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 시절 함께 미쓰비시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정신영 할머니(왼쪽)와 양금덕 할머니가 16일 72년만에 만났다. [사진제공-시민모임]

"가시와야 노부코? 그래, 그래! 미나리 농사지었잖아. 알고 말고." (양금덕 할머니)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오메, 살아 있었그만. 이게 얼마만이요!" (정신영 할머니)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로 강제동원된 10대 소녀 둘이 72년만에 만나는 순간이다. 1944년 5월경 나주초등학교 1년 선후배로 강제동원된 정신영 할머니(88세)와 양금덕 할머니(87세)가 16일 만났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17일 "72년 세월의 벽이 일순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소녀들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뜨겁게 상봉했다"고 알렸다.

시민모임 측에 따르면, 나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정신영 할머니는 최근 광주지방법원 근로정신대 판결 소식을 듣고 시민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 할머니가 나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에 끌려갔다는 사연을 들은 시민모임 측은 같은 나주초등학교 출신으로 미쓰비시에 끌려간 양금덕 할머니를 모셔온 것. 

▲ 양금덕 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정신영 할머니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제공-시민모임]

72년의 세월이 흘러 서먹했던 침묵이 흐르던 순간, 정 할머니가 양 할머니의 창씨개명 이름을 불렀다. "가시와야 노부코!"

그제서야 정 할머니를 알아본 양 할머니는 부둥켜 안으며 72년만에 해후했다. 10대 어린 나이에 함께 미쓰비시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두 소녀는 주름진 얼굴을 서로 부볐다.

정 할머니는 "평생 호미로 땅만 파고 살다보니 전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들 안 죽고 누가 살아있을까 늘 소식이 궁금했다"며 "이제 소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도 "어쩌면 동료들 중 누군가는 한번 만나지 않겠는가 했는데, 안 죽고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얼굴이 고왔는데 늙었지만 그 얼굴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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