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경. 북으로 향하는 도로 위 군사분계선(MDL)을 표시한 폭 30cm의 노란색 선이 상징으로 그려져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노란색 선을 걸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성.

"오늘 이 자리에 서고보니 심경이 착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발전이 저지돼왔습니다. 다행히 그 동안에 여러 사람들이 수고를 해서 이 선을 넘어가고 또 넘어왔습니다. 이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MDL를 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길'로 향한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3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4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남북정상선언')에 서명했다. 7년전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았듯, 이날도 양 정상은 손을 잡고 들어올렸다.

10.4선언이 발표된 지 꼭 10년이 됐다. 하지만 10.4선언 서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 2개월 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고,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9년동안 말그대로 휴지조각이 됐고,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준비위원장이던 문재인 대통령. 10.4선언은 부활할 것인가.

7.4성명, 6.15공동선언을 이은 10.4선언

10.4선언은 1972년 7.4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도 잇고 있다.

"군사적 신뢰조치가 확대되고 한반도 평화체계를 구축하는 발판이 마련되는데 의미가 있다. 남북경협, 교류협력 관계를 양적, 질적으로 한단계 진전시키는 새로운 한반도 구상을 논의하여 다음 정부에서도 화해협력기조가 지속돼 나가는데 확고한 기반을 조성하는데 여할 것이다."

10.4선언은 총 8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항은 6.15공동선언을 명시해 이행을 약속하고, 2항은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담겨있는 상호존중과 신뢰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3항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협력을 담고 있다.

1.2항의 원칙에 따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지정해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것.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했다고 비방하지만, 정작 공동어로수역은 1972년 7.4성명 발표 이후 박정희 정권이 검토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 전두환 정권이 북한에 제안했고, 1992년부터 본격 논의가 됐다. 이를 받아 10.4선언에 명시된 것이다.

4항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남북.미.중 4자가 만나며,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를 준수해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원칙을 담고 있다. 

▲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4정상선언'에 서명한 뒤 손을 잡고 기자들을 위해 다시 포즈를 취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5항은 남북경제협을 골자로 하는데, △민족내부협력사업 특수성 인정,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통한 해주 개발,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및 공동이용,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이를 위한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 등이다.

6항은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북응원단 경의선 열차 이용 등 남북교류.협력을 담고 있다. 7항은 △이산상봉 확대, △금강산면회소를 통한 상시 이산상봉, △자연재해 등에 상부상조 원칙 협력 등 인도주의 협력사업 추진을 밝히고 있다. 8항은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10.4선언'은 유엔 총회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물거품이 됐다. 14조 원을 퍼준다며 공격을 하던 보수정부는 10.4선언 이행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결국, 2010년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5.24조치'를 발표, 경제협력을 주요 골자로 한 10.4선언은 폐기 수순을 밟았다. 박근혜 정부도 이를 이어받았고, 9년 동안 10.4선언은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10.4선언 10년,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할까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발표 10년을 맞은 10.4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않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금강산, 원산.단천, 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개발해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구축', △수도권, 개성공단, 평양.남포.신의주 연결 서해안경협벨트 건설 및 경의선 개보수, 서울-베이징 고속교통망 건설 등 '서해권 산업.물류.교통벨트 건설', △설악산.금강산.원산.백두산 관광벨트 구축 및 DMZ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 등을 담고 있다. 10.4선언 5항을 그대로 옮겨온 셈이다.

▲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6일 열린 '10.4선언 발표 10주년' 기념식에 참석, 연설을 통해 북한을 향해 10.4선언의 정신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통일부 내 '한반도 신경제지도 TF'를 설치하고, 관련 예산으로 내년도 경제협력기반 세부사업 예산을 1천억 원 이상 증액.편성해 2천 480억 원을 책정, 장기적인 사업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10.4선언 발표 10년을 맞은 현 상황은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꺼낼 형편이 못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시험발사했고,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은 두 차례 일본 열도를 넘어갔다. 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실험(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맞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보다 강화하는 추세이다. 당장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구현하려면 미국 정부의 도움없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별다른 실력발휘를 하고 있지도 않다. 강력한 대북응징력을 보인다며 자체 개발한 탄도미사일 '현무-2'를 대응발사했다.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 전략폭격기 'B-1B'는 처음으로 동해 NLL을 넘어 함흥지역까지 날아갔다.

▲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 일행이 북녁으로 향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평화의 운전수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물꼬를 트기는커녕,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대화로 풀어야 한다더니 아직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고 하고, 꾸준히 제기되는 특사 파견 요구에도 귀를 닫은 모양새이다. '긴 호흡' 필요성에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 발표, 남북대화 제안 등 성급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왜 서두르냐고 주변을 탓하고 있다.

인도주의 문제는 정치.군사와 무관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는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를 공여하는 문제를 두고서도, 오락가락하더니 '정치적 상황과 분리'한다면서도 '남북관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여론 설득에 실패한 듯하다.

"10.4정상선언은 한반도 평화지도였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신북방정책 역시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며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10.4정상선언의 정신으로 돌아오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다. 

하지만 10.4선언 발표 10년. 정작 문재인 정부가 10.4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넘은 금단의 선은 여전히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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