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제막식이 28일 교토(京都) 우지시(宇治市) 시츠카와(志津川)의 우지강(宇治川) 근처에 진행되었다고 재일 <조선신보>가 30일 보도했다.

▲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제막식이 28일 교토 우지시(宇治市)  우지강(宇治川) 근처에 진행되었다.. [사진-조선신보]

신문에 따르면, 일본시민들의 손에 의하여 12년 전 ‘시인 윤동주기념비 건립위원회’(대표=안자이 이쿠로 리츠메이칸 대학 명예교수)가 결성된 이래 시민들의 모금을 모아 윤동주 탄생 100년이 되는 올해 마침내 시비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우지강은 윤동주가 재학 중 친구들과 함께 간 아마가세(天ケ瀬) 허궁다리에서 인생 마지막이 되는 사진을 찍고 강변에서 밥을 지어 먹은 연고지이기도 하며, 기념비가 건립된 것은 이 허궁다리에서 약 300m 상류에 있는 백홍다리(白虹橋) 곁이다.

이날 제막식에서는 지난해 교토에서 열린 구성극 ‘생명 빛나는 우지강 근처’에서 윤동주 역으로 출연한 모리 타카시(毛利崇) 변호사가 ‘맹세의 말’을 하였다.

모리 변호사는 “한때 일본을 비롯한 나라들이 제국주의사상에 기초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시인 윤동주가 그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다. 그러나 인연이 있어 낭독극에서 그 역을 하면서 비로소 그의 삶과 시를 알게 되었다”고는 “윤동주를 계승하는 것이 과거의 비극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여 이 운동에 미력하게나마 참가해왔다”고 말했다.

또한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는 “이 시비가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는 발신지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기억과 화해’의 비석은 높이 약 2m, 폭 1.4m로 되어 있다. 판석 앞면에는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우리글과 일본글로 새겨져 있으며, 비문에는 “1943년 7월 조선독립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수감. 1945년 2월 16일, 27살로 옥사했다”고 새겨져 있다.

신문은 이날 현지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안자이 명예교수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총련 교토부본부 김상일 위원장, 아동문학자인 한구용 씨 등 시민, 동포들 230명이 참가하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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