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3국 관계와 관련된 두 개의 쟁점이 부상했다. 그런데 이 두 쟁점에 대한 논란은 트럼프의 예측불가 언동을 나름 잘 관리했다는 평가에 묻혀서,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는 핵심을 벗어난 논란으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인 한미일 3국 군사 관계의 실상(reality)을 은폐하고 있다.

하나는, ‘한미일 군사동맹’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서 언론을 탔다.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군사동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11월3일 싱가포르의 뉴스채널 CNA와 인터뷰에서 “한미일 공조가 3국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미국이 11월10일부터 실시하자고 제안한 한미일 3국 합동 군사훈련을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둘러싼 논란이다. 한미 정상회담 언론공동 발표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핵심축임을 강조했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이 ‘인도·퍼시픽 라인’이라고 해서 일본·호주·인도·미국을 연결하는 외교적 라인을 구축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에 편입될 필요가 없다(김현철 경제보좌관)”, “공동 발표문에 들어가 있지만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청와대 핵심관계자, 중앙일보 11월9일)”고 했다가, 곧이어 청와대가 ‘별도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해명한 문제다.

한미일 ‘군사 동맹’ 문제, 레토릭과 실상의 불일치

우선,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다. 한국의 언론, 외교안보 엘리트, 정치인들 중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나 한미일 공동 군사훈련 거부를 톱기사로 다루며 ‘중국 눈치 보기’라느니, ‘아마추어 외교’이고 ‘전략적이지 못하다’는 논조로 비판하는 조중동의 속내도 추측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2013, 14년 일본의 아베 내각이 자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강행할 때,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헌장에 나와 있는 보통국가의 권리”이며 “일본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도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일본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과정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가 한반도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당시 정부가 모호한 대응을 해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사고와 행태가 ‘적폐의 표상’이 되어버린 김관진, 김장수 혹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엘리트들에게 국한된 것일까? 사실, 공·사석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에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도움이 된다’,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이 왜 문제인가’, ‘미국과 동맹 관계인 한국, 일본의 군사협력 강화는 당연하다’는 식의 의견을 개진하는 외교안보 관료나 전문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서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박근혜 정부가 변형시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2014년 12월)으로, 그리고 장애물로 여겨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땡처리’하면서까지 포괄적인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즉, GSOMIA)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며 한미일 군사동맹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한 문재인 정부는 다른가?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을 매개로 한 한미일, 혹은 한일 양국 간의 군사협력은 오히려 확대, 심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3국 공동 군사훈련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꽤 오래전부터 한미일은 미국을 매개로 공동 군사작전을 위한 훈련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림팩 등의 다국적 공동훈련에서 한미일 3국의 군사훈련을 별도로 실시하고 있는 것도 수차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게다가, (특히 올해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지만) 한반도 긴장국면에서 미국의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진 전개될 때 이미 한미일 3국의 해, 공군이 ‘공동 군사행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송영무 국방장관은 GSOMIA를 1년 더 연장하겠다고 했다. 사드와 GSOMIA는 하나의 세트로, 한국이 ‘내용상’- 공식적으로는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 방어망에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바꾸면, GSOMIA와 사드를 통해 ‘사실상’ 한미일 미사일방어망은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에 벌써 2차례나 한미 양국 정상의 공식 합의문에 ‘한미일 3국 안보·군사 협력’을 명시한 전례를 남겼다. 지난 7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 “양 정상은 (한미일)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며”, “범세계적 도전에 대응하는데” 있어서도 “한‧미‧일 3국 관계를 활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를 담았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공동언론 발표문에 “일본과의 3국 간 안보 협력을 진전시켜 나간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3국 간 미사일경보훈련 및 대잠수함전 훈련을 계속하고 정보공유를 확대하며 공동 대응 능력을 증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를 명기했다. 특히, 미사일 경보 훈련과 정보공유 확대를 적시하는 ‘꼼꼼함’까지 발휘했다.

정리하면, ‘한미일, 한일 군사동맹’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청와대의 코멘트를 둘러싼 논란은 한미일, 한일 관계의 실상을 은폐한다. ANZUS(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3국 군사동맹)의 태평양안보조약과 같은 조약이나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동맹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는 한미일 3국 군사 관계의 실상 말이다.

쓸데없는 논란,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

다음은,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 정확한 번역은 ‘인도양-태평양 전략’일 것이다)’ 구상에 대한 동의, 참가 여부 논란이다. 물론, 정부의 해명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특히, 청와대가 논란에 대응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대미 관계에 임하면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와 국내 보수층의 여론에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 아베 내각의 구상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국내 일부 언론은 이러한 사실관계마저도 부정하면서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도 학자까지 들먹인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사용하는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은, 작년(2016년) 8월 케냐 연설에서 아베가 공식화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戰略)’에서의 그 ‘인도-태평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강조하고, 그러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일본,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역할을 통해 인도양과 태평양, 즉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서안에 이르는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외교안보 아이디어다. 분명한 것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영향권을 확장하고 해양력 강화, 해양진출 확대를 꾀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에 대칭하는 구상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인도와의 교류, 협력에 힘을 쏟아왔고,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하면서 전략이 본격적으로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베 내각의 자평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과 식자들의 시각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립 서비스’를 했지만 실제로 관심을 집중한 것은 막대한 고가 무기 판매와 무역적자 해소가 아니었는가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 지대 구축과 관련해, 막상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서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아베가 정상회담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친 ‘인도-태평양’의 실체를 의문시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미일 사이에 개념 공유도 되지 않은 ‘표현’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다. 별도로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정부의 해명도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설령 미일 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개념이 정립되더라도 접근은 여전히 신중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수용해 버릴 수 없는 문제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제국주의 시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명제를 제시한 알프레드 머핸이나 냉전기 대소봉쇄 정책을 입안한 조지 케넌 류의 ‘대륙세력 vs 해양세력’의 경합, 대립을 전제로 삼는 지정학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당장 중국 포위, 견제 전략이 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한미일 군사적 연계 강화, ‘동맹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승인하는 셈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 남북의 평화 공존과 통일, 동아시아 평화 질서 구축과 같은 우리의 전략적 목표, 가치 지향과 양립할 수 없다.

동맹 집착에서 탈피, 실상에 대한 직시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벌어진 이상의 논란들은, 대북 정책을 ‘트럼프 달래기’와 군사적 억지로 환원시켜버리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대북 정책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한미일 ‘동맹화’는 공론장에서 오고가는 레토릭과 달리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한미 동맹에 대한 집착에서 탈피해 동맹을 상대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미일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는 구도에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의 형태로 연루되어 가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이, 시민들이 역사, 전략, 가치지향과 같은 준거에 기초해 한미일 관계의 실상을 직시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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