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8일 새벽에 발사된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물이 공개되어 놀랐는지, 아니면 ICBM의 성능이 예상보다 뛰어나서 놀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물론 관련 전문가, 정책 담당자들도 놀라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그렇다고 해도 전문가나 정책 담당자들이 놀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합당하지 않은 대응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다.

최고 고도 3700km까지 올라가는 ICBM에 대한 대응으로 사드를 도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줄곧 주장하다가 갑자기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같은 일이라도 박근혜 정부에서 하면 잘못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하면 잘한 게 되는 것인가?

사실, 북한의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은 2012년, 2015년에도 공개된 적이 있다. 열병식 때 8축 트레일러 위에 실려 공개된 ICBM급 미사일을 보고 사람들은 종이를 덧댄 위작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분석하고 대비하였던 적이 있다.

우리 정부도 최소한 이때부터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ICBM을 제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판단하고 그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즉 이번 ICBM시험 발사에 맞추어 내놓은 대응책은 최소 2년, 길게는 5년 전부터 준비되었던 대응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드 추가 배치는 그런 긴 호흡의 대응으로 보기에는 무기 성격 자체가 안 맞다.

어떤 최신 기술, 제품이라도 공개된 순간과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순간이 같을 수는 없다. 일반 기업들도 신제품을 출시하려면 내부적으로 최소 몇 개월에서 몇 년을 극비리에 준비한다. 완성된 제품도 시장상황이나 경쟁업체의 대응에 따라 상당기간 비공개로 두기도 한다.

하물며 전략무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발 자체도 극비로 취급되겠지만 공개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북한의 전략무기 시험발사 패턴을 보면 시험 간격이 매우 짧고 성공 확률 또한 높기 때문에 공개된 무기나 기술은 최 정점이 아니라 몇 단계 아래에 있는, 즉 안정된 무기와 숙성된 기술이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ICBM에 대한 대비는 1998년부터 했어야

북한의 미사일 기술에서 ICBM에 비견되는 기술은 이미 1998년에 공개되었다. 인공위성 발사체 기술과 ICBM 기술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북한의 첫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 발사가 성공하는 순간, ICBM 제작 기술도 상당히 발달했을 것이라 추정해야 마땅하다.

2009년 이후 거의 3년 주기로 진행된 인공위성 발사시험을 보면 ICBM은 공개만 안 되었을 뿐 이미 완성되었다고 판단했어야 한다. 매번 어색한 이유와 함께 ‘실패’라는 평가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말고, ICBM의 완성이 가져올 파장을 꼼꼼하게 따져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 후 국민들에게 제시하여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정책 담당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만일 인공위성 발사체와 달리 ICBM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핑계를 댄다면 2016년 3월 지상에서 모의 재진입 시험을 공개했을 때라도 이미 ICBM은 완성되었을 수도 있다고 보고 대비했어야 한다.

