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절지도]의 뿌리는 중국에 있다.
명.청시대에 도자기나 각종 골동품과 꽃이나 과일 따위의 소재를 결합한 형식의 그림이다.
또한 특별한 인문학적 내용이 없고 건강, 장수, 풍요, 출세, 벽사, 다산 따위의 길상적 내용이 전부이다.
처음에는 왕실을 장식하거나 고관대작들의 선물용으로 그려지다가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어 대중화된다. 또한 비단에다 진한 채색과 세밀한 묘사를 하는 전형적인 전문 화원풍의 그림이다.

도자기, 오래된 청동기 따위는 대부분 무덤에서 도굴한 제사용 물품이었다. 이러한 골동품이 인기를 얻은 것은 청나라 때 유행한 고증학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다.
고증학(考證學)은 한, 당나라의 훈구학을 계승하면서 관념에 빠진 성리학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의 관점으로 철학과 사학을 연구하는 태도를 가졌다.
이러한 고증학은 추사 김정희의 금석학이나 실학, 북학파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고증학은 선대의 학문을 연구하는데 그 당시 기록이나 비문, 서적을 탐구하는 풍조에 편승해 골동품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간다.
금은보석이 아니라 흙과 청동기로 만든 낡은 물건에 가치가 생긴다는 것은 정신적 가치가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왕족이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문화였다.
연암 박지원에 중국을 여행할 때 만난 상인은 골동품의 진위를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가짜가 많았다는 것은 그 만큼 한나라, 당나라 때의 골동품이 인기가 있고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아무튼 초기 골동품은 고증학이라는 학문적 가치가 녹아있었다. 하지만 점차 학문적 가치는 사라지고 길상적 내용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골동품을 소재로 삼은 그림에는 [책가도]의 원류가 되는 [다보각경도]와 [기명절지도]가 있다.

▲ 비단욱(費丹旭)/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1839년/견본채색/105.0x43.0cm/청나라/화정박물관.
신년 초에 황실에 그려 바치는 그림으로 일 년 동안 평안을 축원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매화꽃잎은 5개로 오복을 의미하고 붉은 열매가 있는 천죽(天竹)의 죽자는 축(祝, zhu)와 발음이 같다. 또 큰 귤(大橘, daji)는 대길(大吉, daji)와 발음이 같다.
사물에 붙은 이름이나 발음의 비슷함을 이용해 상징을 만드는 문자유희도 이 시기에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렇게 도교적 내용이 가득 찬 청나라의 [기명절지도]를 조선의 선비들은 쉽사리 수용하지 않았다. 단원 김홍도는 책과 보물, 골동기가 들어간 [다보각경도]를 조선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책가도]를 창안했다. 초기 [책가도]에는 책만 가득했고 고작 문방구와 같은 사물이 들어갔을 뿐이다. 또한 골동기와 같은 사물을 그리더라도 인물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기명절지도]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할 때는 19세기 중반쯤이다.
이때는 진경산수화도 쇠퇴했고, 사의성(寫意性)과 즉흥성이 강한 중국의 남종화가 유행한다.
오원 장승업은 중국에서 들여온 남종화 화첩을 보면서 그림공부를 한 화가이다.
남종화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면서 명성을 얻는다.
장승업은 그림의 여러 갈래를 잘 그렸다. 산수화, 도석화, 화조도에 능했지만 특히 [기명절지도]를 잘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장승업의 그림 중에는 [기명절기도]가 많이 남아있다.

심전 안중식은 오원 장승업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고종의 총애를 받는 화가이면서 마지막 궁중화원이었다. 안중식은 도화서에서 전통 진채기법을 익혔고 중국에 가서 서양화법까지 배웠다.
[도원문진도]같은 화원풍의 그림도 그렸지만 스승의 영향으로 [기명절지도]도 많이 그린다.
이러한 흐름은 안중식의 화풍을 이어 받은 이도영까지 연결되다 조선이 망하고 서양의 정물화가 들어오면서 사라진다.

