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이나 캐볼까하고 집을 나서던 구보 씨는 틀어놓은 텔레비전을 끄려다 무심코 흘러나오는 ‘한빛4호기 콘크리트에도 구멍발견’이라는 뉴스를 보고 챙겼던 모자와 장화를 내려놓는다.
몇 년전 이장이 마을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린 가방안에 있던 방독면은 빼버리고, 바지락 주머니로 쓰던 가방도 저멀리 던져놓는다.
“요것이 또 뭔 말이당가”
지난 5월에는 격납건물 철판이 녹슬고, 백군데 넘게 구멍이 뚫렸다고 하더니, 또 격납건물에 무슨 사단이 난 것인가?
1980년대 핵발전소가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거품을 물어대던 한수원과 정치인들에 의해 핵발전소가 하나, 둘... 여섯 개까지 들어왔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난 고향마을에서 버티고 사는 구보 씨 같은 사람들에게 핵발전소는 애물단지이다. 건설초반 경기가 반짝할 때 들어온 식당이며, 술집, 숙박업소 등이 빈집이 되어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는 것도 보기 싫다.
구보 씨 살아생전에는 눈앞의 한빛핵발전소 6기의 불이 꺼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아니 사는 동안 제발 사고라도 나지 말아야 도대체 저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정부의 핵발전소 제로 2079년, 이게 탈핵인가?

지난 6월 19일 40년 넘은 고리1호기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선언을 TV로 보면서 구보 씨는 다른 사람들 처럼 박수를 보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는가도 싶었다.
‘계획 중인 것을 포함해 더 이상 신규핵발전소는 짓지 않는다.’
‘고리1호기 폐쇄로 24기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은 하지 않는다.’
‘태양과 바람 등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2030년 20%로 늘린다.’
문재인정부의 탈핵로드맵 발표이후 바로 핵산업으로 인한 이익의 수해자였던 핵공학 교수들과 핵산업 관련자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들은 전기요금 폭탄, 재생가능에너지의 효율성 등을 부각시키며 탈핵선언 깍아내리기에 열을 올린다.
얼마가 지나고 신고리5,6호기 건설여부를 공론화에 부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가 나오면서 공약이었던 신고리5,6호기 백지화가 공론화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린다.
구보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28%의 공정율로 인한 매몰비용을 포기하는 것이 72%의 비용을 버는 것일텐데 도대체 그동안의 매몰비용 때문에 신고리5,6호기를 지어야 한다는 핵산업계의 황당한 논리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구보 씨는 신규핵발전소를 짓지 않겠다고 했을 때 공정율과 상관없이 현재 짓고 있는 신고리4,5,6호기와 신한울1,2호기가 건설을 중단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고리4호기와 신울진1,2호기처럼 95~99%까지 건설된 것은 어쩔수 없고 28% 공정율인 신고리5,6호기도 지을지 말지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결정한다니,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이대로라면 핵발전소가 문재인 정부에서 27기로 늘어나고 만다.
핵발전은 돈의 논리가 아닌 안전의 논리이여야 하지 않은가? 매몰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핵폐기물 비용은 어찌할 것인가? 핵발전소가 위치한 영광, 울진, 부산 사람들에게는 24기 핵발전소에서 매일 만들어 내고 있는 핵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화장실 없는 고급맨션에 비유되는 핵발전소에서 폐기물, 그것도 우라늄 234와 같은 방사능물질을 100만년까지 내뿜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방안도 없는데 1기라도 더 늘어나는 탈핵선언에 구보 씨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 짓고있는 신규핵발전소는 수명이 60년짜리이고 규모도 고리1호기(580MW)보다 2.5배 가량 높은 1,400MW급으로 단순비교만으로도 고리1호기가 7기 더 지어지는 셈이다. 결국 신고리5,6호기가 건설중단 된다 해도 2079년에나 핵발전소 제로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35기까지 더 짓겠다고 했던 전 정부에 비하면 진일보이지만 문재인 정부를 과연 탈핵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구보 씨 눈앞에서 돌아가고 있는 저 속모를 건물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는 말인가? 가슴이 벌렁거린다.
내친김에 인터넷을 연결한 구보 씨가 ‘격납건물 구멍’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니 관련기사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

한빛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에 구멍

철판에 이어 이번에는 핵발전소 콘크리트에 구멍이 뚫렸다. 7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한빛4호기 격납건물 철판 뒷면 일부 구간(18.7cm x 1~21cm)에서 콘크리트가 채워지지 않은 구멍이 발생했단다. 이번 콘크리트 구멍은 지난 5월 한빛4호기에서 120군데에 달하는 철판 부식이 확인되어 이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한빛4호기 상부 원형 돔과 하부 경계지점에서 가로 14센티미터, 세로 20센티미터 크기 58개의 샘플을 채취했더니 1개를 제외하고 57개에서 빈 공간, 즉 구멍이 발견됐다.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다던 1.2미터의 콘크리트 벽에도 구멍이 뚫린 것이다.
애초 한빛2호기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확인되면서 문제가 된 지 1년 만에 6기의 철판부식이 확인되었고 이제는 콘크리트에 구멍이 난 것까지 확인된 것이다. 콘크리트의 공간이 발생한 이유는 시공과정에서 다짐작업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명맥한 부실시공이다. 한빛4호기는 지난 22년간 방호벽이 없는 채 가동되어 온 것이다. 10년마다 한다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도 무용지물이었고 규제기관은 있으나 마나한 허수아비였다.
‘프랑스는 지난 2011년 주기기 탄소함유량 기준 초과시 규제기관이 58기의 핵발전소 중 20기를 중지시키고 검사를 지시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양심적인 핵공학자 박정운 교수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국민 안전보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한수원을 곁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구보 씨다.

