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

이 글은 총론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라는 주제 하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분야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모색의 글에 가깝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두 문제의식에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북핵문제의 본질을 짚어내고자 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다음은 연재 순서이다. / 필자 주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Ⅰ. 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
 1. 북-미대결의 산물, 북핵
 2.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한 정확한 이해
 3.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서 갖는 북핵의 의미

Ⅱ.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 성공의 조건
 1. DJ·참여정부에서의 경험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얻는 교훈
 2.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들
 3.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분석과 대안

Ⅲ. 담대한 제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하여

 

곧 10일 연휴의 한가위이다. 풍성한 계절이고 추억과 덕담이 오가는 명절이어야 하겠지만, 정세는 영 그러하질 못하다. 지향은 촛불정부이나 민주정부 3기에 불과하고, 옹졸한 문재인 정부 땜에 10일 연휴의 한가위는 그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통일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영유아와 임산부 등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나,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워딩되었다면 그런대로 봐줄 만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서 나왔다. 그는 그날-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회의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반적인 여건을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와 조 장관의 발언은 상당한 모순적 결합이다. 참으로 ‘웃고픈’코미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아예 그 말씀-인도적 지원의 경우는 정치·군사적 문제와는 분리대처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는 말씀을 하지 말던지, 그 말씀 한마디로 인해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도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현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보수·수구세력에게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정부임을 고백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게 되어져 버렸다.
 
촛불민심이 있고, 인도주의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국제기구의 보편적 원칙과 가치로 통용되는 규범이 있는데도 뭘 그렇게 좌고우면해야 된다 말인가?
 
옹졸하다 못해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북 인도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 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4차 핵실험 이후에는 '지원 규모와 시기 등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 나간다'는 단서를 달아 지원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와 너무나 그렇게 닮아있다. 누가? ‘그’문재인 정부가.    

해서 정권교체 5개월을 넘긴 지금,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필자의 감정은 한마디로 YS정부 때와 같은 데자-뷰(deja vu)이다. 필자만 그러한가?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못하다”고 호기를 부렸던 YS 정부는 정권 내내 남북관계가 최악이었다. 아마도 YS의 머릿속에는 ‘나 문민대통령이야. 평생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해왔어. 그런 정부의 수장인 내가 남북문제 하나 못 풀 것 같아’그런 감정이 분명 있었으랴.
 
그리고 그 데자-뷰는 ‘나 JI(재인, 영어 이니셜)야. 해병대 출신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정부에다 70%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런 정부의 수장인 내가 북한이 하자는 대로 질질 끌려 다녀? 그렇게는 못해’그런 오기와 자만을 갖고 있다면 촛불민심은 매우 불행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깊은 여운으로는 ‘아, JI여!’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과도 똑같다.

실제 촛불민심은 이미 남북·북핵문제와 관련해서 만큼은 ‘이러려고 정권 교체했나?’라는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 엄중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작금의 남북·북핵문제에 대해 어느 한 친문 의원은 다음과 같은 영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주1) 어느 신문기사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이 ‘기는 것뿐 아니라,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야’”하는 것은 2-3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라고.
 
백번 양보해서 정말 그렇게라도-2ܩ수 내다보는 지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영 다른 기억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파병 결정으로 인해 민주·시민사회와는 결별했고, 그 결과 이후 노무현 정부의 추동력은 상당히 붕괴되어졌던 기억이 그것이다. 이 또한 데자-뷰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현 정부도 그 의원도 심각한 인식적 오류에 빠져있다. 이유는 그가 기억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시기 이라크 파병과 그 대가로 북·미관계 호전과 10.4선언이 가능했다는 논리적 인식에 바탕하고 있었을 텐데 그 결론을 수용하더라도-실제 이라크 파병과 북·미관계 호전 및 10.4선언이 가능했다는 것과의 상관성이 있는지는 없는지는 바라보는 시각마다 다 달라 그 시각차를 논의로 하더라도-이라크파병은 어디까지나 ‘제3자적’관점이다. 반면, 지금의 북핵문제는 우리-대한민국 스스로가 주체적 관점에 서야하고, 𔃱인칭’적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 아주 복잡한 사안이다. 이른바 ‘당사자의 원칙’이 그래서 성립하고 현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즉, 그 대상이 제3자적 관점의 이라크가 아니라 ‘우리’와 직결된 북한이라는 것이고, 그리고 그 대상으로 인해 발생한 북핵문제는 한반도(남과 북)와 미국의 문제로 연결되어져 그 해결주체 또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로 성립하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 ‘우리’의 또 다른 주체인 북한이 그렇게-“기는 것뿐 아니라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야”하는 행위로 인해 ‘우리(여기서 말하고 있는 우리는 ’대한민국‘을 일컬음)’와의 적대관계가 더 심화되고, 신뢰관계가 무너진다면 그 전략은 현 정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헛다리’짚은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좋은 방략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라크파병은 파병으로 끝나면 되는 것이지만(단순화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북핵해법과 관련하여 발언한 그 의원의 심오한(?) 복선은 의도한 바와는 달리 예속적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나타내어준 것일 수밖에 없고, 현 정부가 친미·예속적 정부형태로 함몰되어가고 있음을 숨기기기 위한 가련한 몸짓(변명)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해서 그 의원은 국민들을 향해 현 정부를 믿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촛불민의를 배반해가려 하는 현 정부를 향해 촛불민의에 편승하라고 충언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맞는 것이 된다.   

상황의 엄중함은 또 있다. 10월 현재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약 60-70% 내외이다. 그러나 남북·북핵문제만 놓고 본 기고 글을 잘 이해했다면 거의 F(에프)학점 정도의 수준에 불과함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론의 함정과 사각지대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보지 못하고 현 정부가 그 여론에 취해 ‘이 정도 지지율이면 우리 잘하고 있는 거야’이렇게 인식한다면 너무나도 큰 인식착오가 됨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론이 민심을 반영하는 것도 맞지만 여론 그 자체가 민심일 수는 없고, 더 나아간다면 민심의 전부일 수만은 없어서 그렇다. 해서 그 여론에 중독되면 민심과 정의, 역사의 시간에서 간과되어져서는 안 되는 그 ‘어떤’한 요인, 즉 진실을 발견할 수 없게 되고 그러한 진실을 발견하게 되지 못하면 그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성공하는 정권이 되기는 힘들어서 그렇다. 이른바 댐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이해하면 위 문제-여론 70%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성격요인을 결정적으로 짓는 그 요인에 대해 해결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만약 그 능력이 결여되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의 발생일 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 대한 성패여부가 남북관계에 있음을 모르는 무능한 정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난 지금 ‘바보야. 문제는 남북관계이잖아!’이렇게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그 어느 의원의 ‘잘못된 사랑’처럼 “기는 것뿐 아니라,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야”라며 현 정부를 믿어 달라고만 하는 엉뚱한 처방을 하고 있으니 그 어찌 암울하고 참담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례해서 그 어느 누구도-촛불민심은 동의하고 있지 않는데 유독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참으로 희한하게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관을 극찬하고 나섰는데 이 또한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똑같다. “그래도 취임 후 거의 처음으로 국가 안보 수호자와 군 통수권자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조선일보』, 2017.09.06.)
 
