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랜 기간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사회운동을 접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한국 수학교육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5년 정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업활동가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 첨단 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촛불과 신정부 출현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의 종말과 시작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대도시에 출현한 청년 인텔리들의 꿈과 염원이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해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선생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격식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필자 주

 

1987년 12월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연인원 500만명이 참여한 거대한 시위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대선 직후 치러진 88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형성되었다. 집권 여당에 비해 야당의 의석 수가 많아진 것이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당시로 보면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임계점에 이른 민심은 국회를 무대로 치명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88년 하반기 5월 광주에 대한 TV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청문회를 무대로 우리가 기억하는 한 인물이 부상한다.

만약 그가 목소리나 높이며 호통이나 쳤다면 스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역사와 정의 운운하며 거창하지만 공허한 말투로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를 기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는 시종일관 정중했고 나름대로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논리와 폐부를 찌르는 질타로 좌중을 압도했다. 군부와 광주, 기득권층에 가졌던 겹쌓인 원한과 감정과 맞물려 하나의 신화가 태어나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92년 3월 총선이다. 90년 3당합당으로 부산의 선거 전망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굳이 부산을 찾았다. 그것도 80년 광주 주범 중 하나인 허삼수가 출마했던 부산 동구였다. 80년 광주와 3당합당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기사를 회고하면 다음과 같다. 유세 마지막 날 노무현을 연호하는 유세 행렬이 노무현의 지구당 사무실까지 행진했다. 정치인, 높은 자들의 훼절과 배신에 몸을 떨었던 시민들은 자기가 내뱉은 말에 진짜 책임지는 새로운 정치인의 출현에 열광했다. 그리고 지구당까지 행진하며 예정된 패배를 함께 했다. 나도 서울에서 이 기사를 읽으며 함께 울었다.

그렇게 그는 신화가 되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가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변화하는 대한민국과 잘 맞았다.

1990년대가 되면서 한국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다. 촌스럽던 대한민국은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바뀌어 갔다. 2002년 노무현은 젊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상징하기에 충분했고 그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대통령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인물은 많다. 김대중만 해도 그렇다. 그의 삶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내게 김대중의 과거는 다분히 역사책의 이야기였다. 

반면 노무현과 얽힌 기억은 얻어맞고 감옥에 가던 내 젊은 시절의 영혼과 결합되어 있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내가 또는 우리가 노무현에 대해 가졌던 각별한 감정에는 그가 우리의 청춘과 경험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 봐야 한다. 냉정하지만 이것이 역사를 사는 사람, 특히 유력 정치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인간 노무현이 그렇다면 정치인은 노무현은 어떠한가?

우리 역사에서 기억할만한 시대는 1988~96년이다. 수출과 내수, 민주와 분배가 선순환하며 성장과 번영을 함께 했던 시절이다.

200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진원지는 기업이었다.

 

위 그림은 1998~2016년 사이 한국의 수출 증감이다. 1998~2002년 박스권을 맴돌던 수출은 2003년부터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발전한다. 표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2003년 2000억불을 밑돌던 수출은 2011년 6000억불에 근접한다. 10년이 채 못 되어 3배 증가한 것이다.

이 드라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한국 전자산업이다. 어렸을 때 전자제품하면 단연 일제였다. 그 중 소니가 대표 기업이었다. 1980년대 초반 삼성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고 90년대 초중반 반도체에서 기세를 올렸지만 판세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이었다. 일본 전자기업이 투자에 주저하고 전통 전자 산업에 안주하는 대신 삼성과 LG는 새로이 부상하는 디지털 경제에 과감히 도전하며 세계 전자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같은 맥락에서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제조 대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부상한다. 2000년대 한국 수출의 드라마틱한 증가에는 글로벌 대기업이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의 경이적인 증가는 막대한 부를 가져왔고 이 부는 한국사회를 근원적으로 바꾼 뇌관이었다. 문제는 이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은데 있다.

당연했다. 변화를 강제했던 힘이 우리 내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IT 버블과 부동산 버블, 미중 사이의 거대한 무역구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신흥 부국의 수입 수요 등이 수출 대약진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의 경영성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해외 매출은 1992년에 이미 60%에 이르렀고 2006년에는 90%에 육박했다.

상황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국은 글로벌 대기업에 편승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양분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직면한 현실은 새로운 조건에서 국민경제의 통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와 관련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뭐가 옳은지 자신이 없다. 분명한 것은 2005~07년 시점 주거, 교육, 보육 문제 등에서 내수 기반을 근원적으로 확충할 사회개혁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일자리 나누기, 청년창업, 과학기술 혁신, 여성의 사회참여와 같은 보다 역동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여론의 지지는 분명하고 단호했다. 2003~04년 탄핵 정국에서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대통령을 지지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고졸 비주류 출신의 대통령을 승인했고 이를 부정하려는 정치세력을 단호히 응징했다.

사회경제에 대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여론 조사가 있다.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공정거래위가 기업에 대한 계좌추적권,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에 찬성(75.2%) 반대(20.9%).... 2004년 5월 여론조사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과 관련 어느 쪽 입장에 더 공감이 가세요? 규제완화 등 기업의 투자촉진이 우선이다. (25.2%), 사회안전망 등 서민생활의 보호가 우선이다. (74.2%)....2004년 12월
  실직이나 빈곤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주는 사회안전망 제도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다고 보세요? 충분하다(1.7%), 미흡하다.(97.5%)” (김헌태, “분노한 대중의 사회”에서) 

무엇이 더 필요한가?

대통령은 무언가 했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2년의 그 때처럼 우리는 당신과 함께 싸울 수 있었다. 그랬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역사의 키를 쥔 장수가 건곤일척의 싸움터에서 주저했고 그 사이 한국은 길을 잃었다. 결전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포말처럼 흩어졌다. 대열이 무너진 상태에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운운하는 헛된 담론들이 거리를 휩쓸었다. 

지지기반이 붕괴하며 주도권이 보수진영으로 넘어갔다. 이것이 수준 이하의 보수 정권이 10년이나 들어설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결론을 내려 보자.

인간 노무현을 추억하는 것과 정치인 노무현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2005~07년 노무현 정부가 저질렀던 실패에 대해 엄정해야 한다. 

나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운영했던 정치세력과 리더들이 응당한 평가와 검증 없이 복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추억에 비해 노무현에 대한 시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누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이 있었다. 촛불은 보수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을 거대한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이 진공상태를 헤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보다 냉정하고 정직해야 한다.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1995~05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등 통일운동
* 2005~12년 진보연대 등 사회운동
* 12년~ 주) 지성의숲에서 수학 강사로 활동
* 현재는 한국 수학교육의 혁신에 관심을 두고 있음
* 최근 지은 책으로는 수포자탈출실전보고서, why 인공지능과수, 암호와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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