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대 (군사전문가)


테러로 인한 국방정책 교란

지난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의 테러는 미국의 군사정책마저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 건국 이래 가장 큰 충격인 이 테러사건으로 인해 당초 미 군사력에 대한 관리와 운영의 전반에서 예견되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10월 1일 발표된 미국의 신국방전략인 `4주기 국방검토`는 전반적인 미군 개편의 방향과 재배치 문제를 다음 기회로 미루는 대신, `본토방어`의 중요성이 유달리 강조되었다. 이를 위한 각종 정보전력과 비정규전·대테러전·국지전의 위협이 강조되는 선에서 절충되었다. `변화`를 잠정 유보하고 군사력을 현상유지하는 가운데 본토방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에서 서둘러 국방검토를 마무리했다. 전쟁 중에 군 수뇌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새로운 국방전략을 발표하는 것은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팬타곤의 판단이 작용한 듯 하다. 이와 함께 다음 세대 미국의 힘은 대규모 해외배치 미군전력이 아니라 항공우주세력에 의한 힘의 투사, 즉 MD의 추진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고유 입장은 예상대로 반영되었다.

이같은 현상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배치 역시 현상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 부시정부의 출범을 전후하여 미군의 대대적 구조개편에 대한 예측은 상당히 근거있게 제시되었다. 2000. 1.16. 미 코언 국방장관이 보고한 `2001 국방보고서`에는 그간 약방의 감초같이 따라다니던 `극동에서 10만명 미군주둔` 항목이 빠져있었다. 올해 2. 15 국내에 공개된 RAND 연구소의 `정권교체 2001`에 따르면 "아시아 안정을 지원하고 동남아시아에서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시아 주둔 미군 군사력을 한반도 일본 아래 쪽으로 이동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 연구소가 5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주한미군 주력인 미2사단의 효율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고, 2사단이 동남아 전체 위기에 대응하는 신속대응군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이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워싱턴 쿼털지] 2000년 가을호에서 커트 캠벨 동아시아 차관보가 아시아 미군을 동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 전체로 분산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조로 파악된다. 미국이 군사혁신(RMA)을 통해 미군 규모를 감축하고 여기서 재원을 확보하여 신군사력인 항공우주세력 건설로 나아간다는 구상, 새로운 패권정책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신국방정책은 새로운 재편없이 신군사력 건설을 추가한다는 것, 즉 기존 예상보다 군비확산의 폭이 크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 대문에 MD예산 83억 달러를 포함한 대규모 증액 국방예산, 다시 3천억달러 수준의 국방예산 제출이 예상되고 있다. 냉전수준의 군사경제로의 회귀다.  

대다수의 예측이 미군 재배치를 예상하는 가운데 기존의 미 군사전략인 2개의 주요한 전쟁(2 MTW)과 국지전쟁(SSC)를 상정한 전략개념이 수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예측대로 이번에 발표된 신국방전략은 1개의 주요전쟁(1 MTW)와 국지전쟁(SSC)를 상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 테러전쟁을 추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클린턴 정부가 1995년에 발표한 국방검토(BUR)와 1997년의 국방검토(QDR)에서도 2개 주요전쟁의 동시발생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잠정 결론 하에 사실상 두 개의 전쟁 동시승리전략인 `윈-윈전략`이 이미 폐기단계에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클린턴 정부 출범시 3천6백억달러에 달하던 국방예산이 지난해 2천8백억 달러까지 계속 감축되어 온 것도 미국이 `윈-윈 전략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 미국내 보수강경 세력으로부터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계속되는 미 국방예산의 감축으로 `윈-윈전략`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비판의 흐름에 힘입어 `윈-윈 전략`의 복원이 아니라 이를 한세대 초월하는 패권적 의지가 구현된 신국방정책의 목표를 정립함으로써 다시금 군비확산의 길로 가려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

이번 테러전쟁 이후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은 근본적으로 혁신된다.

첫째, 정보력의 강화다. CIA를 비롯한 미국의 국가 정보조직은 1년에 총2백억달러의 예산을 쓴다. 그러나 이 정보공동체가 이번에 테러를 예방하는데는 단 1달러의 정보가치도 생산해내지 못했다. 즉 신위협(테러)에 대한 대응은 첨단 정보전력, 예컨대 인공위성, 첨단 정찰기 등으로 수집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정보에 의존한 사전 차단전략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탈냉전이후 미국은 인간정보 예산을 줄이고 첨단정보전력 증강에 예산을 증액해 왔다. 그간 CIA가 국외, FBI가 국내를 담당하는 역할분담이 종종 혼선을 초래했다. 이것이 완전히 혁신된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 정부 8년간 정보기관 주요 요직에 포진한 `비둘기파`를 부시 정부의 정서에 맞는 `매파`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것이다. 또한 대 아랍 인간정보 확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및 친아랍권과 정보공조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수정 MD가 구상된다. 그간 우주와 고공에서의 미사일 요격이라는 개념은 근거리 근접방공에 무용하다는 것이 이번 테러로 입증되었다. 근접 방공을 위한 표적식별, 표적분석, 위협제거를 위한 방공체계를 가일층 강화하는 수정된 개념의 MD가 구상됨으로써 기존 MD에 대한 비판여론을 제압하고 MD추진을 강행한다. 그러나 근접방어, 항공감시 체계 구축은 새로운 기술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수반한다. 여기에서 미국이 하나의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셋째, 미 본토에서 핵 테러, 세균 테러와 같이 장거리 미사일을 운반수단으로 하지 않는 신종 테러 출현을 경계할 것이며,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에는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할 것이다. 이러한 위협을 관리하고 차단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국제기구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국제기구를 미국 주도로 관리하여 세계를 `줄 세우고` `새판을 짜는` 의도를 드러낼 것이다. 국제테러 기구는 세계를 친테러-반테러로 양분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과거 반미세력이던 인도, 파기스탄이 대테러전쟁에서는 친미세력으로 전환되고, 과거 친미성향의 탈레반은 테러로 인해 반미세력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문명간 충돌`의 가능성을 고조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 대한 입장 차이로 `문명내 충돌` 가능성을 높인다. 아랍 국가들이 테러에 대한 입장 차이로 분열되고, 미국은 이를 이용해 아랍권을 통치하려 할 것이다. 북부동맹을 용병화하여 탈레반을 칠 경우 우호관계였던 아프간과 파기스탄은 긴장관계로 변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팔레스타인 민중 간에도 이 문제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파기스탄의 반정부 시위도 격화된다. 이란·이라크와 사우디·쿠웨이트간의 이견도 심화된다. `문명`을 이유로 한 `문명 내 충돌` 가능성이 현저하게 고조된다. 대테러전쟁을 주도하는 국제 테러기구는 이러한 문명 내 충돌의 주도자 역할을 부각시키게 된다.   