조선일보도 여론의 일부이고, 민심이 반영된 것이니 조선일보로부터 칭찬받는 것이 뭐 어때?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하면 참으로 적반하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끼워진 단추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조기 방미도 심각한 결산서가 요구된다. 시기의 문제, 내용의 문제 등에서 결손 투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중심에 사드 받고, 운전자론 양해가 있다. 사드로 중국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운전자론을 확약 받았으니 그렇게라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실상은 부도어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한·미동맹에로의 포박, 북핵인식에 대한 오류, 가능하지도 않는 제재와 대화의 양립, 분단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부족 등이 맞물리면서 아직까지 운전대를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증거 한다.
 
그리고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될지 아니면 일시적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현 정부가 북핵에 대한 본질-북·미의 적대관계가 기본축이라면 남·북관계는 보조축으로 작용하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그 해결책이 북핵(북-미문제)을 민족문제(남-북문제)에다 연계하는 전략적 오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오판은 남북문제 해결마저 촛불정부답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해서 필자는 그 어느 의원-“기는 것뿐 아니라,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야”하는 것과는 달리 다음과 같은 상상력을 가져본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묻지마’식 반대만을 하는 보수·극우세력과는 달리, 무조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본인이 익히 알고 있는 데로 대통령님이 천성적으로 갖고 계시는 ‘낮은 곳을 향하는 당신의 곧고 따스한 성품’은 절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지도 받을 일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국내정치는 ABP(Anything But Park: 박근혜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로만 하면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는, 그래서 어지간히 못하지만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된다(실제 지금도 그 기대에 부응해 잘 해내고 계신다. 70% 내외의 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4䞏가 미완의 장면 정부를 등장시켰듯이 문재인 정부 또한 혁명정부가 아니고, 촛불과 민주당 정권이 불완전하게 동거하는 동거정권임으로 인해 그 한계가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현 정부는 촛불정신에 온전히 담겨져 있는 ‘완전한’적폐청산 및 예속적 대미관계의 극복과 ‘우리 민족끼리’라는 공조이념에 토대한 남북관계가 진전되어가야 하는 민족적이고도 역사적인 책무가 있는 그런 정부임만은 분명하다. 즉, 문재인 정부가 네이밍만으로 존재하는 그런 촛불정부가 아니라 실제 촛불민심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그런 정부임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하겠다.”

그러나 실재에 있어서는 위 바람과는 달리 취임 100일을 지나면서 이미 많은 분들이 “새 정부가 판세를 잘못 읽은 것 같다”고 우려했고, 10월 현재 그 우려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앞서 열거했듯이 예속적인 한·미동맹의 정상화와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해결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것이 없게 되어있고, ‘담대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줄은 아나 노신과 같은 지혜와 용기가 한없이 모자라서 그렇다. 
 
그 길-한·미동맹의 정상화와 분단극복의 길, 그 자체가 종북몰이와 분단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드러난’여론에만 의존해서 갈 수만은 없는 그런 국정영역임을 안다면 오히려 노신과 같이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된다”처럼 대통령님 당신이 촛불민심을 믿고 길을 내어가는, 그렇게 당신이 선두에 서서 그 길을 열어내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해야 하는 그런 영역임에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표상과 기개가 보이지 않음을 질타한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반민특위 해체와 함께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 반공국가의 등장은 작금의 종북 프레임에다 혈맹보다 더 한 존재로 작동되는 ‘묻지마식’한미동맹, 체제경쟁과 우월적 신화, 핵문제에 대한 민족적 관점의 결여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당히 우향우적인 생각에 매몰되도록 강제되어 왔고, 그러다보니 국민들의 생각이 상당히 보수화되어 있는 것도 또한 현실인 상황에서 국가조직의 그 최상위에 있는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 그 한마디, 그 한걸음이 다 미증유 개척의 길이요, 분단극복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의 정상화와 분단극복이라는 과제가 민족적 관점과 역사의 영역에서 다뤄질 사초이자 국가운명 문제와 직결되는 그런 천금 같은 무게가 있다 하겠거늘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당연히 국민들에게 실망감이 될 수밖에 없다 하겠다. 

해서 요청 드린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그 첫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우시라!
 
방향은 본 기고 글 제 1편, ‘I. 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에서 확인받듯이 북핵의 성격을 다시 재정립하고, 어떻게? 정치·군사적 의미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을 넘어 북한의 경제와 인민생활 향상, 수령의 위대성 증명과 같은 매우 중층적이고 복잡한 인식·실천체계의 영역으로 말이다.(주2)
 
다름 아닌 ‘비핵화’라는 수렁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하고, 기존의 북핵인식과 해법으로는 풀 수 없음이 여러 주장들과 객관적 실체로서 논증되어지고, 논증되어져 가고 있다면 아프겠지만 용기를 내어 다른 해법을 찾아야한다.  
 
즉, 경제와 안보의 등가교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다는 확인과, 제재와 대화가 양립될 수 없다는 사실, 민족문제 해결과제를 북핵과 연계해서는 ‘운전자’론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제하에 다시 한 번 𔃱. 북-미대결의 산물, 북핵’의 머리글에서 밝혔던 그 문장을 조금 변용하여 문재인 정부에 충언하고,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답게 남북문제, 북핵문제, 미국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그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상태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둘째, 제아무리 고통스럽다하더라도 비핵화 목표를 ‘절대화’하지 말고, 성찰적 고찰을 통해 ‘새로운 목표’창출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주길 바란다. 셋째는 자꾸만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레드라인’을 언급할 것이 아니라, 그 전제조건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겠다는 인식의 전환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1. 취임 100일, 가상으로 써 보는 편지: 나, ‘문재인’의 고백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입니다.
 
벌써 촛불민의에 바탕 한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계기로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로서 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보고 드리고, 양해 구할까 합니다.
 
특히, 남북·핵문제에 대한 저의 정책적 잘못과 과오에는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존하는 한 ‘수단’으로서의 한미동맹과 ‘목적’으로서의 평화체제가 있게끔 해야 했으나 둘의 관계가 한미동맹에 포박돼 뒤바뀌게 하였습니다. 

