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앞에 큰 산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적폐청산. 이 산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 산의 한 봉우리를 우리는 넘었으나, 아직도 그 대상은 생떼를 부리고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고, 다음 봉우리를 넘어야만 지금 넘은 봉우리도 온전히 넘은 것이 된다. 새로운 봉우리에서 우리는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를 만났다. 아니 이것 역시 그 이전의 만남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우리를 괴롭혔고, 우리 것을 빼앗았으며,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 그를 조롱함으로써 그로 대표되는 적폐를 청산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 필자 주

 

  쥐잡기의 추억

6, 70년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기억하리라
쥐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인지를
잠자리에 누웠는데 천장을 뛰어다니는 쥐
부엌에 들어와서 밥덩이 반찬거리 휘젓고 가는 쥐
수돗가에 놓은 비누를 갉아먹는 쥐
방까지 쳐들어와서 기겁하게 하는 쥐
이 정도면 애교로 봐줄 수도 있는데
집안 곳간을 털어먹는 쥐
나아가서 나라 곳간까지 탈탈 말아먹는 쥐
그래서 나라에서 쥐잡기를 시켰지
쥐덫을 놓으라고 했고
반장 통장이 쥐약을 나눠주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더러 쥐 잡아서 쥐꼬리 잘라오라고
그러면 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준다고
무섭고 끔찍하고 징그러운 기억이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으로 포장될 수도 있는 일
쥐덫에 걸렸는데 약 안 먹은 쥐를 잡으려면
사실 몸부림치는 쥐를 보고 연민의 정도 느꼈는데
지금은 고양이들이 동네마다 판치고 다니는 세상이라
쥐를 눈 씻고 보려 해도 보기 힘든 세상인지라
자칫하면 쥐가 없다고 착각하기 쉬운 법인데
그러다가 쥐한테 오히려 물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어느 먼 고양이 나라의 야그로 한번 해보련다
옛날 먼 옛날에 고양이 나라에서는
저마다 부지런히 쥐들을 잡았었다
마을 촌장들은 쥐잡으라고 소리치고 다녔고
아이들 서당에서도 쥐 잡아 오라고 하고는
꼬리 하나마다 생선 한 마리씩을 상품으로 주곤 했지
쥐 많이 잡는 고양이가 영웅이 되는 이 나라에서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발톱을 가느라고 날 새는 줄 몰랐다네
그러던 어느 날 어디로들 달아났는지
쥐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고양이 울음소리만 가득해지고
굶주리는 고양이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을 무렵
한 늙은 고양이가 어떤 사나이를 데리고 왔으니
이름하여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
쥐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린다고도 하고
천년 묵은 쥐가 고양이 껍데기를 쓰고 나왔다고도 하고
쥐와 고양이의 유전자가 섞여서 쥐처럼 논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쥐처럼 생겼지만 겉모습은 고양이가 틀림없는 이 사나이
쥐처럼 부지런해서 시궁창을 돌아다니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긁어 모으고
누구네 곳간이든 밤낮 없이 뚫고 들어가
이것저것 쑤셔서 물어 갔다지
쥐처럼 벌어서 고양이처럼 쓴다고 하던데
귀천 안 가리고 돈 버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남의 것 도둑질 한 것까지 높이 사서야 될 말인가
그런데도 너무 굶주렸던 탓일까
아니 고양이들의 이기심이 숨어 있는 걸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 간파하고 그걸 노린 거지
그리하야 거부가 된 이 사나이를 왕으로 모시자는 말이 나온 거라
이 사나이 역시 고양이를 모아 놓고서는
자기를 왕으로 모셔만 주면 배 불리 먹게 해주겠다고
복개된 개천도 뜯어 고치고
강마다 파헤쳐서 뱃길로 천리를 가게 하고
누구나 자기처럼 거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에
쥐들은 혹해서 그 사나이를 고양이 나라 임금으로 만들어 준 거라
물론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도 있고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 이야기도 있듯이
절대로 안 된다고 그에게 속지 말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도 없지는 않았고
어째 고양이 모습이지만 쥐를 많이 닮았다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고양이 또한 없지는 않았으나
너도 나도 부자 된다는 말에 묻혀 버리고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가 고양이 나라 임금이 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일은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거라
쥐가 부지런하지만 의심이 많고
욕심이 많고 교활하다는 점을 잊어버린 고양이들에게
쥐라는 사나이 임금이 되자마자 칙령을 내렸으니
일하는 데 쓸모없는 발톱과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리라고 한 거라
부자가 그렇게도 되고 싶었을까
이때부터 발톱과 이빨을 다 뽑아버린 고양이들
부자가 되기는커녕 누가 부자 됐다는 소리만 들었고
발톱과 이빨 뽑기를 거부한 고양이들은
그 다음부터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지
전국 방방곡곡의 하수도를 다 뚫어버렸다는 쥐라는 사나이
마침내 나라 곳간까지 거덜 내기 시작했다는데
그 일에 숨겨 놓았던 부하 쥐들을 불러서 시켰다고도 하고
밤이면 임금이나 대신이나 모두 껍데기를 벗고
대궐에서 쥐가 되어 찍찍거린다는 소문까지 돌 즈음
어린 고양이 하나가 광장에서 외쳤다네
임금님의 꼬리는 쥐꼬리라네
뱀처럼 춤을 추는 쥐꼬리라네
그 고양이 비참하게 끌려가서 소식을 알 길 없고
또 끌려가고 끌려가고 끌려가고 하는 가운데
드디어 고양이들이 하나 둘 입을 연 거라
임금님 꼬리가 쥐꼬리라면 쥐라는 말인가
쥐꼬리를 가졌다면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발톱과 이빨을 뽑아버린 고양이들
쥐잡기는 아련한 추억 속의 일이 되어버렸네
기왕 이리 된 것 참고 살아야 한다든가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를 쥐라고 하는 것은
불순 고양이들의 조작이라고 하는 고양이들도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날 배고파 못살겠다고 대궐 앞으로 몰려든 고양이들
쥐라고 불리는 사나이가 동영상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도 지금 배 고프지만 우리 조금만 더 참자고 해서
간신히 집으로들 돌려보냈는데
이 사나이를 오랫동안 몰래 추적했던 고양이가
마침내 동영상에 나타난 쥐꼬리를 발견한 거라
게다가 이 사나이 이빨이 너무 자라서
나무토막을 계속 갉아 대는 모습까지
나라곳간 털어서 몰래 숨겨둔 곳간까지
이를 본 고양이들 분노해서 술렁거렸는데
쥐를 잡아 본 지 하도 오래 돼서
그저 쥐잡기의 추억만 있는 고양이들
망연자실하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거라
하지만 예로부터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발톱이 없어도 이빨이 없어도
발바닥으로라도 잇몸으로라도
쥐를 잡고야 말리라는 고양이도 있고
쥐덫을 마련한 고양이 몽둥이를 물고 온 고양이
곡괭이에 낫에 도끼에 하나씩 모두 입에 물고서
쥐 잡으러 가세 쥐 잡으러 가세
고양이 나라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를 부르자 희한한 일이지
발톱 이빨이 다시 나기도 하고
너무 어려서 발톱 이빨을 뽑지 않았던 어린 고양이들 
어느덧 장정 고양이가 되어
쥐 잡으로 간다고들 앞장 서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이제 빠진 발톱 이빨 탓하지 말고
쥐 잡아서 태평성대 이루어야 할 것 아닌가 하고
이 연사 옛날 야그 한번 한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 아주 먼 고양이 나라의 이야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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