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25주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다낭을 방문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참전을 '애국'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숫자는 9천여 명에 달합니다. 피해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이제 답해야 할 때입니다.

<통일뉴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나비기금>이 마련한 '베트남 나비평화기행'(2~8일)에 함께합니다. 촛불혁명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베트남 방문. 한국군에 의해 피해입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 베트남 꽝응아이상 빈호아마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도안응이아 씨가 5일 '평화기행' 참가자들에게 증언하고 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통역을 맡았다. [사진제공-정대협]

"나는 태어난지 6개월이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다가 피투성이로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탄약이 빗물로 흘러 눈에 들어갔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한다. 엄마도 잃고 눈도 잃었다."

1966년 12월 5일 새벽 5시, 청룡부대 1개 대대가 빈호아로 행군했다. 이들은 폭탄구덩이에 36명의 주민을 몰아넣고 총을 쏘아댔다. 태어난지 6개월 된 도안응이아 씨는 죽은 엄마의 품에 안겨 안 나오는 젖을 빨고 있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한베평화재단이 마련한 '2017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 38명은 5일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빈호아마을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방문, 도안응이아 씨의 집을 찾았다.

이날 억수같이 쏟아진 비로 홍수가 난 마을, 빈호아사 '한국군 증오비'와 인접한 곳에 도안응이아 씨(51세)의 집이 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두 눈을 잃은 도안응이아 씨는 환한 미소를 하고 있었지만, 피해의 상처를 고스란히 증언했다.

도안응이아 씨는 1966년 12월 5일, 엄마의 품에 안겨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끌려가 폭탄구덩이에 엄마와 함께 들어갔다. 청룡부대의 총알세례로 쓰러진 엄마의 품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배고픔에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물었지만, 죽은 엄마의 젖은 메말라 있었다. "내가 태어난지 6개월이었다. 엄마의 기억은 없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피투성이의 나를 발견했는데, 나는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었다고 한다"라고 도안응이아 씨는 말했다.

죽음의 광풍이 몰아친 마을, 하나의 생명이라도 지키고자 마을 주민들은 그의 젖어미를 자처했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한국군이 쏜 탄약이 빗물에 흘러 눈으로 들어가 이미 앞을 볼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

"나의 삶은 정말 참혹했다.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나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엄마도 없었다. 그 고통과 설움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15살이 되어 내 힘으로 삶을 살아야 했다.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꾸미(고구마의 일종)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 한국군에 의해 엄마와 눈을 잃은 도안응이아 씨는 노래로 방문객을 위로했다. [사진제공-정대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도안응이아 씨는 비록 생후 6개월에 당한 일이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세상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던 그의 얼굴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상처는 숨겨지지 않았다.

1966년 12월 5일 새벽 5시, 베트남 쭈레에 주둔하고 있던 청룡부대 1개 대대는 빈호아 마을로 들어왔다. 빈호아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쭈옹딘 폭탄 구덩이에서 민간인 36명을 사살했다.

이튿날 아침에도 청룡부대의 살기는 이어갔다. 안프억 142명, 솜꺼우 131명, 짭 할아버지 집 마당 12명이 학살됐다. 이 밖에도 여기저기에서 109명이 죽임을 당했다. 빈호마 마을에서 43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이 중 여성은 268명, 50~80세는 109명, 임신부 7명, 아이 182명이 죽었다. 청룡부대가 자행한 학살의 형태도 다양했다. 참수 1명, 강간살해 2명, 산채로 불에 타 죽은 사람 2명, 배가 갈려 죽은 사람 1명 등이다. 심지어 2가구는 몰살됐다.

여기에는 도안응이아 씨의 엄마도 있었다. 학살자 한국군 청룡부대는 도안응이아 씨의 엄마와 눈을 빼앗아갔다.

▲ 빈호아 마을 입구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하지만 도안응이아 씨는 환한 미소로 한국인을 맞이했다. 기타 연주에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지만, 그 노래 속에는 학살자 한국군을 잊을 수 없음이 묻어났다. 

"이제는 평화를 노래하고 싶다. 여러분을 사랑하라"는 그의 바람은 빈호아 마을 입구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로 향했다. 그리고 '한국군 증오비'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다. 

지금도 빈호아 마을 엄마들은 아이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부른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