그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이 편지를 써 봅니다.   
 
취임 100일을 지나오는 과정에 8·15광복절을 맞이하였습니다. 한민족에게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의 날이기도 합니다. 국가적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해방’과 ‘예속’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각인된 영광스럽고도 치욕스러운 날이자 선열들의 피 흘림과는 맞바꾼 ‘독립’이라는 자랑스러움도, 패전국도 아닌데 외세에 의한 ‘분단’이라는 아픔이 교차하는 낙인으로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렇게-해방과 독립의 뒤편에서 예속과 분단이라는 암울한 현실이 아로새겨진 미완된 국가, 대한민국이 등장하였습니다.

골백번을 되새겨보아도 위 결론은 뒤바뀔 수가 없습니다.
 
분명 많은 선열들의 피 흘림과 민중들의 봉기가 지속되었음은 분명하지만 함께 지정학적 가치와 약한 국력은 외세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가련한 신세였고, 이후 촛불시민혁명이 있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치’와 그 정치로 인해 ‘주인 되지’못한 국민들의 비자각성은 ‘반공’과 ‘종북’이라는 이념적 악마를 허용하였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 결과는 분단체제 72년 지속이라는 ‘리바이어던’국가체제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72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분단극복의 무거운 책무는 촛불혁명과 함께 제19대 대통령인 저에게 숙명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열들과 조국이라는 어머님 품으로부터는 외세로부터 ‘주어진’해방이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에서의 확인은 ‘정상적으로’작동되는 민주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을 반석같이 굳건히 하고, 헌법적 책무로부터는 평화적 통일을 이뤄내야 하는 제19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질 못하였습니다.
 
준비기간의 부족과 취임 3개월이라는 기간의 짧음으로 변명하고 싶은 유혹은 강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기에 있지 아니함을 저는 잘 압니다. 근본적 성찰과 제 스스로의 용기에 대해 자문하고, 국민여러분께 답을 구해야 하는 심려(深慮)의 시간이어서 더더욱 그렀습니다. 
 
국정과제 100대 목표가 과연 촛불시민혁명의 ‘위대성’에 걸맞고, 제 스스로 다짐했던 재조산하(再造山河)와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호시우행(虎視牛行) 정신을 다 담아낸 국가발전전략인지, 아니면 이행전략의 미흡은 물론이고 욕 들어 먹지 않을 정도의 ‘할 수 있는 것’만 이것저것 짜깁기한 성과지표전략인지 깊이 있게 짚어봐야 하겠습니다.
 
인사도 정책경험이 중요한 자산임에는 분명하나 참여정부 2기에 지나지 않는 우가 없었는지 성찰해내어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정한 인사기준 5대원칙의 붕괴 모두는 다 제 잘못입니다. 더해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장영실의 등용과 같은 신분을 뛰어 넘는 파격인사가 가능했고, 서얼출신의 등용과 조광조, 허균, 정약용과 같은 시대와 불협했던 진보적 사대부들을 등용한 임금도 있었는데 왜 나는 그러하지 못했는지를 반문도 해야 하겠습니다.
 
또 70% 여론 지지율에 포박돼 진정으로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탄생한 정부임을 자각하지 못한 과오도 있습니다. 더불어 그 높이에서 정책을 추진할 구상을 했어야 하나 손쉽게 여소야대라는 국회의 장벽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천금 같은 준엄한 명령이었던 적폐청산에 적신호가 켜지고, 촛불민의를 믿고 시대적 과제를 앞세워 용기 있게 정책적 돌파를 시도했어야 했건만 양질의 일자리정책도, 복지도 증세 없는 복지에 갇혀 근본적 대수술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껏해야 청와대 앞 개방과 기간 억울한 삶과 국가적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감성’대통령밖에 되지 못한 ‘못난’대통령이 아닌지 반문도 필요해진 것 같습니다.
 
보다 더 큰 과오는 스스로를 자주독립국가의 대통령답지 못한 결과 한미동맹을 중시한다는 것과 그 본질에 있어 불평등하고 예속적인 성격이 가미된 한미동맹을 맹신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분명 있을진대 그 차이를 애써 외면한 잘못은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이 중요할수록 정상적인 한미동맹으로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야 했고, 그 바탕위에서 분단체제 극복 로드맵과 평화적 통일구현이라는 헌법적 의무를 다해야 했으나 작금의 상황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운전대만 잡은 꼴이 되어 버렸고, 남북·북핵문제는 정권교체에 담긴 그 의미를 상실한 채 한미동맹에 포박돼 오히려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휘감싸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 국무회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과를 보고할 때 고백하는 무책임과 나약함도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와 같이 닮아가는 저 자신의 발견이기도 하고, 제 스스로도 참으로 못났음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비례해서 불과 3개월 만에 ‘뜻을 갖고 있는’많은 분들과 시민사회진영에서는 벌써부터 “이러려고 정권교체 했나!”하는 자조 섞인 한탄들이 섞여 나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70% 여론에 포박돼 ‘할 수 있는 것만 하는’용기 없는 대통령이자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역주행하는 대통령이 되어 버렸습니다.(주3) 참으로 회한과 성찰이 필요한 취임 100일이었습니다.
 
2. 대통령과 그 정부의 ‘잘못된’ 인식들

일상에도 금기어가 있듯이 외교에서도 표현해서는 안 되는 외교적 수사가 있다. 예를 들면 000의 푸들이다’, ‘아베와 같다’등이 그에 해당된다 하겠다.
 
왜냐하면 그러한 표현들은 상대방에게 대단이 굴욕적이고 모욕감을 주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정부인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러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푸들’(김종대 의원에 의한 표현)과 ‘아베와 같다’(정세현 전 장관에 의한 비유)가 그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하고, 팩트적으로도 ‘제재’라는 공감 하에  맹목적으로 무한 질주되는 미국과의 공조, ‘양립할 수 없는’대북 제재와 대화 병행 기조,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무기이자 미-일의 하청동맹화가 전제된 사드 배치, 대북 특사 불(不)파견, 송영무와 문정인의 갈등 및 국제파 안보실의 무능 등 그 수많은 이유들이 있고, 관통하는 핵심적 이유가 총체적으로 실패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9년간 대북 압박정책을 포기하고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여 ‘조건 없이’대북 포용정책을 시행해야하나 그렇지 못한 문재인 정부가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사드 추가반입은 충격적”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성역으로만 존재했던 한미동맹에 대해 이제야 좀 촛불정부답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가 그것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북한의 도발과 북핵 해법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요구에는 속수무책이었고, 사드 대처는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줬고(‘예속적’한미동맹), 미국과 밀착해 한국을 움직이려는 일본에 대해서는 미일동맹의 하청화를 수용, 북한과의 관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고, 중국과의 관계는 기대에서 실망으로 바꿔가는 상황과 비례하였다.

