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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고난의 발자취와 뼈아픈 현실<기고>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
김한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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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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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노태우정부의 7.7선언 이후 출범한 남북경협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내륙투자기업, 교역기업들은 정부나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100% 리스크를 자신들 스스로 짊어진 채 반세기 동안 가로 막혔던 분단의 벽을 넘어 남북경협 개척에 앞장섰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7.7선언 이후 3단계 통일방안인 1) 민족공동체헌장 채택 2) 남북연합 3) 통일헌법 제정을 발표했으나 실효성 있는 후속조치가 없어 남북대화조차도 차단되었다. 그후 김영삼 정권마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인 ‘선 교류 후 통일’을 이룬다는 1) 화해협력 2)남북연합 3)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 통일방안을 구상했으나 모두 공염불로 끝났다.

따라서 정부는 오로지 민간인들을 앞세운 경협과 지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및 활성화를 모색했다. 한편 북한은 남북경협은 흡수통일의 한 수단이라며 남쪽기업인들의 북한접촉 및 경협사업을 불허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내 남북경협 1세대 기업들은 홍콩, 일본, 중국 등 제 3국을 돌아다니며 해외 중계인들(북한 거래선)을 통한 간접무역 방식의 물자교역부터 시도하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의 물꼬를 튼다.

초기에는 남북경협 1세대 기업들 대부분이 북한 현지사정은 물론 북한상품 정보도 없어 한 품목을 선정하여 국내에 도착시키는 데도 최소한 1년 이상 소요됐다. 왜냐하면 북한은 자유경제 시장체제도 없었고 상품개발 능력과 수출경험도 없었으며, 특히 남북경협 1세대 기업들이 북한과 직접 만나 상담을 하거나 직거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 초 쏘련의 붕괴로 체코, 불가리아, 폴란드 등 사회주의체제의 공산국가들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가동됐던 사회주의 국가 간 무역거래 시스템마저 실종한다. 그 결과 평소 이들 공산국가들과 석탄, 금, 아연, 알루미늄, 마그네사이트 등 지하자원을 매개로 한 물물교환 방식의 무역거래가 전면 중단되면서 곧바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대로 진입한다.

이때가 북한은 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당시 이들과 상품거래로 이익을 남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이러한 사실을 당시 남북경협사업에 참여했던 1세대 기업인들 대부분은 인지할 정보나 능력도 없이 다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앞만 보고 뛰었다. 자기 자신들이 정치적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 당시 북한의 최대 무역거래국가는 일본이었고 주로 조총련을 매개로한 송이버섯, 자연산광어, 성게알(우니) 등 수산물과 어패류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외에 농산물, 임산물 등 이들 품목의 해외수출은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최우선 이였기 때문에 그들의 먹거리인 농산물, 임산물 등의 수출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다.

당시 북한이 일본에 자연산 광어나 어패류 등 최고품질의 수산물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받아오는 물품(수입품) 대부분은 일본국민들이 내다버린 중고자전거, 책상 등 쓰레기 생활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내륙투자 기업인들은 홍콩 등 해외 중개인을 앞세우고 한 품목, 한 품목 선별하여 북한에 상품개발 노하우와 포장방법, 품질관리 등을 가르쳐주며 이를 국내에 반입하였으며, 대부분 1개의 품목을 반입하는데도 최소한 1년 이상 걸렸다.

특히 직접 북한에 가서 주문한 상품은 볼 수도 없고 품질 사전검사도 할 수 없어 대부분 반입 후 품질을 체크하면 불합격품이 대부분이었다. 비싼 해상운송을 이용하고서도 말이다.

더 억울한 것은 그토록 어렵고도 어렵게 북한상품을 반입 해다 놓고서도 국내에서 세관통관에 수개월씩이나 지체되어 막대한 손해을 감내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많은 중국거래업체들이 국내세관을 속이고 중국산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통관하다 적발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세관에서는 북한산이라 하면 먼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원산지를 조사하고 확인하는데 수개월씩이나 소요됐다.

결국 초기 남북경협사업은 여러 외적요인으로 항상 리스크가 뒤따랐으며 그래도 내륙투자 교역기업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한 품목 한 품목 북한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성사시키는데 그 목표를 두고 뛰었다. 왜냐하면 이익에 앞서 ‘상품거래 성사’와 ‘북한 직거래선 확보’가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가 남북경협 1단계 시기인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 일어났던 일들이다.

안타깝게도 선구자 1세대 남북경협기업들 대부분은 남북경협 추진과정에서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 손해를 봤다. 동시에 이들 기업 대부분은 이때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지금도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라고 했던가? 이것이 바로 남북경협 1세대 개척자들이 순수한 마음과 정신으로 대북사업에 나섰던 동력이다.

남북경협과 교류는 전쟁을 방지하고 북한주민에게 시장경제를 전하고 남북 간 민생 인프라를 구축하고 남북의 성장동력 및 일자리 창출에 으뜸 사업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어설픈 정치 논리로 한반도 역사에 치욕적 기록으로 남을 이명박 박근혜의 대북정책이 오늘의 한반도 위기정세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이 와중에 민주당 정부시절 정부 승인과 ‘정부를 믿고 투자하라’는 장려를 받고 진출한 내륙투자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사업 중단에 억울한 세무조사, 공안기관 감시 등으로 기업파산, 가족해체, 신용불량 등으로 9년여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와 동시에 투자액 90%를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경협‧교역 기업들은 관심 밖이었으며 정부가 바뀐 오늘 까지도 묵묵부답이다.

2016년 10월 4일 내륙투자, 교역, 임가공, 금강산 기업들은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정부에 피해보상과 전업 자금 요청, 그리고 개성공단 피해기업과 형평성에 맞는 대우를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사업가의 귀책사유가 아닌 이유로 사업이 중단 되었을 시 정부가 보상토록 남북교류협력법에 명시되어 있고 정부의 일방적 개성공단 철수 조치로 북한은 내륙지역 투자기업의 자산을 몰수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므로 이 책임은 박근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농성 100일이 지난 1월 11일 당시 홍용표 장관의 3월말까지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해제하였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고 2월 16일 다시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재개하였다.

새정부 출범이후 신정부 100대 중점사업 중 통일분야 사업에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 지원하겠다는 문안이 명시되고 신임 통일부 장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 7월 25일 농성을 해제하였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하게 오리무중이다. 1년여 장기 농성에 지친 기업인들 중에는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분들도 있다. 더 안타까운 일은 자신의 몸에 병마가 깃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한여름 36도 더위에 선풍기도 없이 농성하였던 비대위본부장은 농성 해제 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과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되어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금강산 투자기업 모 씨는 6시간 신장 수술을 받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안타까운 사정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광화문 청사 앞에 상여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정부와 관계부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남북관계 악화로 억울하게 희생된 기업들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이같은 일을 조장한 적폐세력 청산과 불합리한 세무‧공안 당국의 적폐를 도려내야 한다. 부디 신속한 조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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