백 번 양보해도 2016년 6월 ‘화성 10호’가 최고고도 1,416km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시험과정이 공개되었을 때에는 ICBM의 완성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공식 규정된 대기권(100km)을 뚫고 나가고도 1,300km를 더 상승했다가 수직으로 되돌아오는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완성이라 봐야 했다. 당시 언론은 사거리에 매몰되어 보도했기에 일반인들은 간과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미사일 전문가나 정책 담당자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 수준을 냉정하게 평가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ICBM이라고 북한이 주장하는 ‘화성 14형’이 공개되고 나온 대책은 너무나 어이없는 사드 재배치이다.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은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사드가 ICBM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냥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좋은 행동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미국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수준으로 끝내면 안 되는 것이었나? ICBM의 주 타격 대상이 미국이므로 대화로 풀 수 있는 주체도 미국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08년 9.19합의 무산 때부터 비핵화는 거의 불가능해져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줄곧 이야기해왔는데 사실 북한의 비핵화는 9.19, 2.13 합의 이행과정이 2008년에 무산되면서 거의 물건너 갔다고 봐야 한다. 당시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3단계로 나누어 차근차근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에 석연찮은 이유로 핵 불능화는 2단계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합의는 파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9.19, 2.13합의를 이야기하면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 원칙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면 기초 정보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원래 CVID는 부시가 집권 초기에 줄곧 강조하던 원칙이었는데 9.19, 2.13합의는 이를 내려놓으면서 진척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NSC를 담당하고 있던 이종석 전 장관도 자신의 회고록에 이를 분명히 써놓았다. 실물이 존재하는 현재핵에 대해서는 검증가능, 불가역적인 폐기가 가능하지만 항상 논쟁 속에 있던 과거핵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완전하고 정확한”(Complete, Correct: CC)으로 바꾸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 폭파 장면을 CNN이 생중계하는 등 현존하는 핵시설들은 합의된 절차에 따라 거의 90% 수준까지 불능화되었다. 과거 핵활동에 대해서는 무려 1만9천쪽에 달하는 핵활동 일지가 미국에게 직접 건네졌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가 중국에게 제출되는 것으로 일단락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북한의 신고서에 대한 검증 문제 때문에 합의가 깨졌다고 주로 보도되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 추출량과 미국의 추정치가 거의 비슷했고 오차가 생긴 부분은 1980년대 일에 대한 평가의 차이였는데 이는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다루었던 부분이다.

게다가 검증 문제는 원래 합의 내용에 없던 방식까지 미국이 요구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례가 많지 않지만 이전의 불능화 사례들에서도 검증이 매우 민감한 것이라 조심스럽게 다루던 것인데 갑자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합의를 깨는 결정적인 이유인 것처럼 언급된 것이다. 실제 합의 파기는 다른 이유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2008년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비핵화’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주관적, 정치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2008년만 하더라도 북한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봉을 2~3차례만 추출하였을 뿐이고 핵시험도 한 번만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지금까지 핵연료봉에서 플루토늄도 몇 번 더 추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천 기의 원심분리기를 가동시켜 우라늄 농축까지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핵시험은 무려 네 번이나 더 시행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에는 헌법까지 개정하여 핵보유를 선언했고 2013년에는 경제발전 전략도 핵무력 확충을 고려하는 형태로 바꾸었다.

2016년에는 ‘핵무력에 대한 유일적 영군체계’를 완성할 것을 요구하였으므로 북한 체제에서 핵을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아마도 북한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비핵화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비핵화를 하겠으니 제안해보라고 먼저 이야기하면 아무도 대답 못할 것이다.

ICBM과 핵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진정한 대화’뿐

2017년 7월 4일, 7월 28일 2번에 걸쳐 시험발사된 ‘화성 14형’은 수치상으로는 ICBM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수준에 도달하였다. 최고 고도가 2,800km, 3,700km나 되었고 비행시간도 39분, 47분이나 되었다. 사거리가 얼마냐를 따지는 것도 이제 무의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대기권 진입 이후 탄두 내부 기계들이 모두 정상작동하였음이 드러났으므로 모의 핵탄 폭파 시험도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전 세계 어디든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날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북한이 보유했음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다.

만일 이런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인정하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다. 말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먼저 핵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하고 있니, 서로 가만히 있으면 최소한 전쟁만은 피할 수 있다.

만일 이런 위험한 무기를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다면 대화를 시작하자. ICBM과 핵무기를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지구상에 없으니까, 아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평화’이니까,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자.

앞에서는 대화를 제의하고 뒤에서는 참수부대 창설을 앞당기겠다고 이야기하면 누가 기분 좋게 대화에 나서겠는가?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한다면서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어법의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논리력의 부족, 혹은 대화 제의의 진정성 없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남북이 만나지 않고 또 다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그만큼 오랜 세월 떨어져 지냈으므로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만반의 필요성이 강해야 한다. 채찍이나 제재로 대화하려 하지 말고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함께 모색해보자고 하면서 대화하려 해보자.

미사일을 쏘고 핵을 가졌지만 북한은 이것의 효용을 평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진정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만나자고 제의해보자. 모든 조건을 내려놓고 일단 만나서 평화를 이야기하자고 제의해보자. 무기를 이기는 것은 평화뿐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