더군다나 ‘제재의 딜레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모습에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문재인 정부 또한 YS정부와 같은 혹독한 평가(역사적이고도 민족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정권임이 만천하에 다 드러났다.    

한편, 청와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일본 상공을 통과한 ‘화성-12’형 탄도미사일과 관련하여 지난 8월 3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극한까지 높여’나가자는데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고, 그러면서 박수현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압력을 극한까지 높여 북한이 스스로 먼저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라는 부연설명을 남겼다. 또 9월 23일 밤, 괌에서 출격한 B-1B 폭격기(일명 랜서) 2대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 가장 근접한 지역까지 비행하는 ‘무력시위’가 용인되어졌다. 이것이 한·미동맹 공조의 결과든, 코리아 패싱의 결과든 둘 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매 마찬가지이다. 먼저 만약 공조의 결과라면 (대화는 없고) 제재 올인 및 한반도의 평화적 안정관리를 현 정부가 포기해서 그렇고, 다음으로 패싱의 결과-단순 통보였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미국에 맡겨지게 되어서 더더욱 그렇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해서 묻는다. 정말 대통령님처럼 대북압박을 극강의 수준에서 하면 북한이 대화의 문을 두들일까? 필자는 제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것 같고, 그렇지 않을 상황에 대해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제재를 하고 있으니 오판(인식)도 이런 오판이 없다고 봐진다. 이 기고 글 제1부 ‘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에서 확인받듯이 북한은 자신의 목적-북·미 대결 승리, 핵·경제 병진노선 확립, 수령의 위대성 입증이 이뤄졌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핵보유 지위국 획득을 향한 여정이 계속될 것임은 이론(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이미 증명되는 문제인데도 왜 그렇게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고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계속 그런 스탠스만을 취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체제우월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참으로 포비아적 강박증에 다름 아니다. 북한에 굴복할 수 없다는, 마치 오기와 같다. 한 국가의 국정책임자가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마저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와 관련,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안 되고 냉정하게 긴장 고조 조치를 피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 판에 말이다.(『YTN』, 2017.09.06.)
 
하여 다음과 같은 교정문은 꼭 남겨 놓아야 할 것 같다. 푸틴이 ‘극강의 제재’얘기를 해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감정에 휩싸여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면 안 되고 냉정하게 긴장 고조 조치를 피해야 한다"는 워딩(wording). 즉, 두 통치권자가 바꿔 말을 했어야 했다는 기록으로 말이다.  
 
2-1. 미국에 대한 ‘잘못된’인식과 한미동맹에로의 포박

첫 방미(2017.06.28.~07.01) 중 이뤄진 미 하원 원내지도부와의 간담회 발언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동맹국가로서 그동안 미국의 지지와 지원에 ‘고맙다’정도의 워딩이면 충분할 것을 “한국은 최근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한-미 동맹이 뿌리내린 민주주의로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미국이 한국에 이식해 준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것”이라는 극사대로 그 예를 다한 것은 제아무리 외교적 언사라 치부하더라도 매우 지나쳤다. 
 
왜냐하면 그런 인식은 제아무리 변명을 해도 미국이 해방 이후 한국의 반공 독재정권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세력이라는 점,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런 독재와 제국주의 예속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쟁취해온 것이라는 점의 부정이 반영되어 있어서 그렇다(미처 그런 인식을 하지 못했다면 본인 스스로가 1970년대 유신반대와 1987년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동시적으로 자신의 정권적 토대가 촛불민심에 있으면서도 그 토대를 형성해준 ‘위대한’촛불항쟁을 스스로 부정한 꼴과도 같아서 더더욱 그렇고, 더 나아간다면 일제식민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역사와 민족적 자존심마저도 외면되는 것과 똑같다.

참고로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우방의 역할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하겠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위에서 잠깐 약했지만 해방 직후 친일분자를 비호하여 그들의 정권을 세우고, 혁명과 항쟁으로 일궈낸 민주주의를 5.16쿠데타, 광주학살, 친미수구보수 대연합정권을 통해 뒤집어엎었던 전 과정의 배후에도 미국의 힘이 작용했고, 더 비약을 시켜 IMF 외환위기를 더 큰 위기로 키워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 사회양극화 등 오늘날 헬조선 사회로 만들어낸 요인에도 역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있었다고 한다면, 또 최근의 사드의 성주 배치 역시 동북아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완성함으로써 미 본토의 방어력을 높이고, 중국, 러시아, 북에 대한 핵선제 공격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미국 군사전략의 산물일 뿐이라고 진단한다면, 더해서 21세기 민주주의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아랑곳도 하지 않고 “한미 FTA 재협상”으로 협박하고, “거지같다”고 함부로 대하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압력을 넣어 북핵문제를 민족대결의 돌격대로 몰아대는 것 역시 미국이라고 한다면  전쟁경험이 있고 그 전쟁은 곧 제3차 세계대전일 수밖에 없는, 더 나아가서는 핵전쟁일 수밖에 없는 전쟁임을 알기에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만큼은 전쟁은 안 된다”는 언급을 했는데도 ‘선제공격’이니 ‘김정은 참수작전’이니 ‘화염과 분노’니 ‘북한 완전한 파괴’니 하면서 자국-미국이 전쟁을 선택하면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그런 미국이라면, 그 미국 하에서 우리-대한민국이 제아무리 미국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고 싶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역할을 대북압력의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텐데 도대체 이때의 이 결론은 무엇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핵 문제만 하더라도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핵보유를 통해 기어이 미국과 ‘끝장’을 내려하고, 반면 미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힘의 과시와 ‘말 전쟁’을 통해 장기화를 추구하려 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분명하고도 명백하다.
 
