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랜 기간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사회운동을 접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한국 수학교육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5년 정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업활동가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 첨단 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촛불과 신정부 출현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의 종말과 시작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대도시에 출현한 청년 인텔리들의 꿈과 염원이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해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선생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격식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필자 주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 83학번으로 대학에 한번 들어갔다가 다시 시험을 봐 문과로 재입학했다. 덕분에 1980년대 초반 매우 색다른 두 개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이과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특히 수학과 물리가 그랬다. 막판 대학에 진학할 때는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진학할까 꽤 고민했다.

또래 이과 친구들은 공대나 의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이들은 286 컴퓨터를 탐닉하며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과 시대적 맥락을 함께 했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화를 이끄는 엔지니어나 전문가로 성장한다.

문과의 핵심 키워드는 역사였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병폐에 주목했고, 분단과 냉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은 역사의 기로에 있었고, 두 개의 세계관(20대 청년들의 관점에서)이 극적으로 충돌했다. 정보통신 문명과 함께 한국 자본주의도 현대화된 형태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낡고 부패한 사회구조가 지속되며 혁명이라는 근본적인 수술로만 해결 가능한가?

역사는 전자가 옳았음을 보여준다. 불행했던 것은 6월 민주화운동의 단기적인 성과가 후자의 과도한 확장이나 착시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6월 민주화운동은 3저 호황이라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벌어졌다. 3저 호황은 단지 경기 순환의 일부분이 아니라 산업화의 체질 개선을 의미하는 구조적 변화에 해당했다. 따라서 6월 민주화운동은 민중항쟁이라기보다는 중산층의 민주화 요구에 가까웠다.

6월 민주화운동에 대한 착각은 1990년대 초중반 시대에 맞지 않는 어설픈 저항과 후퇴를 불러 온다.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등 지하조직 건설 시도, 96년 연대 사건 등이 그런 사례이다. 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 다른 문제는 6월 민주화운동에 대한 성찰 없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청년시절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례이다. 386세대 상당수가 여전히 역사에 빗대어(이 글 말미에 역사가 어떻게 오용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낡은 세계관을 간직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초반 두 개의 세계를 놓고 경합했던 또 다른 집단은 정보통신 분야를 일구기 시작한다. 안철수의 백신, 이찬진의 한글과컴퓨터 등이 대표적인 산물이고 훗날 한국 IT 산업의 상징이 되는 이해진과 김범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한국의 산업화는 일상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87년 6월항쟁은 서울-부산-광주 등 3개 권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내 기억으로 6월항쟁의 주역은 부산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를 거치며 한국은 완연히 달라졌다. 한국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도시화되었고 그 중심에 거대 도시 서울과 경기도가 있었다.

1980년 서울·경기·인천/전체인구가 1330만 명/3744만 명으로 35.3%인 반면, 2000년이 되면 2121만 명/4613만 명=46%로 거의 절반에 이른다. 2000년 이후 거의 모든 변화의 중심이 수도권에 집중된 이유는 이와 같은 인구 구성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정보통신 문명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된 정부임과 동시에 도시화되고 젊은 그리고 신문물 친화적인 정권이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정보통신 문명이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5~07년 노무현 정권의 좌절을 계기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제 사회 주도권은 젊고 첨단 문물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아니라 구세대 고령층으로 넘어 갔다. 이와 함께 반대 진영 또한 이념적 순도가 높고 배타적인 사상과 세력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민감하고 포용적이었던 대한민국도 무너뜨렸다. 2000년대 초반 월드컵과 함께 역동적으로 분출했던 젊고 활기찬 대한민국은 음울하고 냉소적인 대한한국으로 변해갔다. 

2116~17년 10년 보수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된다. 불행했던 것은 이 과정이 성장과 분배, 과학과 역사,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반 발전하는 형태가 아니라 후자가 전자를 폄하하고 제압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다.

안철수는 1980년대 초반 현대화된 한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의 아바타라거나 민주화 시대에 책이나 보던 덜떨어진 의대생으로 폄하되었다.

나는 실제로 20~30대 청년들 그리고 유력 정치인들이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마타도어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삼성이 처한 현실도 아이러니하다. 삼성전자는 2017년 현재 전대미문의 대기적을 낳고 있다. 2017년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분의 매출은 19조 9천억, 영업이익은 9조 9600억원이다. 이는 애플·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를 뛰어 넘는 실적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후계자는 감옥에 있다. 나는 이재용의 사면 따위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이재용이 구속되고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장은 삼성전자가 이룩한 기념비적인 업적에 대한 평가와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은 1980년대 초반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고 90년대 중반 반도체 호황을 주도하며 한국 기업을 업그레이드했다. 90년대 말에는 일본 전자산업을 젖히며 한국전자산업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부상했다. 

삼성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신화를 뛰어 넘어 그 자체로 연구할만한 거대 의제이다. 그런데 2017년의 한국은 삼성이 이룩한 기념비적인 업적에 대한 토론은 빈약하고 삼성을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을 둘러싼 역설은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 삼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경이적인 반도체 호황이다. 2017년 10월 반도체 수출은 94억 8천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1/5을 넘는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 호황을 포함한 수출 성장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반도체 경기를 포함한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유지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운명을 장담하기 어렵다.

언제나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밥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보다 상위에 있다.   

청문회에 출석한 이해진의 처지 또한 비슷하다. 나는 이해진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나는 네이버의 대기업 진입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진이 유럽에 진출하여 인공지능 연구역량을 영입하며 새로운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문제이다.

전자는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전통 대기업에 비해 다른 체질과 감수성을 갖는 새로운 기업이 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후자는 2000년 중반 시작된 범세계적인 산업구조 재편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다.

청문회에 출석한 이해진의 모습은 불쌍해 보였다. 나는 네이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죄를 지었으면 값을 치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과 멘트는 참으로 기가 막힌다.

청문회에 나온 이해진은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사회문제를 모른다”며 시종 수세에 몰렸다. 국회의원들은 정작 이해진에게 발언 기회도 주지 않고 윽박지르기 바빴고 SNS에서는 이해진의 갑질?을 질타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이런 생각의 저변에 깔린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9월 1일 박성진 장관 임명 과정에서 언급된 청와대 관계자의 인식을 소개한다.

‘박성진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국무위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으면 저희도 환영하겠지만, 일반적인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온 분들이 사실 건국절 관련 문제를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 “일반적인 공대 출신”... 역사가 과학을 능멸하는 황당한 장면이다. 

대충 무슨 소린 줄 안다. 나는 그 세계에서 30년을 보냈다. 위안부나 5.18 등을 의미할 수도 있고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나 다쓰현(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맑스를 들먹일 수도 있다.

5년 전 수학강사에 본격 입문한 이후 나는 이런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어떤 사람들은 5.18이나 87년 6월과 같이 한국에서 발생했던 특별한 사건이 인류 역사를 면면히 관통했던 수학·과학·기술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입장을 배타적으로 강요하려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1980년대 버전의 옛날이야기는 건질 게 별로 없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은 기억할 만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인식은 유장한 역사의 흐름이나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쓸 만한 것이 없다. 그냥 청년시절 가졌던 80년대 버전의 지나간 이야기다.

결론을 내려 보자.

한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과학기술과 역사,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과잉화된 역사가 과학과 기술위에 서 있다. 민주화운동 경력이 완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면 한국을 둘러싼 현 상황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중흥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을 소중히 하되 오랜 기간 자신의 영역에서 과학기술적 성과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그들을 중용해야 한다.

역사가 아니라 과학,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시대의 본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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