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원

 

9월 23일 밤, 괌에서 출격한 B-1B 폭격기(일명 랜서) 2대가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 가장 근접한 지역까지 비행하는 ‘무력 시위’를 벌였다. 세계일보는 심야에 전개된 이 같은 움직임을 ‘대북 군사행동의 전조’라고 표현했다. ‘실제 북한에 대한 공습을 가정한 훈련이 아니었느냐’ 하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남북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해왔던 NLL을 넘었다는 점에서 군사적 목적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무력 시위는 한국 전투기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공조의 결과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충분히 사전 협의”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고 한다. 또한 9월 25일 보도된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원산 지역의 SA-5 지대공 미사일의 탐지레이더를 가동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즉 문재인 대통령까지 보고를 받을 정도로 “굳건한 한미 동맹”에 기초해서 이번 무력 시위가 결정되었고, 북한이 지대공 미사일 발사 준비를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섬뜩해진다. 의도했건 실수였건 간에 만약 B-1B가 북한 영공을 침범했다면 북한은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이고 그 순간 북미 군사적 충돌은 전면화된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무력 시위가 한미 공조 하에서 결정되었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관리 정책 기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전략 자산의 배치를 한국 정부에서 요청했기 때문에, 이번 무력 시위를 한미 공동으로 결정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 자산의 배치 요청과 이번 무력 시위는 성격이 다르다.

9월 4일 국회 국방위에서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답변했던 것처럼 지난 8월 말 한미 군사연습 당시 한국 정부는 전략폭격기의 ‘DMZ 인근 비행’을 만류했다. 비록 소극적이었을지언정,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의사가 투영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무력 시위는 북한의 영공 바로 근처에서 실시되었다.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략 자산의 배치 요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대한 ‘반응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번  무력시위는 북한을 자극하려는 의도를 가진 ‘선제적 조치’이다. 따라서 이번 무력 시위를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한국 정부가 한반도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책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류 변화는 그 전부터 감지되기는 했다. 송영무 장관의 9월 4일 국회 발언에 따르면 하루 전날인 9월 3일 진행된 안전보장회의에서 “베를린선언보다는 우선 응징과 군사적 대치 상태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정부가 해야 할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아마도 무력 시위의 결정은 ‘트럼프-김정은 말 대결’ 이후의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오직 평화’를 강조하는 연설 전후 시기에 무력 시위 결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에서의 연설은 한낱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민과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말로는 ‘오직 평화’를 외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북미 일촉즉발의 가능성이 농후한 미국의 군사 작전에 동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공조 하에 진행된 무력 시위는 북미 군사적 대결을 더욱 고조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더욱 위협하고,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가 ‘오직 평화’에서 ‘군사적 압박과 응징’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운전대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한반도라는 자동차의 운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완전히’ 떠나 북미 양국의 대결 양상에 의해 좌우되게 되었다.

또 하나, 한미 공조의 한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이 계속되는 동안 문재인 정부의 한미 공조는 계속해서 강화되었다. 비록 ‘임시’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사드 배치를 단행했다. ‘군사적 압박과 응징’으로 정책 기조가 변했다. 이번 무력 시위는 북한 영공 바로 인접까지 미국 전투기가 접근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허용했거나 묵인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갈수록 한미 공조가 강화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혹은 압력)에 순응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무력 시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계속한다면? 그리고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결정한다면? 과연 그때 문재인 정부는 ‘No'라고 외칠 수 있을까?

한미 공조의 한계선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례하여 한반도 평화의 지속 가능성 역시 점차 멀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대화를 위한 압박’이라는 말로 국민들을 현혹해서는 안된다.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된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북미 군사적 충돌과 한반도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평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