북·미대결 장기화 과정에서 ‘사실상은’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명분으로 북핵을 활용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완결하여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완성(=한미동맹은 ‘사실상의’미일동맹의 하청화)하려 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와 긴장고조는 필연이 되어가고 있다. 비례해서 군사적 억지력의 요구 목소리는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이를 통해 미국은 엄청난 군사적·경제적 이익을 실현해 가려는 것이 그 목적과 맞아 떨어진다. 여기에다 사드라는 무기로 중국을 압박함과 동시에 대중국 무역전쟁을 강화하고, 동북아에서 기득권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노림수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는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여 미국의 장단놀음에 허우적거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세현 전 장관의 목소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YS정부에서 배울 점 한 가지는 “비서관으로 있었으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좀 특이한 분이라서 미국의 그런 요구를 잘 안 들었어요.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목소리를 낸다. 그 당시에 대통령 참모들은 말하자면 미국과 어느 정도 엇박자를 내더라도 우리의 국가 목표, 우리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우리 길을 가야 된다고 하는 그런 권유를 대통령한테 용감하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봐요”(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CBS 라디오, 2017.09.11.). 이 확인은 비록 YS 당시 남북관계가 완전파탄 났지만, 그래도 민족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는 동맹은 없다는 확고한 신념과 용기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YS도 이러했는데, 촛불민심을 등에 업은 문재인 정부가 마치 트럼프의 무슨 말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모양새을 취하고, 그 모양새에 대해 한미공조를 강화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거나 그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미국 가랑이 밑을 기는 것’, ‘미국 짖으라는 대로 짖는 것’…왜 저런 행보 할까 생각해 달라”며 그것에 대해 상당히 깊은 뜻이 있다 하는 식으로 문 대통령의 인식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은 정말이지 해괴한 논리이자 변명 그 이상 이하도 될 수 없다.

‘장진호 전투’에 대한 이해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전투가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사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아픈 대목일 수는 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 전쟁의 성격이 미국의 야만성과 침략성을 그 본질로 해석되어져야만 하는 대단한 ‘불의’의 전투여서 그렇다. 
 
즉, 장진호 전투가 갖는 본질이 미군의 UN의 위반으로 생긴 전투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당시 UN의 결의를 보면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평화와 안전의 회복을 지원하라는 것이었지 38선을 넘어 북한을 정복하고 그 정복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고, 또 그 소문의 공포로 인해 생겨나지도 않아도 될 피난민 10만이 발생하였는데도 이를 개인사적으로 추억되어야 될 ‘아름다움’과 미국에 대한 고마움으로 포장 및 미화되는 그런 ‘낭만적인’전투가 결코 될 수 없어서 그렇다.

또 다른 심각한 예는 『중앙일보』(2017.07.21.)에 실린 한 기사이다. 기사 제목은 “두 달째 주중대사 내정자 노영민 ‘주미대사를 못 정하니 … ’”였고, 해석하면 노영민 주중대사 내정자가 2달 전에 이미 내정되었으나 미국대사를 정하지 못해 현재까지 부임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내용이 그 골격이다. 또한 노영민은 그 기사에서 “두 달 전에 이미 본인으로 주중대사로 내정되어 있지만, 아직 미국대사가 제1호로 부임하지 못해서 자신도 아직 부임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본인의 심경도 토로하였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이 자국의 대사를 임명(‘아그레망’의 취지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별개로)하면서 동맹국가 미국대사를 내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대사가 제1호 부임대사가 될 수 없다? 당연히 한미동맹에 포박된 정권이라는 말이 안 나오게 생겼으며 ‘사대도 이런 사대가 없다’는 냉소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하겠다.

미국 추종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록 형용모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사학적으로는 제법 멋진 ‘제재와 대화’라는 투 트랙의 대북접근법이 실제에 있어서는 북한으로부터 시알도 먹히지 않는 제재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변질되었고, 그런데도 여전히 현 정부는 ‘제재를 통해 대화를 유도’한다는 희망적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양상이다.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가는데도 말이다.   
 
그 딴 방향은 제재를 통해 전쟁예방과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유도해내겠다는 목적은 오히려 전쟁으로 현실화될 위기에 처해있고, 상대방-북한은 떡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스스로 미국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수용(한국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고, 또 한국 대통령 스스로가 미국보다 먼저 레드라인을 언급한 것도 처음이다)하여 더 남북관계가 긴장되게 만들고, 동시에 미국에 요구에 저항 한번 없이 도발에는 더욱더 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잘못된’정책판단과 함께, 더 이상 평화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한반도에 되레 화염의 불길을 불려 들이는 악수를 일컫는다. 
 
나아가 전쟁이 나더라도 한반도에서 나고, 희생자가 나오더라도 한반도에서 나온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너무나 ‘작은’대통령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매 한가지이다.

2-2. 민주정부 10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인식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 이것은 비 오는 달밤, 뜨거운 얼음과 같은 표현이다. 압박을 느껴서 대화를 한다? 그것은 레토릭은 가능하지만 정책으로는 있을 수 없다." 이 발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의 작심발언 일부다. 계속해서 뉴스는 정세현 이사장의 발언을 소개하고 있는데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병행은 맞는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으로 세워진 정책기조"는 맞지만, 그 정책기조와 현 정부의 '제재와 대화 병행'은 결도 다르고 정책도 아니라는 것이다. "제재와 대화를 어떻게 병행하느냐. 제재를 가해서 나오면 압박을 느껴서 대화를 한다? 그것은 이뤄질 수 없다. 당나귀를 몰고 가더라도 앞에 당근을 걸고 채찍을 때린다. 당근은 안보여주고 채찍만 있다? 방점을 어디에 찍을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통일뉴스』, 2013.09.07.)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이지만 대북정책은 지난 9년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고, 어쩌다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하고 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현 정부가 촛불민심으로부터 탄핵된 수구·보수세력들의 ‘하이재킹 작전(보수 볼모화)’에는 기대고 겁을 먹으면서도 진작, 자신들의 뒤에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촛불민심과 역사적 정의는 보지 못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다.
 
거기다가 트럼프의 유엔 ‘막말’연설에 전폭적인 지지라든지, ‘극강의 제재’운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른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과거 자신의 발언과는 어떻게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잊어버려져 있는 거 같아 매우 안타깝다 하겠다. 
 
다름 아닌 문재인 대통령님이 후보시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갈 수도 있다고 했고, 남북관계를 중심축에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밖에 되지 못했는지를 자신과 참모들, 그리고 각료들은 정말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제재에 올인 하고 있는 모습과 관련하여서는 일본의 『조선신보』 논평조차 “북남관계를 파탄시킨 그전 정권보다 나은 게 뭔데요?”라고 조롱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우리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의 주체임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확인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우리-대한민국은 한발 빠져 있거나, 그것이 영 성가시다면 북한에게만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문을 두드려야 그렇게 압박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똑같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북한 핵문제를 너무 정치·군사적으로만 다루지 말고 그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여야만 그 등가성이 맞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도 이는 향후의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훨씬 도움 되는 접근법이다. 해서 지금처럼 자기변명과 오만으로 국민들에게 현 정부를 믿어주고 ‘인내’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나더라도 한반도에서 죽는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 있는 미국을 향해 ‘전쟁은 결단코 안 되며 군사적 옵션도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매 마찬가지이고,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임을 미국에게 강하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푸틴 앞에서는 근거도 없는 정보를 가지고 ‘원유공급 중단’을 말할 용기가 있었다면 미국에게도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하인리히의 경고(주4) 관점에서 보면 지금 그 경고등은 수없이 많이 켜져 있다. 
 
