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보수·중도·진보 100인 토론'이 27일 오후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대화냐, 제재냐'라는 오래된 문제가 있다. 한편에서는 핵을 가진 북과 대화와 평화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말을 듣겠느냐며, 우리도 무언가 대응할 수단(핵개발, 전술핵)을 갖추어야 핵을 가진 북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또 핵을 가진 북이 앞으로 남에 대해 이른바 '갑질'을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설마 북이 갑질을 하겠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문제를 내놓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보수·중도·진보 100인 토론'.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는 "쟁점들이 생기고 있고 피하기 어렵다. 싸우기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서 가장 좋은 답을 찾아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토론의 시작을 알렸다.

'사회적 대화'란 '정보공유를 포함하여 공통된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한 교섭과 협의'라고 국제노동기구(ILO)는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는 ILO의 '사회적 대화' 주체인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를 보수·중도·진보로 바꾼 셈.

이날 토론회를 준비하고 진행한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는 이제 시작이다. 지난 촛불 과정에서도 상식적 수준의 이해를 가진 보수가 동참했기 때문에 박근혜 퇴진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물며 미국과 싸우는 반전평화투쟁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이날 토론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원활한 토론 진행을 위해 보수·중도·진보를 대표해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김종수 더불어민주당 통일전문위원, 이태호 시민평화포럼 정책위원장이 각 10분씩 쟁점발제를 했다.

▲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대한 안보주의적 시각'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북한의 핵무기 전력화는 완결단계에 임박했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한반도 전체를 압도하는 변수였지만 오래지않아 상수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핵무력이 완성될 경우 "북은 일방적인 갑의 입장에서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억제하고 주한미군 철수 목표를 달성해 무력 적화통일을 노리는 등 대남전략을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대미·대남 억제력 구축을 통해서 북한 체제의 독자적 생존을 꾀하면서 상호 체제 공존을 추구하는 투 코리아로 갈 수 있다"며, 우리 사회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런 의견이 다수이고 자신도 더 가능성이 높게 본다고 덧붙였다. 

또 북한이 6차까지 핵실험을 끝내고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까지 완성한 상황에서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북을 대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재는 필요하고 불편하게 하는 효과도 있으며 의미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핵국가와 핵보유국간의 평화체제, 대등한 협상같은 일은 국제정치적으로 실현된 경우가 없다"면서 "북의 핵 전력화가 임박 또는 완성단계에 접어든 급박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한 방안은 2020년까지 완성을 목표로 하는 3축체계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이라고 말했다. 

'전술핵'은 방어적 성격의 강한 핵이며, 가장 짧은 시간내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서 현재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또 북핵의 무용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있을 수 있으며, 전술핵 재도입을 추진하는 것 만으로도 북한과 중국에 대한 상당한 정치적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목표와 전망에는 이견이 없고 장기적으로 바라는 바이지만 비핵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핵을 가진 북한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해야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이나 긴급구호 차원의 지원, 민간과의 협업 등 남북대화는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국제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대화 제의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종수 더불어민주당 통일전문위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중도를 대표해 발표한 김종수 더불어민주당 통일전문위원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쟁점과 과제' 발제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6차례 핵 실험을 하고 중장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했으며, 재진입기술이 남아 있는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야 하느냐, 아직 최종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느냐,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흔히 말하는 플랜B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느냐 등의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복잡하게 전개되는 상황의 일단을 내비쳤다.

북핵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주제'라면서 "정부는 핵동결-핵폐기라는 단계적 접근을 기본적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작은 모라토리엄 선언부터 해야 하는데 과정을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며 똑부러지는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요즘 일부에서 논의되는 군사적 해법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제재·대화 병행 방침의 모순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대화에 포커스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하고는 "그동안 제재를 많이 했지만 북을 변화시키지 못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대화방안에 대해서는 지지해 줄 필요가 있다"며, "한미간 전략적 협의에서도 '북과의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 주요 주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득시켜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에서 주장하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적절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또 북핵문제의 실질적 진전없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이에 대해 순서와 시점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실상 평화체제를 먼저 만들자는 북의 입장에 견주어 '비핵화-평화체제' 논의가 실제 협상국면에 접어들 경우 간극을 메울 준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한미군사연합이 걸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며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지만 당국자들 사이에 논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이태호 시민평화포럼 정책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어 이태호 시민평화포럼 정책위원장은 '남한의 정권교체와 한반도 정책전환의 지체'라는 제목으로 시민사회의 입장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논란은 있지만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구했던 화해협력정책을 계승했지만 북핵 위협 등에 대해 한층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기존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면서 단계별 협상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햇볕정책 플러스'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북에 대한 관여와 압박 모두 최대한 강력하고 실효성있게 추진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최대한의 압박은 구체화되고 있는 반면 최대한의 관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에서 여러가지 협상제안을 했으나 북에서 거절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두루미에게 접시물을 제공한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평화협정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반해, 북한은 말로 하는 약속인 평화협정은 그것대로 선행시키고 물리적인 억제력 축소는 북미간 핵군축 협상 등의 형식으로 별개 또는 나중에 진행하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북한 미사일을 핑계삼아 대 중국용 MD(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한국이 미국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라며, 이는 결코 중국을 설득해서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 정부가 저지른 일을 새 정부가 떠 맡은 형국인데, 문 대통령은 이밖에도 미국 방문시 장진호 전투기념비를 찾아 당시 전투 당사자인 중국에 불편한 인상을 주거나 흡수통일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에서 대북정책을 발표하는 등 "안해도 될 일을 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을 더 꼬이게 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정책위원장은 지난 30년간 세계 최대의 핵 보유국인 미국이 미보유국인 북한을 향해 매년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실지회복 개념의 군사연습을 진행하는 동시에 협상을 제안하고 이에 북이 몇 차례 응했으나 그마저 미국의 약속파기로 모두 깨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국제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방적인 협상의 룰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북의 핵개발이 완성단계에 도달한 상황이 되면서 한국은 지난 30년간 북의 입장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북은 미국과 한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맞서 비대칭 우위라도 갖기 위해 핵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북과 대화를 하려면 내년 군사연습 한번 정도는 하지 않겠다고 제안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역설했다.

▲ 이날 토론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상생 번영이라는 현실적 접근을 통해 하나의 길에 합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이 이루어지려면 지치지 않고 계속 답을 찾아나가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진제공-정성희]

쟁점발제에 이어 모든 참가자들이 짧게 입장을 밝히면서 토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노정선 전 교회협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동해상에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많이 투입돼 있다. 전술핵을 가지겠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이 핵전략자산을 괌에 묶어 놓는 일을 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북과 조건없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북핵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핵실험 중단에 합의하고 대화를 시작한다면 코리아패싱은 가속화되어 남북대화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이렇게 되면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남한에서도 독자적인 핵 개발 주장이 걷잡을 수 없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은 핵보유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 등을 통해 내부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일본의 핵무장 의지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신중하게 한국과 일본을 대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는 사드배치와 관련해 대통령이 마치 북핵 방어체계나 되는 것처럼 국민을 우롱했다며, 북한의 핵보유를 현실로 인정하고 남북문제도는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참가자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주장보다는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는 가상의 아젠다를 제시하여 반전 평화의식을 고취하고 전쟁 위기에 심리적으로 분노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캠페인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는 주장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이날 토론에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노정선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 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인 지홍 스님,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정연진 AOK(액션오브원코리아) 대표, 최병현 주권자전국회의 사무처장,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등 각계 인사가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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