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인도네시아, 10일 베트남 방문에 이어 13일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뜻하는 영어 약칭이다. 동남아시아 대륙 5개국(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와 해양 5개국(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이 참여한 국가연합체다. 

오랜 기간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근대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외세의 침탈에 시달렸다. 인도양과 서태평양을 잇는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가 역내에 있어 지금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이권 쟁탈이 치열한 지역이다. 동남아 10개국이 아세안이라는 하나의 틀로 뭉쳐 무역과 안보 문제에 대처하는 배경이다. 

아세안 의장국은 순번제다. 그해 의장국이 아세안 정상회의 주최국 역할을 한다. 아세안 10개국이 먼저 무역과 안보 등 문제에 대해 입장을 조율한 뒤 ‘대화상대국’과 개별 또는 집단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은 필리핀이고, 대화상대국은 한국을 비롯한 10개국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 올해 아세안 정상회의의 초점이 4가지라고 소개했다. 

첫째, 남중국해 문제다. 아세안 내 필리핀과 베트남,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대화상대국 중에서는 중국이 당사자이고, 미국(일본)은 중국 견제 차원에서 개입하고 있다.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2017.7)과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아태 재균형’ 정책이 맞물리면서 남중국해 문제가 아세안 정상회의 최우선 관심사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소강 상태다. 필리핀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등장하고, 미국에서도 ‘아태 재균형’에 관심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 한 원인이다. 

<SCMP>에 따르면, 주최국인 필리핀 카예타노 외교장관은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입장이) 엇갈리기 때문에, 두테르테 대통령은 사람들이 (일방적) 주장과 점유와 건설을 멈추고 온도를 낮춰 대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과 아세안은 남중국해 행동규칙(COC)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아세안은 15년 전에 행동규칙 관련 기본합의를 했으나, 주요 쟁점을 둘러싸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둘째, ‘인도-태평양’과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개념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아태(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주창했다면, 트럼프 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 직전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세웠다. 

이 구상은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이 중국을 견제하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이디어를 따른 것처럼 보인다. <SCMP>는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마닐라에서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아베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난다고 보도했다. 

<SCMP>는 그러나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유산 지우기’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혹평도 이어진다. 일본 방문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의구심을 키웠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가 지역에 주는 메시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인도태평양 무역 블록’을 언급함으로써 전략이 아닌 무역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셋째, ‘로힝야 사태’다. 유엔은 미얀마 군부가 무슬림 소수집단 로힝야에 대해 ‘인종청소’를 단행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로힝야 난민이 50만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군부의 행위에 침묵하는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으나, 아세안은 회원국인 미얀마를 감싸고 있다. 유엔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반대하고 인도적 지원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째, 무역 문제다. EAS 참가국 중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16개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무역 블록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2015년 10월 미국이 주도하여 타결됐으나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으로 힘이 빠진 TPP와 대비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마닐라에서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인도)에 참석한다. 아세안+3는 중국의 요구가, EAS는 미국과 일본의 요구가 반영된 협의체로 평가된다. 

필리핀에 앞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신남방정책’을 주창했다. 이 정책은 ‘신북방정책’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를 떠받치는 두 축이다. ‘신북방정책’이 주로 러시아를 비롯한 대륙과의 협력을 겨냥하고 있다면,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인도 등 해양세력과의 협력을 겨냥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이미 틀이 짜여서 변화의 여지가 없는 동북아를 넘어서서, 한국의 가상 세력권을 구축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6~7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지난 9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나서는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으며, 11일 쩐 다이 꽝 베트남 주석과는 “2020년 교역 목표 1,0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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