우선은 지난 9월 21일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의 시장경제를 확산시키고 북한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아주 유력한 방법으로 본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은 "과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이 북한 내 자본주의 경제를 확산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런 노력과 함께 북한 내부 인권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도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고 까지 밝혔다는 것이다(『연합뉴스』, 2017.08.23.).
 
위 뉴스보도가 사실이라면 대통령님의 인식에는 당신 스스로가 선언한 3불 선언과는 상당한 모순관계가 투영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 방문과 유엔연설에서 북한의 체제붕괴와 흡수통합은 절대 추구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나 민간교류가 마치 북한의 시장경제 확산을 돕고, 그 결과가 북한을 변화시킬 유력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에서 북한을 향해 체제를 보장할 테니 대화에 나서라고 한 발언도 예외이지 못하다. 우리 입장에서야 폼이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명색이 엄연한 체제를 가진 독립 국가를 상대로 그것도 유엔가입국을 상대로 상대방 국가에 대해 ‘체제’운운한다는 것은 그 해당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우리가 당신들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데 봐줄 테니 협상테이블로 나와’와 같이 해석될 수밖에 없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어서 그렇다. ‘바보’국가가 아니라면 그런 소리를 듣고 대화와 협상에 나올 국가는 없다 하겠다. 지극히 불필요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핵실험 유예와 ICBM 등 도발중단을 약속하면 대화에 나선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연상케 한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더 결과적으로는 DJ·노무현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식에서조차 한 발짝도 못나간 정권과 똑같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과-그렇게 보수정권과 같은 대북정책을 취한 결과-는 참으로 암담하다. 지금의 현 정부도 전임 보수정권과 똑같이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어서 그렇다. 다시 말해 제재일변도의 접근법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북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질량적으로 정밀화·현대화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현 정부가 왜 그 교훈을 반면교사하지 못하고, 지난 10년의 보수정권과 똑같이 행세한단 말인가? 말 수위를 높인다고 더 강한 대응도 아니며 제재를 강화한다하여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과 교훈이었는데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9·19와 2·13합의정신 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즉, 9·19와 2·13합의는 부시 정권 때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의 정신에 토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정확한(CC)’에 입각한 북핵 해결 해법정신인데 문 대통령은 미 첫 방문에서 다시 이 CVID를 부활시켜 북핵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 장본인-그런 정부가 되어버렸다.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다. 본인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것도 큰일지만, 만에 하나 참모들의 견해를 수용한 것이라면 그러한 참모들이 있는 한 절대 북핵문제를 풀 수가 없는 이유가 발견된다.
 
CVID로 인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던 북핵문제가 그나마 CC에 의해 겨우 9·19와 2·13합의를 이뤄냈는데 그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대통령과 참모들이라면, 그러면서도 6자회담이 북핵 해결의 유일 해법인양 떠드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고 무지의 소치이다.  
 
그렇게 해법의 진화는 못 내올망정 다시 10여년 전으로 후퇴시켜버리는 우를 범해놓고도 그 해법이 마치 당당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거야말로 현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심히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고, 10여년 전보다도 더 후퇴된 인식을 가진 정부에게서 새로운 북핵 해법과 변화된 핵문제 본질을 보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하등 다르지 않아서 더더욱 걱정되는 대목이다.  

2-3. 북핵에 대한 잘못된 이해 

(1) 북핵문제 발생에 대한 인식문제

왜 핵은 5개국만 가져야 하는가? 이 근원적 물음을 논외로 치더라도 세계질서의 규범적 기준과 원칙을 왜 미국만이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현시점(2017년 10월 현재)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만이 핵을 가질 수 있고, 그 외의 국가들이 그러한 무기를 소유하면 불량국가가 되고, 악의 축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국제적으로 수용되는 데는 미국이 그 중심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면,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또 핵을 가져도 불량국가나 악의 축에 해당되지 않는데 이 또한 미국이 용납해줘서 그렇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이유는 다 미국에 순응하는 국가라서 그렇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에 순응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미국으로부터 불량국가, 악의 축으로 매도될 수밖에.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북핵 문제가 미국 때문에 발생했다면 우린 이를 어떻게 수용해내어야 할까?
 
현대전에서 방어·공격훈련의 개념이 무의미하다면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한미동맹과 핵우산 아래에 보호되고, 국방비 예산도 북한보다 몇 십 배 더 많이 편성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례적으로 2번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는 그런 국가인 반면, 북한은 악의 축·불량국가로 낙인되고, 국방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력도 엄청 열세인데다 체제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면(易地思之)-북한이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와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가, 아니면 체제를 존속시키고자 그러한 위협 아래 대응을 하는 것이 더 정상적인가?
 
해서 북한의 대응은 일면 타당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북핵으로 불거졌을 뿐이다. 인과관계로만 따지자면 발생 원인이 미국에게 있으니 그 모든 잘못이 북한에게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북핵 문제가 등장한 이래로 줄곧 북한은 너무나도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 북핵이고, 자신들의 그 핵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파탄내기 위한 핵과 전략적 무기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강변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 무기는 북한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을 향한 무기라기보다는 미국을 향한 전략적 무기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좀 더 비유적으로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의 방어와 공격하기 위해 핵과 ICBM을 가졌고, 파키스탄이 인도를 공격하고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핵이었듯이 북한도 그렇게 미국과의 상대를 위해 핵과 전략적 무기를 보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다만, 여기서 우리-대한민국은 왜 북한과 같이 그렇게 할 수 없는가 하면 미국에 의한 핵우산과 한미동맹, NPT체제에 종속되어 있어 그러한 핵무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대한민국이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드시 미국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하겠다. 즉, 상대성을 포기하고 북한이 무조건적으로 핵과 ICBM(급) 전략자산을 가지면 안 된다는 미국추종의 논리에 함몰될 이유도 없고, 또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북한을 악의 축·불량국가로 낙인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2) 문재인 대통령, 북핵 해결 목표와 접근법 과연 타당한가?

