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20년을 맞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엄주현 사무처장을 19일 <통일뉴스>가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남북의 전체 주민들이 건강권을 회복할 수 있는 논의를 같이하고 싶다."

북녘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한 외길. '어린의약품지원본부'(이사장 나동규)가 창립 20년을 맞았다. 20년동안 총 89차례 147억 여 원의 의약품을 북녘에 지원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인해 중단됐지만, 평양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자랑이다.

단순 대북지원을 넘어 남북 주민의 건강권 회복이라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있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창립 20년을 맞아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엄주현 사무처장을 19일 오후 서울 이화동 사무실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진보적인 보건의료인들이 북녘의 아픈 어린이를 위해 고민하며 출발했다"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태동은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엄주현 사무처장은 소개했다. 진보적인 의료인들이 모여 1987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창립하고, 각종 보건의료단체가 결성되면서 이들의 눈은 자연스레 통일운동으로 갔던 것.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북녘의 어려운 상황이 알려지면서, 기본적인 소임이 생명을 살리는 일인 보건의료인들이 각 단체와 연대해 대북사업을 제안했다. 그리고 몇몇이 모여 모금을 시작하고 유니세프를 통해 먼저 지원했다. 그리다 1997년 '북한어린이살리기의약품지원본부'를 결성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 엄주현 사무처장.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단순히 보수세력의 딴지걸기를 피하고자 '북한어린이 살리기'라는 명칭이 붙었다가 북한 측의 반발로 현재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97년 모금활동을 하기 위해 당시 내무부에 허가신청을 냈지만 불허돼 법률투쟁으로 1999년 대법원에서 승소해 본격적인 모금활동이 가능해진 역사도 있었다.

초기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가 파트너였고,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거쳐 현재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과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20년동안 점차 성장해왔다고 엄 사무처장은 소개했다. 평양 어린이영양관리소 의약품 생산설비 및 원료.완제의약품 지원을 시작으로 평양 대동강구역, 평양 철도성병원 및 철도위생방역소 현대화사업을 거쳐, 평양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에 이른 것. 

하지만 교류협력 10년, 중단 10년을 거치면서 남북 교류사업이 녹록치 않았던 것도 사실. 엄 사무처장은 "보수정부 들어서 2008년에는 문제없이 약속된 물자가 갔다. 이전 정부정책이 첫 해에는 유지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축은 할 수 있다. 2009년에 병원에 쓰일 의료장비와 소모품, 의약품을 보내야 하는데 반출이 안됐다. 그걸로 싸움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 합의서는 2007년 12월에 체결됐지만, 정작 건물을 짓고 물자를 보낸 것은 2015년에서야 이뤄졌던 것. 2017년 현재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엄 사무처장은 "정부가 교체되면 바로 대북사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 올 초에 북쪽에서 곧 사업을 재개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며 "2015년에 물자를 보냈지만 기술이전을 전혀 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정부가 바뀌면 바로 기술이전하고 추가 기증물건이나 부족한 것을 지원해서 올해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막혀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지난 9년 쌓인 남북 경색국면은 현재 진행형. 정부가 꾸준히 민간단체의 대북접촉을 승인해주고 있지만, 북측의 묵묵부답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도 해당된 것이다.

▲ 엄주현 사무처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이화동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렇다고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손을 놓고 마냥 북측의 호응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남북 보건의료시스템 통합으로 시야를 넓혔다. 북측 보건의료 연구사업 일환으로 2012년 연구위원회가 조직되고 2013년 남북보건의료협력센터를 설립했다. 2012년부터 북한 보건의료연차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임상연구까지 발전했다.

"지원본부 초기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통일이후 교류협력과정에서의 남북보건의료체계통합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20년동안 이런 일을 못했다면 향후 개발협력을 포함한 남북보건의료인의 교류협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엄 사무처장은 강조했다.

오는 21일 열리는 20주년 기념 심포지엄도 그래서 의미가 크다. 북한에서 발행된 의학 학술지인 '조선의학', '고려의학' 등을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상황을 분석.발표하는 장이 마련됐다.

병원을 운영하며 자발적으로 후원하는 등 전문의료인들의 동참이 쉽지않지만, 엄 사무처장이 바라보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미래는 밝았다.

"요즘 젊은 선생들, 진보적 보건의료인들이 더 많이 모이고 있다. 이들은 공공의료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다. 공공의료의 한 부분이 사회주의보건의료이고, 북쪽에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하나둘 모여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남북보건의료인들의 교류협력에 적극 기여할 젊은 선생님들이다. 재개만 된다면 보다 체계적으로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엄주현 사무처장은 "남북의 전체 주민들이 건강권을 회복할 수 있는 논의를 같이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창립 20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15년동안 일해 온 엄주현 사무처장은 "교류가 활발했던 10년과 아닌 10년을 겪으니, 통일전 남북교류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북쪽의 보건의료상황이 더 발전하고 주민들의 건강이 보다 나아지기를 바란다. 남쪽의 보건의료상황도 녹록치는 않다. 남북의 전체 주민들이 건강권을 회복할 수 있는 논의를 같이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및 기념식이 오는 21일 오후 5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함춘회관 3층 가천홀에서 열린다. 심포지엄에 이어 기념식에서는 '남북보건의료협력 선언문'이 발표된다. 부대행사로 임종진 전 기자의 '사는거이 다 똑같이요' 북녘 사진전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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