격납건물 철판에도 구멍투성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2016년 6월 한빛2호기 정기검사 중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위한 5대 방벽중 제 4방벽인 격납건물 라이너 플레이트(CLP, Containment Liner Plate, 격납건물 철판)의 뒷면(최종 방벽인 콘크리트와의 접착면) 부식(일부는 관통) 발생을 확인했다.
한수원은 한빛2호기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낙하 사고에 따른 공사 중지로 16개월간 철판이 대기에 노출되어 부식되었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나 그해 11월 한빛1호기에서 동일한 부식이 발견되자 해풍 방향 부분에 염분이 부식을 유발하였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한울1호기와 올해 2월 고리3호기에서 해안 방향 이외에서 철판 부식이 또다시 발생했다.
결국 올해 3월17일 제 67회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격납건물 건설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잠정결론을 내렸다. 그때까지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발생한 핵발전은 한국표준형 핵발전소 도입 이전에 지어진 것이라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0개월간 중단 중이던 한빛 핵발전소를 지난 3월 21일 재가동 승인해주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만인 지난 5월 한국표준형 원전인 한빛4호기에서도 무려 120곳이 부식되어 있었고 철판두께도 기준치인 5.4mm에 미치지 못한 것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철판부식 원인을 찾다가 또다시 발견한 격납건물 콘크리트 구멍. 구보 씨 가슴에도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태양과 바람은 고지서를 보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오는 여름볕이 대단하다. 핵발전소 꼴보기 싫어 재작년 지붕에 올린 2kW 태양광 모듈위로 쨍쨍한 태양이 쏟아져 내린다. 고지서를 보니 지난달도 139kW가 남았다. 대한민국 모든 지붕을 태양광으로 덮으면 핵발전이나, 석탄발전소가 필요 없을 듯 하다.
얼마전 기사를 보니, 일본은 신칸센 철로 바닥에 태양광 모듈을 깔았다. 태양광으로 비행기가 세계일주에 성공하기도 했고, 태양광지붕의 자동차가 선보이기도 했다.
전세계가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버리고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너지로 전환하는 추세이지 싶다.
최근 신문에는 구보 씨의 생각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핵발전이 사양산업이고, 재생가능에너지가 뜨고 있다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계원자력산업동향보고서(WNISR)과 영국 석유기업 BP의 2000년~2015년 세계 풍력, 태양광, 원자력발전 설비용량 추이 자료를 보면 2000년에 비해 2015년말 핵발전이 27GW 늘어났다면 태양광은 229GW로 8.5배, 풍력발전은 417GW로 15.4배 늘어났다고 한다. 1997년~2015년 세계 전력 생산변화 추이를 봐도 1997년에 비해 2015년말 핵발전은 178TW 늘어났는데 비해 태양광이 252TW로 1.4배, 풍력이 829TW로 4.7배 늘어났다. 중국의 경우 핵발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도 2015년말 현재 시설투자는 핵발전에 비해 태양광은 1.6배, 풍력은 5.4배이다.
세계원자력산업동향보고서에도 1995년 세계 전력의 17.6%를 차지했던 핵발전이 2015년말엔 10.7%로 떨어진다.
100기가 넘는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미국에서도 수명이 남았는데도 경제성을 이유로 조기폐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태양과 바람은 고지서를 보내지 않으니, 발전단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2016년 12월 한국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세계 평균 kWh당 발전단가가 2014년에 석탄 60원, 원자력 120원, 태양광 180원, 풍력 90원이던 것이 불과 3년 뒤인 2020년에는 석탄 70원, 원자력 130원, 태양광 80원, 풍력 70원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원자력보다 싸지는 ‘제너레이션패리티(generation parity)’가 올 것이라는 전망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핵발전소 안전을 위한 방호벽과 철판에 구멍이 숭숭난 채 22년동안 돌아간 한빛핵발전소 곁에서 그동안 살아남았던 것은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오늘도 ‘핵발전소가 뱉어낸 저 핵폐기물은 어찌할꼬’ 하는 걱정을 삼키며 구보 씨의 기적같은 하루가 넘어간다.

 

 

이태옥은 핵발전소가 6기나 있는 영광지역에서 여성농민회와 여성의전화를 만들고 활동했다.
현재는 원불교환경연대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 등 에너지개벽운동을 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소 협동조합인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상무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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