호를 가지고 뛰고 있지만,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침 한국의 AOK 회원들은 여러 유형의 콘텐츠 예술가들을 강명구 마라톤에 결합하여 ‘평화 한류’를 창출하는 문화운동을 전개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있다. 컨퍼런스 강연 후 호주에서 온 예술가와 국내 예술가가 평화운동을 함께해보고 싶다고 말을 건네왔다. 화천에서 만난 예술가들이 앞으로 평화 문화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희망이 이번 화천 여행의 또 다른 소득인 셈이다.

이번에 결성된 DMZ 주민협의회에 나 또한 시민단체 활동가 일원으로서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기쁘다. 70여년 간 증오와 원한으로 가득한 지역이 해원과 상생의 빛으로 새로 태어나는 Miracle Zone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화천과 강원도 주민들을 응원하며 새로운 평화의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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