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일상 세계는 어떤 거대 담론이 촘촘하게 깔려 있는 감옥이자 병원이다(푸코) |
고추 먹고 맴맴 농약 먹고 맴맴
- 박상률
고추밭에 농약을 치면
고추가 맵냐
농약이 맵냐
등에 진 약통 분무기
어깨가 제법 가볍게
느껴질 쯤
고추 먹고 맴맴
농약 먹고 맴맴
조선 시대의 한 단면을 가상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 ‘군주’를 보았다.
‘편수회’라는 비밀권력집단이 왕, 대비, 조정의 대신들에게 진꽃환을 먹여 독에 중독시킨다.
그들은 달이 차오를 때마다 보름에 한 번, 이 진꽃환을 마시지 않으면 심장이 찢겨지는 고통을 느끼다 죽게 된다.
편수회는 진꽃환 하나로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된다.
드라마를 보며 생각한다. 어찌 저리도 쉽게 당하나?
그러다 화들짝 깨닫는다.
우리도 그런 진꽃환을 가끔 먹지 않는가?
가끔 식품 사건이 터진다. 이번에는 ‘살충제 계란’이다.
이미 거의 모든 국민이 중독된 뒤다.
조만간 해독제가 미디어를 통해 공개될 것이다.
온갖 식이 요법, 건강식품, 전문가들의 조언.
하지만 국민들이 해독제를 먹어 안심할 때 쯤 또 어디서 무슨 식품 사건이 뻥 터질 것이다.
다시 해독제가 나오고.
우리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권력 집단, ‘편수회’가 있나 보다.
언제부터 ‘현대판 편수회’가 활동했을까?
어릴 적 부모님께서는 채소밭을 가꾸셨다.
자주 하늘을 보시다 비가 내릴 때 쯤 농약을 치셨다.
비에 농약이 씻겨 내린 채소를 시장에 내다 파셨다.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선한 분들이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채소를 사는 분들을 대충 아셨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많은 농부들이 농약을 마구 치는 것 같다.
여러 유통망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착할 즈음엔 죄의식이 다 날라 거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어른들이 고추밭에 농약을 치다 ‘고추가 맵냐/농약이 맵냐/등에 진 약통 분무기/어깨가 제법 가볍게/느껴질 쯤/고추 먹고 맴맴/농약 먹고 맴맴’
가끔 집으로 돌아와 드러누우셨다.
누가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에게 농약을 치게 했을까?
‘현대판 편수회’는 보이지도 않고 그들의 명령엔 전혀 강제성이 없다.
그런데 온 국민이 그들의 명령에 순순히 따른다.
김수영 시인은 그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하...... 그림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