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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 자존감 회복할 수 있는 기회됐으면”민문연 등, 이준 열사 110주기에 안국동 집터 표석 제막식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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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1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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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 열사 110주기인 14일, 서울 안국동 152번지 해영회관 앞에 이준 열사 집터 표석이 설치됐다. 왼쪽이 이준 열사 집터에 포함되는 안국동 153번지로 지금은 'ANGUK 一五三' 빵집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준 집터

이준(1859~1907)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특사로 파견될 때 살던 집이 있었다. 이준의 아내 이일정이 190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연 곳이기도 하다.

2017년 7월 서울특별시”

1907년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으로 출발했던 이준 열사의 집터에 그의 110주기인 14일, 자그마한 표지석이 자리잡았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2, 153번지 일대, 지금은 덕성학원 해영회관 좌측 앞쪽이다.

이준 열사는 1907년 4월 22일 이 집에서 떠나 서울역에서 부산항을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이상설과 합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 을사늑약의 부당성 등을 알렸지만 일본측의 방해 등으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해 분격을 참지 못한 채 음력 7월 14일 순국했다.

   
▲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집터를 비정하게 된 과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 1927).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이 집터를 비정한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날 오후 1시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린 제막식에서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당시에 특사의 출발지로서 이준 열사의 집터에 대해서는 기존에 안국동에 있었다는 정도만 알려졌고, 구체적인 지번 위치는 최근까지 미확인 상태에 있었다”며 그간 문헌과 현지조사 과정을 설명한 뒤 “소유주 변천 관계를 대조해 본 결과 이준 열사의 집터는 안국동 152번지와 아울러 153번지도 함께 포함한 구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특정했다.

또한 “이 집은 1905년 2월부터 1907년 헤이그사건 직후까지 이준 열사와 가족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소개하고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었던 공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1905년에 이준 열사의 부인 이일정에 의해 개설된 부인상점에 대해서는 황성신문 1905년 6월 16일 소개기사가 남아있다”는 것. 실제로 이 집터를 비정하는데 ‘안국동가로변(현 지나요리점 장송루 자리)에는 일정상회라는 한 부인상회가 생기었으니 그것은 정미년에 해아사건으로 내외의 이목을 경동케 하던 고 이준 씨의 부인 이일정 씨의 경영한 바이다’라는 『별건곤』제16.17호(1928년 12월) 기사가 중요한 단서가 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올해 3월 종로구청을 통해 표석 설치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고, 지난 3월 20일 서울시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표석설치 안건이 확정돼 이날 110주기 기념일에 제막식이 진행된 것.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가 여는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70여 명의 참석자들은 이준 열사 110주기에 집터 표석이 제막된데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준 열사 맏딸 무섭의 손자인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유족대표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사의를 표하고 “후손이라고 해서 덕은 못 보고 피해만 많이 봤다”며 “연좌제보다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이준열사기념사업회를 전횡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이준 열사에 대해 “헤이그에서 할복 자살했다 밖에 모른다”며 월남 이상재, 도산 안창호와 더불어 3대 웅변가였고,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보광학교 설립, 초대 검사보 활동, 개혁당 활동 등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는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며 “2017년 우리 시대에 새로운 특사, 이준 열사의 삶과 정신을 주변 분들에게 알리는 주역이 돼야겠다”고 당부했다.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이준 열사의 발자취를 찾아 방대한 문헌자료를 조사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여러분들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드린다. 표석 설치의 장소를 제공해준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에게도 고마운 말씀을 전한다”고 인사하고 “일성 이준 열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우리는 이 표석의 설치를 통해서 더욱 지향하고 우리의 미래의 지표로 삼아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임 덕성학원 이사장 직무대행은 “이준 열사의 집터가 우리 덕성학원 산하건물이라는 데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면서 “오늘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 집터 표석이 역사교과서를 입맛대로 바꾸려 시도하고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반민족적 행위들을 넘어 우리사회의 상식회복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제막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박원순 시장(오른쪽)이 함세웅 신부와 박상임 덕성학원 이사장 직무대행 등과 함께 덕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 미처 다하지 못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독립국가 대한민국의 부끄럼움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민족문제연소에 고마운 마음이다”고 사례하고 “우리들이 할 일이 있으면 서울시도 함께 이런 일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시장은 특히 “2년 후면 2019년 3.1만세 그리고 상해임시정부, 건국 100주년이 돌아오는데 이 일을 계기로 해서 새로운 정부가 취임했으니까 이런 많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우리가 정말 독립국가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도 “종로구는 많은 역사적 흔적들, 문화적 흔적들,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곳들이 너무 많다”며 “이 시설들이 더 잘 관리되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편하게 보실 수 있도록 잘 안내하고 잘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이양재 리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이 제막식에 앞서 전시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1920-30년대 광목에 그려 실전에서 사용한 태극기(오른쪽), 혈흔이 선명하다. 왼쪽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광목 위에 찍어 100부를 제작한 태극기.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제막식 기념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해영회관 전면 좌측에 마련된 표석 앞에서 제막식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편, 이날 제막식장에는 이양재 리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이 ‘이준 열사와 그의 동지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개최, 1920-30년대 독립군 태극기와 이준 열사 친필 유묵, 이준 열사 부인 이일정 여사의 기고문이 실린 <동아일보> 창간 3호(1920.4.3), ‘105인 사건 검찰 조서’ 원본 2책 등 50여 점의 자료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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