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문제다”라는 사람을 만났다. 아무 말 대잔치가 펼쳐지는 작은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아주 오래전 이야기부터 미국의 야만적 속성을 들이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1492년 이후 아메리카에 발 딛은 모든 백인은 그들이 쏴대는 총구의 총알을 신봉했다. 원주민이었던 북미 인디언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쓰러진 인디언의 핏자국은 그들이 정복해 나갔던 땅의 경계선이 되었다. 애초 자연에 대한 경외가 없었던 천한 족속이었던 그들이 정복한 땅에서 맞은 겨울, 혹한과 폭설에 아사 직전이었던 그들에게 인디언들은 통나무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겨울을 지낼 식량도 나누어 주었다. 총알로는 사람이 먹고 살수 없음을 인디언의 전통대로 가르쳐 주었는데도 이 못된 자들은 더 필요한 인디언의 식량을 훔쳐 달아났는데 그럼에도 인디언들은 그 사실을 묵인해 주었다. 인디언 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훔치는 건 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의 술잔이 오갔고 나는 안주를 씹으며 고개를 주억거려 공감을 표시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그 이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싸움에 그들은 미국이란 총구를 들이대고 싸움을 말리는 듯 싸움을 부추겼다. 평화의 조정자라는 근사한 외피를 무기로 탐욕과 질투와 분노로 포장된 폭탄을 가는 곳마다 뿌려댔다. 지금의 한반도상황을 보라. 그 결과가 이 땅에 있지 않는가.”

눈길을 돌리는 게 미안할 만큼 열변을 토하는 그의 말에는 격정적인 흡인력이 있었다. 소주 한잔 함부로 입에 대선 안 될 것 같았고 상추 잎에 올려놓은 고기도 슬며시 내려놓을 만큼 경청 분위기가 되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잠깐 동안 ‘스탬피드 축제’(Calgary Stampede Festival) 라는 말을 떠올렸었다.

로키산맥이 인접한 캘거리에서 벌어지는 카우보이 축제다. 매년 7월 첫째 주가 되면 세계 각지에서 몰리는 약 120만의 인파로 인해 캘거리 시내는 발디딜 틈이 없다. CNN에서 반드시 가 봐야 할 세계 7대 여행지로 소개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축제의 최대 압권은 역시 총 상금이 200만 달러가 걸린 로데오 경기와 역마차 경주다. 광폭한 질주에 마차가 뒤집어 지는 일은 다반사고 가끔 사람이 죽는 일도 발생할 만큼 위험하지만 참여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몇몇의 소중한 생명보다 그들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땅,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정확히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이 1607년 4월 영국 본토의 종교탄압을 피해 버지니아의 체사피크만(Chesapeake bay)에 도착한 이래 수 백 년간 그들은 성서와 권총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양손에 쥐고 영역을 개척했다.

그들이 신성시했던 황금률(黃金律)-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마태복음 7:12)-은 2만5천년 이전부터 그 땅에 살아온 바이칼의 후예들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미 인디언들의 슬픈 현실은 술과 마약에 쪄든 인디언 보호구역의 어린 아이의 노래 속에 담겨있다.

스탬피드 축제에는 인디언이 없다. 오직 인디언들을 정복했던 ‘오만한 문명자’들의 함성만 있을 뿐이다. 고작 100년이 된 이 축제의 참가자들은 캘거리 주변의 숱한 나무들조차 이 축제의 나이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는 것을 알까?

그의 얘기와 나의 단상이 혼재되어 술자리가 거나해질 때 쯤 최근 미국의 동향에 대한 그의 취중 강의가 이어졌다.

“작년 5월초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한국을 다녀갔다. 주된 목적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한국 측의 입장을 타진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게이츠라고도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최장수 정보·안보 관련 고위직을 지냈고 국방장관도 역임했던 사람이다. 회고록에서 노무현을 미쳤다고 표현해 한국인들의 공분을 산일도 있는데 그보다 더한 표현은 이명박을 꽤 괜찮은 인물로 묘사했다는 거였다. 그런 그가 최근 북한과 평화협정, 한반도 군사력 변경, 제한된 핵 보장을 주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주류사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언이다.”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어 거들었다. “그럼 미국이 정신 차리고 있다는 증거 아냐? 미국이 문제가 아니네...”

“북한이 문제다”라고 얘기했던 사람은 그날의 술자리에선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서로 묻지도 않았다.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으레 저지르는 모든 일이 도발이니 아예 논외로 했거나 실제로 문제가 없다고 여겼거나.

그 자리엔 북한이 문제 하나 없는 이상적 체제라고 우길만한 완벽한 종북주의자(?)는 한사람도 없었으니 암묵적으로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차. 또 다른 이유가 있었겠구나. ‘북한을 너무 모르거나’라는 이유.

1950년 이래 지금까지 남한은 북한과 싸우고 있는데 북한은 미국과 싸우고 있다. 최근엔 싸움의 증세가 더욱 심해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니 핵시설 선제타격이니 하는 어마 무시한 말들이 뉴스의 한복판에 있다. 술잔을 입에 대며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핵실험에 성공했지만 그 무기는 단순히 무기로만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쓰여서도 안 되지만 쓰일 일도 없다. 미국의 선제공격도 지금은 당연히 아니다. 미국 경제가 파탄나고 세계 일등시민을 자처했던 그들이 몰락해 다른 나라에 빌어먹을 처지가 되는 날이 온다면 모를까.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사드(THADD)에 있다. 끊임없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 불안감을 무기판매로 이익을 챙기는 미국의 단순한 거래방식을 사드 배치는 어김없이 보여 주고 있다. 화성 14호 발사이후 문재인 정부는 남은 사드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확정했으니 북한이 6차 핵실험만 해주면 미국 몫이었던 사드 배치 비용도 결국 한국 정부로 이관될 것이고 미국의 무기장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후 또 다른 이익을 찾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평화협정 경제협력 등이 이루어진다면 남한정부로서는 한반도의 평화주권 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술친구들은 고개를 끄떡여 공감을 표시해 주었다. 동북아 평화의 문제를 지나치게 경제적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었다. 나는 “글쎄”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런 날이 올까”를 질문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확신에 차서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내 확신에 대한 근거는 단지 하나 술이 취했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때 옆의 다른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그럼 뭐야 남한이 문제네. 남한이 문제야.” 그 말에도 이견이 없었다. 다들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2차는 없었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노래하는 사람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민족음악인 협회 연주분과장을 지냈고, 다수의 드라마.연극.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으며 98년 1집 "사람이 사는마을"2000년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2002년3집"위로하다.위로받다"2006년 4집 "기억과 상상"등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0년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출간했다.

현재 시노래 운동"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있으며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사)희망來일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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