▲ 안중식/기명절지도/비단에 채색/46.2*211.4/1914년/국립중앙박물관.
묵화, 남종화풍, 화원풍의 형식이 결합된 그림이다. 조선이 망한 이후에 창작한 그림이다보니 아무래도 인문학적 내용은 축소되고 대신 길상적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장승업은 숱한 [기명절지도]를 창작하면서 [백물도]라는 새로운 형식의 그림을 창안한다. 마치 단원 김홍도가 [다보각경도]를 바탕으로 해서 [책가도]를 창안한 것과 비슷하다.
[백물도]의 뿌리는 [기명절지도]에 있지만 세로그림을 가로그림으로 바꾸거나 문인화풍의 수묵을 결합하여 사의성을 높였다. 무엇보다 중국풍의 도자기나 골동기를 가급적 제외하고 책과 문방구, 수석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사물을 넣어 인문학적 내용을 보완한다.
형식에서는 화원풍의 그림과 문인화풍의 결합하였고, 내용에서는 길상적 상징이 붙은 사물과 인문학적 상징이 붙은 사물을 결합해 조화와 균형을 잡은 것이다.

북한미술의 [백물도]

▲ 정창모/풍요한 가을/69cm*140cm/수묵담채/2004/북한.
사의성과 즉흥성이 강한 몰골기법으로 그렸다. 이런 기법은 조선 말기 남종화풍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한다. ‘풍요한 가을’이라는 제목처럼 배추, 감, 마늘, 고추, 밤, 무, 국화 따위를 그렸다. [자료사진 - 심규섭]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는 북한 미술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정창모 화백은 조선화를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북한의 조선화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기에 사상성이 뚜렷하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사물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멋있게 표현한다.

북한은 조선시대를 봉건왕조국가로 규정하고 사대부 문화를 퇴폐적이라고 규정했다. 북한미술은 사군자와 같은 문인화를 싫어하고 몰골법 같은 사의성과 즉흥성이 강한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정일 시대부터 이런 그림이 대가들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최근에는 추사 김정희와 [세한도]같은 그림도 재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정창모 화백이 몰골법과 수묵, 채색법으로 그린 이런 형식의 그림을 북한에서는 뭐라고 명명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판 [백물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그림의 제목은 ‘풍요한 가을’이다. 얼핏 보면 특별한 내용이나 형식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은 겉보기와 달리 복잡한 미학적, 조형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첫째, 수묵과 담채, 몰골법 따위는 다양한 개인성과 지성을 상징한다.
같은 소재, 같은 기법으로 같은 작가가 그려도 달라지는 것이 수묵을 사용한 몰골법이다.
따라서 그림 속의 개인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사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림 속에 담긴 내용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상당한 지성이 결합되어야 한다.
흔히 북한 전체주의, 집단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영웅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인적 영웅과 집단적 사회는 서로 상극이다.
결국 집단성과 개인성 사이의 역할분담과 균형에서 개인성의 역할을 높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창모의 그림 속에는 붓통과 붓,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붓과 대나무는 ‘풍요한 가을’이라는 제목과 아무 관련이 없다. 붓은 북한노동당을 상징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또한 대나무는 북한에서도 변치 않는 신념을 뜻한다. 그러니까 개인의 생각이나 정서를 표현했지만 동시에 그 개인의 생각과 북한 노동당의 생각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적 내용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풍요를 추구하는 [백물도]의 미학적 요소와 동일하다.

셋째, 배추, 무, 고추, 마늘은 김치의 재료이다.
가을은 여러 곡식이나 열매를 수확하는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이다. 그림 속의 사물은 추상성이 거의 없고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김치는 백성들이 먹는 현실적이면서 계급적인 음식이다.
이것은 그림에서 막연하고 애매한 풍요를 표현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인민들의 풍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넷째, [기명절지도]에서 사용하는 전통적인 조형원리와는 조금 다르다.
[기명절지도]에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물이 결합한다. 심지어는 현실에는 없는 영지가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사물은 과도하다고 여길 만큼 많이 겹쳐있고, 시공간의 확장은 절제되어 있다. 또한 제목에 나오는 가을이란 계절에 맞는 사물을 선택했다.
시대가 어렵고 꿈을 이루기 어려울수록 영지, 용, 불로초와 같이 현실에는 없는 사물이 유행하기 마련이다.
결국 그림에서는 꿈과 현실이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창작되었는데 그 당시 북한은 백성들의 풍요를 노래할 상황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병진노선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한다고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감한 그림인 셈이다.

북한에서 [백물도]를 알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한정된 정보 때문에 북한의 미술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창모는 북한미술의 대부이다. 그 아래에서 배우는 수많은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한국화, 북한에는 조선화가 있지만 언젠가 이 둘의 문화적 교류와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백물도]도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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