북한이 핵을 보유를 보유했다는 것은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리고 또 공통된 견해 중의 하나가 그렇게 북한이 핵을 가졌다면 북핵 해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견해도 제출되고 있다. 그 결론에 ‘비핵화에서 비확산(핵동결)’이 있다. 다시 말해 북핵에 대해 인정이 되면 그 이후의 해법은 북핵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통제, 관리하는 목표로 정책입안이 리셋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라는 투-트랙에 숨어 사실상의 ‘극강제재’론만을 펼치고 있는데, 그 문제가 심히 만만치 않다.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는 여전히 “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하면서 대화의 전제조건을 붙였다. 워딩이 바뀐 것뿐이지 이는 지난 정권-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선비핵화·후대화’와 전혀 다르지 않음이 누누이 밝혀졌다. 굳이 다르다면 대화의 전제조건을 완화된 것 정도이다. 해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는 지난 정권과 마찬가지로 자신들과 대화하지 말자는 것과 똑같이 인식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재-도발-제재-도발-제재-도발 …’의 되돌이표 패턴에 확인받는 것은 북한이 핵과 ICBM 등 전략자산의 보유였다. 국제사회가 제재할 때마다 언제나 ‘사상 최강의 제재’라고 했지만 결과는 항상 제재에 굴복하지 않는 북한이었다. 그렇다면 제재는 실패한 것이 맞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현 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실패가 확인되어진 이상 빨리 전략재검토를 해야 하고, 그냥 그렇게 관성적으로 제재만 믿고 밀고 나가는 것은 옳지 않는 것이다.
 
그럼 정상적인 것은? 다름 아닌 대화와 협상이다. (‘빙산의 일각’논리로 보자면) 수면에 가려있는 99%의 사실을 보지 못하고, 수면위에 떠 있는 1%의 현상만을 사실로 인정하여 제재 게이지를 계속하여 높여 나간 결과 그 종착지가 북한의 핵보유밖에 없었다면 현 정부는 99%의 수면에 가려있는 본질과 사실을 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상만 보고 정책을 지속시킨다? 현상과 본질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이고, 철학적으로는 현상이 본질을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반드시 그 현상이 본질을 100% 다 정직하게 다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기에 ‘왜곡된’현상을 잘 읽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인식의 영역인데 그 이해가 바로 서있지 않으니 그 ‘왜곡된’현상이 전부인양 해석해 제재를 통해 북한 핵이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에 빠지게 되고, 미국식 이해관계에 함몰되는 것이다. 
 
그럼 본질은? (북핵과 관련하여) 지금은 워낙 분노와 제재 게이지가 높아 당장은 힘들겠지만 일정한 과정을 지나면 반드시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근거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와 미국과 북한은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사회과학적 요인(“북-미대결의 산물, 북핵”, 『통일뉴스』, 2017.08.21. 참조)을 그 본질로 인식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태풍(북미간의 메가톤급 말싸움)이 지나고 난 다음 찾아오는 찬란한 햇빛(북·미간에 찾아올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 등)을 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 때를 대비하여-국면전환을 대비하여 제재국면이라 하더라도 대화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고, ‘압박과 제재’를 외교적으로는 말할 수는 있으나 “지금은 대화할 때 아니다”라고 굳이 문 닫는 표현을 쓸 필요가 절대 없는 것이다.(주5)
 
이 대목에서 우리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과거에는 북한이 주로 대화의 조건을 내걸었으나 북한이 핵을 가진 지금은? 주로 미국과 대한민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을 얘기하고 있다. 완전 역전현상이다. 
 
내세우는 요구조건도 대화를 하려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핵보유 포기 의사를 밝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조건들은 조건으로 내걸 문제가 아니라 대화로 해결 해내어야할 문제들인 것이다.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그 갈등의 요인을 조건으로 내건다? 참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접근법이다. 어쩌다가 한·미가 이렇게까지 몰상식해졌단 말인가?

2-4. 군비경쟁 과연 답인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못물은 이미 터졌다. 해서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우리도-대한민국도 전술핵 배치와 핵무장을 해야 된다는 주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드러난 1%의 사실’이라 할 수 있는 북·미간 대결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이른바 ‘북의 도발’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술핵 배치와 핵무장 주장들이 막 터져 나올 것이어서 그렇다. 이미 그 봇물은 미국과 일부 문재인 참모그룹, 여당과 야당에서 파열되고 있다.
 
허나 미국은 NPT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대한민국에서 전술핵과 핵무장력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은 NPT체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NPT체제로 동북아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면 논리적 인과관계로 보면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포기하면 NPT체제가 유지될 수 없는 거 아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현대판 제국주의이다. 그리고 그 제국주의는 본질이 침략과 약탈을 그 생리로 하고 있고, 전쟁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그런 생리를 갖고 있는 제국주의가 ‘저절로’패권적 지위를 포기한다? 절대 가능하지 않다. 그러는 순간 그 제국주의는 이미 제국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결론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저절로’패권적 지위를 내려놓은 국가는 없었으며 오직 제국주의가 그 어떤 싸움(전쟁)에서 질 때만(패배했을 때만) 패권적 지위는 사멸되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전술핵과 핵무장은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의 범위이다. 그런데도 계속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의도’때문이다. 미국은 전략자산 무기판매와 예속적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 정부와 여당은 안보와 관련해서는 국민들이 보수화되어있다고 보고 그들로부터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야당은 남-남 갈등을 일으켜 청와대와 여당을 흔들어야만 다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모질고 못난 것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행복찾기’에 기여해야 하고, 주권재민을 이뤄내는 도구여야 하는데 실상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이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략적이고 당파적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국내정치적으로만 해석되어질 수만은 없다. 역지사지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제아무리 촛불정부라 우기는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이지만 여전히 국군통수권이 없는 미국의 ‘괴뢰’에 불과하다. 그런 국가가 전술핵과 핵무장력을 갖겠다? 당연히 미국과 짝짝궁하여 자신들을 치겠다?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겠는가? 실제로도 트럼프는 ‘북한 완전 파괴’운운하고,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이 “참수부대 창설”운운하는 상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은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는 고사하고 ‘죽어있는’정전체제 부활이자 ‘사실상’의 전쟁돌입이다. 해서 그 어느 정부도 이 상황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백하다. 군비경쟁은 답이 아닌 것이다.