넷째, `본토방위`라는 개념이 아직도 명료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앞으로 격렬한 안보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신국방정책에서 내세운 본토방위라는 개념은 그간 미국 내에서도 개념화가 완결되지 않은 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과거 클린턴 정부의 백악관은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활동과 각종 방어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국내 준비로 이를 정의하였다. 반면에 윌리엄 코헨과 국방부 부장관은 각종 시민적 권리를 위한 군사적 지원활동으로 정의했다. 가장 일반적인 합의는 국가 미사일 방어, 대테러, 대량살상무기 방어, 사이버 공격 방어가 포함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기밀수, 마약유통, 불법이민과 같은 치안적 문제는 배제하여 치안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용이 얼마가 소요되는지, 기존 군사전략과 어떤 연계성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 지침이 없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1일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상원 증언시에 이러한 모호함이 조속히 해소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분명한 것은 이미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된 생존공간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문제는 과거와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것으로써, 앞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는 점이다.

다섯째, 아시아 중시 및 중국 견제전략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가니스탄은 고대시대 중국에서 출발한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이다. 이 지역이 부존자원과 투자가치가 매우 낮은 지역이라 할 지라도 유교문화권과 아랍문화권을 연결짓는 교량적 위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이번에 아프간을 공격하고 이 지역에서 확실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되면 중국과 중동간의 교류를 저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중국은 2015년까지 신대륙경제권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동과 각종 물류와 무역의 통로를 구축하는 신실크로드를 필요로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아프간 전쟁은 그러지 않아도 교류가 일천한 중국과 중동간의 사이를 벌여놓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이미 미 합참의 국방전략문서 JOINT VISION 2020에서 제시한 중국에 대한 가상적국 개념이 이번 신국방정책과 테러전쟁에서 비로소 구현되고 있다는 점을고려할 때 전쟁 이후 대중국 봉쇄정책에 아프간 지역이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전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럼스펠드 구상, 랜드 보고서 등에서 강조하던 대 중국 견제정책, 또한 신국방정책에서 제시하는 아시아 중시전략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평화와 안전의 시대는 오는가.

미국의 군사정책 구상 이면에는 하나의 이분법이 정착되고 있음이 발견된다. 이 이분법은 적과 아의 단순한 구분을 토대로 무한응징과 무한전쟁의 개념을 정당화·합리화한다. 여기에는 제3국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포괄적 보장이 누락된 채 미 본토의 안전이 곧 세계의 안전이라는 논리의 비약이 있다. 국제안보에서 상호주의의 논리가 무시되고 미국 위주의 일방주의에 의한 패권정책의 실현, 미국 주도의 21세기 새판짜기라는 장기구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세계전략이 과연 평화와 안전보장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가. 필자가 예상하는 세계 군사정세의 변화 패턴은 이러하다. 만일 미국에서 탄저균 환자가 도래하면 갑자기 전세계 탄저균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3국이 미국의 적국이 된다. 만일 미국에서 사린 가스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면 전세계 사린가스 보유국이 미국의 적이 된다. 미국에서 발생한 위협의 수단을 보유한 국가는 과거 친미,반미 국가를 가리지 않고 새롭게 미국의 적이 된다. 적대국의 개념이 수시로 수정되고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상한 질서, 유동적인 군사환경이 새로 창출된다. 반면 생물학 무기 백신을 보유한 미국은 백신 공급을 통해 동맹국을 종속화 한다. 동맹의 개념 역시 새로운 방어수단의 공유를 통해 구체화되게 된다. 국제 안보협력의 차원이 상당히 달라질 것을 예상케 한다.

반면 테러의 원인제거, 상이한 문명에 대한 공존과 대화와 생존권 보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미국의 월가와 나스닥 시장은 전세계 자본침탈의 첨병으로서 유럽과 일본 은행의 적이 되어가고 있고, 미국내 은행주의 세력도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중동의 석유약탈에 대한 반감도 고조되고 있다. 이것이 테러발생의 토양이 된 것이다. 즉 `황금의 이동`을 둘러싼 경제전쟁이 이번 테러의 근본조건이다. 문명의 차이를 벌여놓은 주범이다. 마찬가지로 문명의 차이를 극복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단초는 경제적 침탈과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길이다. 여기에 미국이 국방비에 들어갈 예산의 일부를 할애할 아량과 포용력이 있을 때 비로소 테러는 근절된다. 미국은 과연 그러한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 전쟁의 포연이 무성한 2001년의 가을을 후세의 역사가 과연 어떻게 평가할 지 자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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