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추석연휴가 29일 시작됐다. 이날 낮부터 일부 회사원들은 손에 한아름 선물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긴 연휴, 일터를 떠나지 못해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이 있다. 바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은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현재 생존해 있는 35명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추석인사를 하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녔다. '노란 나비'를 단 '희망승합차'에 할머니들을 위한 한우, 과일, 유과를 가득 싣고. 

정대협의 추석맞이 할머니 방문기를 모았다. 할머니들은 정대협 관계자들을 항상 '식구'라고 부른다. 할머니 방문에는 장상욱 휴매니지먼트 대표도 함께했다.

▲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25일 수원 안점순 할머니를 만났다. [사진제공-정대협]

선물을 가득싣고 '희망승합차'는 달렸다

21일 목요일. 정대협 식구들은 먼저 서울지역 할머니들을 방문했다. 가톨릭 신자인 '클라라'가 세례명인 이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 1년전부터 성당에 나가지 못해 연신 아쉬워했다.

"다리가 아파서 성당엘 못나가. 아쉬워. 성당에 다니면서 참 좋았는데. 근처 공원에만 조금 다닐 뿐이야. 에휴. 가을인데. 나가서 바깥 바람 좀 쐬고싶어."

"얼른 아픈거 다 낫고 몸 추슬러서 나들이 갑시다"라고 정대협 식구들은 위로했지만,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이어 만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양 할머니, 최 할머니, 이 할머니들의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 정대협 식구들은 그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라. 얼른 일어나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자"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희망승합차'는 25일 수원으로 향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안점순 할머니를 만났다. 서로 마주보고 '허허'하며 짓는 함박웃음이 닮았다. 안점순 할머니는 연신 조카들 이야기, 추석 이야기, 수원 평화나비 이야기 등등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추석선물을 풀어보며 안점순 할머니. "선물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게 뭐꼬!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지. 쌀도 쬐끔, 이것도 쬐끔.."

문 밖에서 연신 손을 흔들던 할머니를 뒤로한 '희망승합차'는 충청도로 향했다.  

▲ 충북 보은 이옥선 할머니의 환한 모습. [사진제공-정대협]

"대협아~언제와? 대협이 어디있어?"

충북 보은 이옥선 할머니. 환한 웃음으로 정대협 식구들을 맞았다. 선물보따리를 풀어 본 할머니는 "쌀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비싼 것을 왜 이렇게 많이 사왔냐. 요즘 눈이 아팠는데 잘됐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그냥 보내기 싫은 할머니는 국수를 삶아 먹였다. 1인당 2인분의 국수를 흡입하는 모습에 할머니의 미소는 그윽했다.

충북 보은을 떠난 '희망승합차'는 부산으로 내달렸다. 부산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귀와 무릎을 빼고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며, 요양보호센터에서 그림 그리기, 가방 만들기 등 문화생활을 연신 자랑했다. 

연신 "고맙다"던 할머니는 서울에서 잠시 함께 생활한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들의 활동사진을 본 할머니는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하며, "대단하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포항 박필근 할머니를 만난 양노자 정대협 사무처장. [사진제공-정대협]

포항 박필근 할머니. 평소 정대협 사무실에 전화하면 "대협아~언제 와? 대협이 어디있어?"라며 '정대협'을 사람 이름이라고 안 할머니는 만나자마자 "정대협 왔어? 이제 정대협이 사람이 아니고 단체인 것 알아"라고 미소를 지었다.

반가운 마음에 박 할머니는 옥수수와 사과를 내놓고는 점심을 먹자며 인근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였다. 옛날 인권캠프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춤추고 크게 웃었던 추억을 나누며 할머니는 희망승합차를 배웅했다.

"나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충남 당진에 도착한 희망승합차는 이기정 할머니를 만났다.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는 얼굴이 많이 부은 상태였지만, 정대협 식구들을 만나자 반갑게 인사했다. "나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담양 곽예남 할머니. 분홍색 옷을 입고 조용히 침대에 누운 할머니는 정대협 식구들을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기운이 없는 할머니는 대꾸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손짓을 하고 가끔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정대협 관계자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남쪽으로 내려간 희망버스는 통영에 도착했다. 100세의 김복득 할머니는 좋아하는 족발과 순대를 받았지만 예전과 달리 힘이 없었다. 평소 당당했던 할머니의 나이듦에 정대협 식구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대구로 올라간 희망승합차는 이 할머니를 만났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안아주며 할머니는 손수 빚은 만두를 대접했다. 식민지 시기 역사부터 아들 딸 손녀에 이르는 가족사를 재미나게 들려준 할머니는 몇년 전 일본에서 열린 증언집회에 참석해 함께한 길원옥 할머니에게 감사인사를 영상으로 전했다.

▲ 대구 이 할머니는 정대협 식구들에게 손수 빚은 만두를 대접했다. 할머니의 손은 언제나 크다. [사진제공-정대협]

용인 이귀녀 할머니의 모습에 정대협 식구들은 가슴을 져몄다. 한 장로가 모셔가 돌본다고 했지만 과연 제대로 돌보고 있는 것일까. 잠에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니를 마주하며 기도를 올렸다.

성남 임 아무개 할머니는 머리에 핀을 꼽고 귀여운 모습으로 정대협 식구들을 맞이했다. 홍시를 받아든 할머니는 "꿀 발라왔어? 어떻게 이렇게 달아?"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사는 잘하는데 살이 안찐다"며 쩌렁쩌렁 큰 목소리를 낸 할머니는 찬송가를 불렀다. 유쾌한 모습에 정대협 식구들은 기분좋은 기억으로 돌아왔다.

"어서 일어나셔서 데모도 나오고 일본 사죄도 받아야죠"에 눈물

정대협 식구들은 27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으로 향했다. 이날은 <통일뉴스>도 동행했다. 나눔의 집에는 김순옥, 박옥선, 이옥선, 강일출, 정복수 할머니 등이 계신다.

거실에서 운동 중이던 박옥선 할머니는 반가운 사람들이 왔다며 두 팔을 벌려 정대협 식구들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선물을 바라보시며 "고맙다. 뭐가 이리 많노"라며 웃음을 보이셨다. 그리고는 나눔의 집 생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나도 데모 가고싶지.."

▲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이옥선 할머니가 정대협 식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사진제공-정대협]

두 달 전 병원에 입원한 뒤 퇴원한 이옥선 할머니는 방에 누워계셨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이리 반가운 사람들이 여기가 어드메라고 왔어"라며 "데모하러도 못간다. 걷지를 못해"라며 정대협 식구들의 손을 잡았다.

"수요시위도 가고 맘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맘처럼 안따라줘. 많이 속상해. 한일합의는 정말 잘못된거야. 우리들을 돈 받고 팔아먹은거 아니냔 말이야. 박근혜가 정말, 아니 박 대통령이 정말 잘못했어. 정말 나쁜 X이야."

102세이신 정복수 할머니는 침대에 누웠지만 귀여운 미소로 정대협 식구들을 맞이했다. 아리랑을 부르며 "아이고 예쁘다. 예쁜 사람들"이라고 연신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도 자주 참석한 김순옥 할머니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코에 호스를 키운 채 정대협 식구들을 바라보자 감았던 눈이 커졌다. 

"어서 건강해지셔서 데모도 나오고 서울에도 오셔야죠. 그리고 일본한테 사죄받으셔야죠"라는 말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엉엉' 소리를 내며, 정대협 식구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20여 년의 역사. 그리고 정대협은 피해 할머니들과 하나였다. 추석을 앞둔 할머니들의 소원은 단 하나.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였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8명 중 35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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