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우 (독도찾기 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왔다. 순국 현장인 서대문 형무소도 들리고 국립묘지도 방문한다고 한다.

고이즈미가 누구인가. 역대 일본의 많은 정치가 중 가장 철저한 군국주의자로 인정받았던 인물, 일본의 침략전쟁에 해군장교로 참가했다가 패전의 울분을 못견뎌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군국주의자 나까소네 전 총리와 이시하라 신따로 동경도지사와 직전 총리이던 모리 등 일본의 모든 군국주의 세력이 합동하여 일본의 군국적 부활을 인도할 기수로 추대한 인물이다.

그는 총리가 되자 전임 인물들과는 달리 국제여론의 반대를 무시해 버리고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시도하고 침략군의 위패를 모신 야스꾸니 신사에 공식적으로 참배하고 일본 사회를 군국주의 기조로 분명하게 만들어 군국주의자를 넘어 모든 일본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정부는 지난 봄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언론지면을 수놓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본이 역사왜곡을 시정하지 않으면 기존의 한일동반자 관계를 다시 생각하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또 결코 지난날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고 일본이 역사적 반성을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말도 했다. 김대중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에 대해 한마디도 반성의 말을 한적이 없고 계속 군국주의화 작업만 추진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 9월 26일 새벽 25톤 밖에 안되는 조그만 한국 고깃배 동진호가 500톤급 쇠배인 일본 어업 지도선에 들이받쳐 침몰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다른 한국 어부들의 말을 들으면 일본 어업지도선이 쫓아와 무려 3번이나 들이받아 배를 가라앉혀 버렸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가까이에 다른 한국 고깃배들이 있어 바다에서 그들을 건져 올리기는 했지만 어민들은 삶의 원천인 배를 격침당해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슨 대책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테러를 넘어서는 범죄이다. 이런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는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어떤 항의를 하고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동진호가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에 들어간 것이라는 일본측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데 급급하고 말았다.

남쿠릴열도는 원래 러시아 땅이었고 지금도 러시아 영토이다. 한국은 남쿠릴에서 꽁치를 잡고 대신 러시아에 세금을 내왔다. 그런데 올 여름 느닷없이 일본이 나서 자기들의 허가를 얻으라고 했다. 한국정부는 국제적 관례에도 어긋나고 현실과도 맞지 않는 요구를 당연히 거절했는데 일본 정부는 러시아에 큰 돈을 주고 러시아를 꼬드겨 러시아와 일본만 남쿠릴에서 꽁치를 잡는다는 협정을 맺고 말았다. 한국정부는 러시아에도 들고 차이고 일본정부로 부터는 표현할 말이 없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고이즈미는 한국을 찾아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독립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그가 와서 브란트처럼 무릎을 꿇고 사형장에서 순국하신 애국지사들께 사과 할리도 없고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릴리도 없다. 오히려 군국일본의 새로운 출발을 우리 독립운동 기념장소에서 시위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더 중요하게 챙길 것이다.

일본인을 구하다가 일본에서 죽은 이현수씨 가족도 만난다고 한다.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은 한국 청년의 행동을 앞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본받도록 널리 알려주고 일본수상이 일본인을 위해 죽은 희생자는 끝까지 챙긴다는 이미지도 만들자고 들것이다. 그의 죽음의 본지야 어떻든 고이즈미가 그릴 그림은 이런 것이다. 아마도 한국 언론은 그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할 것이니 높은 분의 방문을 그냥 감지덕지 그려내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아마도 고이즈미를 초청해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한 발언을 한데 대해 사과할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또 고이즈미의 한국 방문을 통해서 교과서 문제니 과거사 문제니 어업문제니 독도문제니 하는 여러 사안들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침 세계가 미국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폭격으로 눈이 쏠려 있으니 기회는 괜찮았던 셈이다. 그런데 또 꽁치문제가 생겼으니 참 맹랑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한국과 일본 사이는 어느 정치가 한 사람이 결단한다고 갑자기 우방이 될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걸려있다. 한일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대 한국의 역사적 과제는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빚어 놓은 식민적 구조와 이념, 인맥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사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다. 김대중대통령은 남북간의 평화공존 분위기 조성을 정치의 중심화두로 삼고 있다. 그런데 남북 분단은 바로 일본의 식민지배 유산일뿐더러 이 지구상에서 가장 극렬한 통일 반대세력이 바로 일본이라는 점은 세계가 다 아는 상식이다. 또 경제나 문화면에서 그리고 일본의 군사적 압박에서 한국이 제대로 서지 않는한 남북의 통일은 물론이고 한국 국가 그 자체의 존재유지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지금 김대중대통령의 통일정책을 가장 반대하는 세력의 배후가 무엇인지 이제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고이즈미의 한국 방문은 한국인을 모욕하는 정치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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