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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칼럼>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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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9  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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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제4장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주제라고 한다. 도통 어려운 말이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주인’은 자신의 자립적 존재, 그리고 사물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자기의식의 존재를 의미하며, ‘노예’는 자기의식의 자립성을 인정받는 데 실패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주인’은 주체적인 자기의식을 인정받았고, ‘노예’는 마치 사물적 존재와 같은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있었고, 지금도 순방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했던 일본과 한국은 그 강도와 형태만 다를 뿐 대대적인 환영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마치도 트럼프 대통령이 ‘구세주’라도 되는 듯이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졌고, ‘환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언론 등도 앞 다투어 그의 말, 그의 행동에 비굴하리만큼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자국의 이익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설 수 있었다면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건만, 그렇게 ‘환대’받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는 강압적 ‘무기 구매’와 미국의 일자리를 우선하는 ‘경제 챙기기’라는 계산서만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24년만의 국회연설에서는 ‘북한은 지옥,’ ‘북한에 대한 모든 제재와 압박,’ ‘폭군 독재자’등의 맹비난을 넘어서, 결국에는 ‘힘을 통한 평화’와 ‘미국을 시험하지 말라’는 어찌보면 섬뜩한 경고이자 협박의 발언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북핵문제’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던 우리는 그의 입에서 어떻게 하든지 평화와 대화를 얻고자 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돌아온 것은 엄청난 액수의 ‘무기 구매’의 계산서였고, 앞으로도 한미 FTA 등의 또 다른 계산서만 어음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나왔던 그간의 ‘전쟁 운운’은 입막음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든지 하는 아무런 약속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입장도 받아들지 못했다. 단지 한-미 공조를 역설하고, 고장난 레코드 판이 돌아가듯 ‘강력한 제재와 압박’만이 반복되었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탄두 중량 해제가 큰 성과인 듯이 떠들고 있고, 북한에게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라는 말을 들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또 어떤 이는 한미 간에 큰 이견이 없었던 것을 성과로 꼽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결국 한미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무기를 무기로 막겠다는’ 군사력 강화, 이 역시 확실치 않은 채, 그리고 립서비스 수준의 ‘대화’ 타령을 성과로 만족하겠다는 것인가?

바로 여기서 ‘주인’과 ‘노예’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 말이나 던져놓고 그만이라는 식의 트럼프 스타일의 말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던 그간의 행태와 지금의 순방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주인의식 없는 환대’의 모습에서 헤겔이 말했던 ‘주인’과 ‘노예’의 문제가 떠오르지 않는가?

‘환대’라는 말도 뒤돌아보자. ‘환대’란 말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을 아름다운 가치로 여겼던 우리에게 저 멀리 태평양을 건너오는 손님을 뜨겁게 환영하고 환대하는 것은 애써서 국민들에게 ‘환대’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나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데 ‘환대’에는 이러한 국어사전의 정의와 달리 평화와 공존과 아름다운 동행을 위한 ‘인사’와 ‘주고받음’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갈등하는 두 당사자 간의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은 진정어린 ‘인사’와 ‘환대’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비굴하고 굴종적인 ‘환대’는 마치 영화 <남한산성>에서 보여주듯이, 적의 진영에 무장을 해제한 채로 들어가 고개를 조아리는 ‘노예’스러움인 것인지, 결코 ‘환대’가 아닌 것이다. 주인다움을 잃어버린 ‘환대’는 결코 ‘환대’가 아닌 것이다.

또한 광장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구 시대의 적폐로 치부하던 차벽이 다시금 등장했고, 그에게 ‘전쟁반대, 한반도 평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차벽 안쪽에 처량한 신세로 앉아 있어야 했다. 정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미국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상한선 민주주의’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번의 정상회담이 보여준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결국 한반도 안보를 빌미로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것에 있었다. 한반도 안보를 핑계로 더 많은 무기를 팔아먹고, 한국을 윽박질러 FTA 개정을 통해 미국이 더 많은 이익을 챙겨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명분으로서 안보를 내세워 실리로서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반도는 분단 이후 지금까지, 이를 알면서도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할 것이다. 70년간 가랑이를 기었던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도 변치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미 해답은 나와 있다. 한국의 동의없는 한반도 문제 해결은 가능하지 않고, 전쟁도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당당해야 한다. 한국을 제외한(소위 코리아 패싱), 한반도 문제 해결이 요원한 것이라면, 한국이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 당사자로 당당히 나설 것을 선언하고, 이것을 미국에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도, 국민적 의지도 충만하다. 불과 1년전 촛불의 힘이 꺼져가던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듯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국민의 촛불의 힘을 믿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데에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미국의 힘에 달라 붙어 ‘제재와 압박’을 앵무새처럼 떠들어서는 어떠한 문제도 풀 길이 없다. 지금처럼 ‘대상이 되어 버린 사물적 존재,’ 노예의 처지에 있어서는 안 된다. 주인의식을 잃고서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되겠다고 나설 수는 없다. 주인의 위치에서 당당히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말해야 한다.

이제 정상회담이 끝났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다. 지금껏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북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공언했던 대로 미국과 전략적 힘의 균형을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미 대통령의 위협적 언사에 겁먹어서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그러면 또 다시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고, ‘더 큰 도발 – 더 큰 제재’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 갈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의 입지는 더욱 흔들릴 것이고,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작아질 것이다. 그래서 더 큰 걱정이 앞선다. 이것이 우리가 보여준 ‘환대’의 결말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는 언제든지 그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지금의 주인과 노예의 처지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레닌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What is to be done!’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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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7-11-12 12:07:31
소식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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