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bhsuh@tongilnews.com)


미국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일련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미국이 새로운 평가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과 이후 나타난 남북간 관계 개선 양상에 대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으면서도 북한의 실질적 변화는 없다고 하면서 이중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이 이같은 태도를 견지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이 과거처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와 관련,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구체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지난 3개월 동안 북한 위협을 거론하면서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한-미동맹관계의 강화 등을 강조하여 왔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에 북한은 미국이 일본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약화될까봐 반기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최근 들어서는 <노동신문>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재론하기에 이르렀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의 변화를 촉진

그러나 지난 27일부터 뉴욕에서 북-미회담이 개최됨으로써 양국은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다.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상과 찰스 카트먼 한반도 특사를 대표로 하는 양국간 회담은 지난 7월 이후 열리는 것으로 양국간 공식 외교채널로 작용해왔다. 29일까지 3일간 일정으로 예정된 이 회담은 필요하면 일정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여 그 결과가 주목된다.

김계관-카트먼 채널은 그동안 북-미간 협상채널을 상징해 왔으며 양측간의 이해의 차이가 있을 때마다 이를 조율, 타협하여 북-미관계를 대화로 유지해온 매개작용을 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은 핵, 미사일, 테러 등 그동안 별도로 논의해 왔던 현안들을 일괄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회담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이번 회담은 양국간 관계를 보다 진전시키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그동안 북-미관계가 협상을 사안별로 진행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평가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과거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거두고 현재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지원 및 국제적 이미지 개선을 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새로운 생존전략은 통남봉미(通南封美)로 경도되지 않고, 대미관계 개선도 한 축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즉 북한은 통남-통미 전략을 통해 체제생존을 위해 파상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우회적인 방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미관계 개선 방식의 전환 : 포괄접근

김계관-카트먼 회담은 그 결과보다는 포괄적 논의를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관계 개선이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지를 점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 협상채널을 통해 개입정책을 전개하면서도 군사적 억지력과 대북 불신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 또한 미국이 북-미 제네바 핵합의 사항의 이행 및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해제 등을 하지 않는 가운데서의 대화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보여 왔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북-미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하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평화적 목적의 인공위성을 개발을 조건으로 한 미사일 개발 중단을 시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이미 작년 북-미 대화 기간 동안 미사일 발사 실험 유보를 선언한 바 있다.

한편 미국이 북한과 포괄적 회담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의 의미를 갖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한 양측과 국교를 맺고 있는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있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서 한반도 정세와 북-중간 전략적 제휴 방안을 모색하였으며, 남북한은 정상회담으로 분단 이후 초유의 협력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남한내에서 주한미군이 인권, 환경 등의 측면에서 보인 부정적인 모습은 군사안보상 위협으로 상승할 정도였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에 남북관계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것보다 그에 비례하는 대북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협상이 사안별 접근에서 벗어나 포괄적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이같은 양국간 전략적 이해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석은 북한 군부의 실세인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초청 형식으로 오는 11월 9일 방미한다는 것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조명록은 현재 북한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국방위원회(위원장 : 김정일) 제1부위원장으로, 지난 남북정상회담 기간중 오찬사를 통해 "공동선언을 성의있고 신의있게 실천하자"며 군부의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미한다는 미 국무부의 발표에 대해 우리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표하며 이를 계기로 북-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에 비례하는 대북관계 개선의 필요

조명록의 방미는 그가 △북한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김계관-카트먼 외교채널 직후 방문하며 △북한 군부로서는 처음으로 적성국인 미국에 가며 △양국간 적대관계 청산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는 점 등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흘간의 일정으로 예정된 그의 방미기간 동안 클린턴 대통령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

이렇게 볼 때 이번 김계관-카트먼 포괄 회담은 이전 회담과 달리 올브라이트-조명록 간의 북-미 고위급회담의 방향과 의제를 준비하는 성격이 짙다는 결론이 나온다. 회담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의미도 이런 점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조명록과 올브라이트간 회담에서는 양국간 적대관계 청산을 겨냥하는 논의들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해제,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각각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이며,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공동인식을 이끌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의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 양측은 북한의 체제 보전 및 경제 이익을 중심으로 의견을 좁히고자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안의 민감성으로 인해 타결보다는 상호 입장의 파악으로 향후 (실무)논의기구의 설치가 예상된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북-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판단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상호 불신과 견제 속에서 제로섬 게임을 벌여온 양국이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의향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북-미관계가 이렇게 새로운 진전을 모색한 데는 양국간의 전략적 이해는 물론 최근 남북관계 개선이 큰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반도 평화정착과 신뢰구축을 이끌어내고 여기에 주변국들의 협력을 유도하는데 남북간의 협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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