3. 소결론: 촛불민의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생각해보자. 체제가 불안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이자 핵을 갖고 있지 않을 때의 대북정책과 체제는 안정되고 핵을 보유한 국가를 상대해야 하는 외교가 달라야져 가야하거늘, 그것도 적국이면서 동반자 관계여야 할 특수한 관계의 상대국가에 대한 시각이 10년 전과 동일하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군사·안보주의적 시각(냉전시대의 ‘낡은’인식)과 기능주의적 접근(노무현 시대의 접근방식)에 머물려 가지고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북핵과 남북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북한이 김정일의 시대가 아니라 김정은의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의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정권 때와는 달리-체제유지에 급급하고 고난의 행군시기였던 김정일의 시대와는 달리-체제유지에는 확신이 서고 핵을 보유함으로써 미국과 ‘끝장대결’을 선언할 만큼의 핵 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북한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상황은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 핵 포기를 전제한 평화체제 구축이 이제는 더 이상 입구가 아니라 출구로 되었고, 그 출구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이니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반드시 사전 비핵화가 전제되어야 하니 하는 조건들로 같다 붙이는 것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판’전략적 인내와 하등 다름없고, 시간이 북한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무책임한 처사가 된다. 비례해서 민족과 역사에는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역발상뿐이다. 선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후핵포기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와 핵을 주고받겠다는 10년 전의 기능주의적 접근법도 퇴출되어야 한다. 그 반대 그들-북한이 근본문제라 일컫고 있는 정치·군사문제 우선해결의 원칙하에 교류·협력이라는 옷을 입히는 정책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다시 말해 조건 없는 대화의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서도 ‘올바른 여건’이라는 옵션을 걸어 사실상의 비핵화를 그 조건으로 내세우는 모순적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임정부의 적폐라 할 수 있는 5.24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제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조건 없이 진행해 그 추동력으로 군사분계선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확보, 그 신뢰의 토대 위에서 북핵과 남북관계를 병렬해서 풀어갈 수 있는 그런 담대한 발상전환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촛불정부이고 싶으면 미국에게 당당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먼저, 미국에게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북핵 해결과는 별개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북-미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대안을 내고, 그렇게 설득하여야 한다. 둘째, 미국의 국가적 이익과 대한민국의 국가적 이익파이가 국가적으로는 같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분단국가의 특성에서 파생되어지는 민족적 이익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우리만의 특수성을 미국이 이해하게 만들고, 그것을 지렛대로 하여 미국과 북한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여야 하고 조율해 나가야 한다. 셋째, 한미동맹 관계에 있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무작정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나 당연히’국군통수권이 없는 대한민국이 그 어떤 레토릭을 동원하더라도 미국의 대북제재에 강하게 동의한다는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북한과 미국이 풀 수 있는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풀 수 있게 하고, 남북 간에 풀어가야 할 여러 현안에 대해서는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우화 하나를 소개한다. “아주옛날 짚신 장사하는 아들과 우산 장사하는 아들을 둔 부모가 있었지요. 비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걱정, 햇볕 나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걱정을 하는 그런 부모였지요. 그렇게 항상 근심걱정만 하는 부모가 애처로워 주변사람들이 생각을 바꿔보라고 권하였지요. 어떻게? 비가 오면 우산장사하는 아들이 우산 잘 팔리니 좋을 테고, 햇볕이 나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짚신 잘 팔려서 좋을 것 이라고, 그렇게 마음 바꿔 먹으니 항상 즐겁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지요.”
 
왜 이 글을 쓰면서 이 우화가 생각났을까? 참으로 모를 일이다. (계속)

※ ‘지난 정부의 경험과 교훈’,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들’에 이어 다음번에 실릴 글은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성공의 조건”이라는 큰 글줄기 하의 마지막 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대한 분석과 대안이 될 것입니다. 국정목표 설정 자체가 타당한지,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을 위해서 나서는 과제는 무엇인지 ... 등등이 다뤄질 전망이니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많이 기대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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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를 선의적으로 이해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민주·진보진영으로부터는 실망론이 터져 나오고, 보수로부터는 코리아 패싱 운운하면서 공격받지요, 미국의 압박은 심화되고 유관국들은 협조가 안 되지요, 그런 상황에서 그 의원은 정말 문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그렇게 두둔하고 싶었을 것이다.

2) 제도적으로도 북핵은 이미 자신들의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당 규약에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어 북핵 성격을 재정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또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원한 ‘수령’과 영원한 ‘국방위원장’의 유훈이 한반도 비핵화여서 김정은 체제하에서의 핵보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심각한 해석상의 오류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그 첫째는 김일성의 유훈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이다. 이는 미국의 비핵화와 연동된 개념이다. 둘째는 그 유훈-한반도에서의 비핵화-이 또 다른 유훈-한반도에서의 (연방제적 방식의) 통일을 상쇄할 수는 없다 하겠다. 즉 통일이 궁극적 목표라면, 비핵화는 수단에 불과하고 순위도 통일보다 뒤처진다.

3) 희망사항으로는 이후 계속 이어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백은 이랬으면 한다. 대신 적어 보면 “그러나 제 뒤에는 여전히 촛불민심이 있음을 압니다. 많은 분들이 더 큰 고통으로 인내하기 전에 제 스스로가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탄생시켜낸 문재인 정부인데, 저의 잘못된 정책적 판단과 나약함으로 촛불정부의 희망이 붕괴되어져야 한단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반드시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촛불민심과 ‘뜨겁게’포옹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그리고 용기를 주십시오. 저도 달라지겠습니다.”

4)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한 번의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나 큰 재해가 임박했음을 가르쳐 준다는 법칙이다.

5) 비유적으로는 번개는 번개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은 그 번개도 자주 치면 비 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해서 말폭탄이 자주 일어나면 전쟁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진다는 논리를 편다. 과연 그런가? 형식논리로 치자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번개논리와 말폭탄 논리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다름 아닌 자연적 법칙과 사회과학적 법칙의 차이가 그것이다. 해서 말폭탄이 자주 발생한다 하여 반드시 전쟁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해법으로 제시되는 여러 가지 것들은 그 현실성과 실효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 『한겨레신문』(2017.09.26.) “[김이택 칼럼] 그래서 가랑이 밑을 기어야 했나”에서도 확인받듯이 제재가 북핵을 포기시킬 수 없고, 오히려 강도 높은 제재는 더 센 도발을 부를 뿐이라는 것이 국·내와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또 국내 일각에 제기되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과 핵무장화도 NPT체제가 지속되는 한, 전술핵의 문제도 전술핵 철수가 미-소 협상에서 이뤄졌듯이 재배치도 핵강국 러시아 변수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미국이 당장 전술핵을 대한민국에 배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미 조야의 공통된 분석이다. 선제타격도 90년대 얘기일 뿐 흩어진 핵을 단기간에 모두 찾아내 파괴한다는 보장도 없는 지금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게 또한 전문가들 견해다. 해상봉쇄 등 준군사적 옵션 역시 자칫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 함부로 쓰기 힘들다.

 

김광수: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인제대 통일학부·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외래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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