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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어온 평화와 연대의 다짐, '이제 다시 시작이다'<참관기> '미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평화 네트워크 오키나와 회의' -안김정애
안김정애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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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2  1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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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지난달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 일본 오키나와에서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평화 네트워크’(International Women's Network Against Militarism, 여성평화네트워크) 제9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1997년 오키나와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스무 돌을 맞이하는 회의이다. 

그동안 서울을 비롯하여, 마닐라, 샌프란시스코, 괌,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2년 내지 3년 간격으로 개최되었고 이번 회의는 지난 2012년 푸에르토리코 회의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것이었다.

최초 개최지인 오키나와에서 20년 만에 다시 개최된다는 의미가 있어 여러 모로 이번 회의는 <류쿠 신보> 등 현지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 8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평화 네트워크' 제9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사진-안김정애]

 
오키나와 여성평화네트워크의 약사(略史)

오키나와와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이었고, 그 결과 방대한 미군기지가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오키나와는 슬픈 섬이다. 일본 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오키나와를 미군과의 교전에서 본토 방위를 위한 최후 방파제로 이용하였다. 주민들을 징집하고 결사항전을 독려하여 전쟁의 총알받이로 이용하면서 자결을 강요하기도 했기 때문에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야 했다. 

전후에도 일본 본토의 부속 식민지처럼 취급 당해 온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국토의 0.6%에 불과한 면적이지만 재일 미군기지의 75%가 이곳에 집중돼 있다. 지금도 오키나와 현청이 있는 나하시 한복판에 미군 활주로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성평화네트워크는 지난 1995년 9월 오키나와에서 세 명의 미군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강간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분노한 오키나와의 평화 여성들이 이를 알리기 위해 미국 본토를 방문하여 전 지역을 순회하면서 일-미 안보조약의 부당성 등을 알리는 과정에서 출범하게 되었다.

오키나와 여성들이 제기하는 군사기지의 문제점에 공감한 미국 본토의 반군사주의 여성들이 연대하고 여기에 대한민국과 필리핀, 과한(괌),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등 미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여러 지역에서 뜻을 함께 모으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은 전 세계 135개국에 1,000 여 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20 여 만 명의 군인을 파견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에 각각 28,500명과 39,000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여성평화네트워크는 세계의 미 군사기지가 여성인권 침해, 환경 오염, 폭력 문화 조장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이슈화하기 위한 의견을 나누는 장이다.  
   
'군사주의 저항ㆍ지속가능한 미래 만들기' 주제

이번 회의는 '군사주의에 저항하고 지속가능한 미래 만들기'(Challenging Militarism and Creating a Sustainable Future)라는 큰 제목아래 진행됐다.

소그룹별로 진행된 토론은 △군대와 성폭력(Military and Sexual Violence) △탈식민지화와 경제적 자립(Decolonization and Economic Autonomy) △군사주의에 저항하기(Challenging Militarism) △군사기지와 환경파괴와 보존 문제(Military Bases and Environmental Destruction and Protection of Environment) △안보 개념의 재정의(Redefining Security/Laws and Agreements) 등 주제아래 심층적인 토의가 이루어졌다.
 

   
▲ 각 지역 보고서 발표시간. [사진-안김정애]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하와이, 미국, 오키나와, 일본 본토 등 총 8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30 여 명의 외국인이 참여했다.
  
평화여성회는 초창기부터 멤버로 참여하였고, 이번에도 기지촌 여성인권단체인 두레방, 햇살사회복지회와 강정평화지킴이, 전쟁없는세상,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과 함께 총 10명의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신민시, 안김정애 두 사람이 참여하였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계 염원

6월 22일 
미리 도착한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오전 오키나와 현청 공보실에서 <류쿠신보>, <오키나와 타임즈> 등의 언론과 이번 회의의 목적과 내용 등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각 국의 군사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경우 현재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어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 반대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는 오키나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개인 박물관을 방문하여 관람하였다
  
저녁에는 오키나와 전통무용 관람과 참가자들 소개가 있었다. 한국 대표단은 기타 반주에 맞추어 ‘바위처럼’을 부르며 열심히 율동을 했고 역동적인 움직임 덕분인지 큰 박수를 받았다.
 
6월 23일
오전에는 지금 한국 기지촌 여성문제를 다룬 이고운 감독의 ‘Host Nation'이 상영되었다. 영화는 주로 필리핀 여성들로 채워지고 있는 지금 한국의 기지촌을 다루고 있는데, 3년여에 걸쳐 유흥비자를 둘러싼 한국 브로커와 필리핀 현지 여성 조달 브로커를 추적한 다큐멘터리이다.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한 이고운 감독의 설명과 이후 간간이 이어진 촬영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보니 기지촌 여성의 문제가 아직도 구조적인 수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미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기지촌 문제는 아주 보편적인 여성인권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 상영 직후 오키나와 전쟁 종료일(1945년 6월 23일) 추모행사를 위해 마부니 평화공원을 향해 떠났다. 평화공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키나와의 전후 역사와 좌우로 보이는 미 군사기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군기지와 그 안에 자리잡은 미국식 건물들은 한국 땅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평화공원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뙤약볕 아래서 다시는 참혹한 전쟁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과 교훈을 나누는 것을 보니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공원 한 가운데서 열리는 종전 기념 행사를 참관했다. 

각 지역 대표단은 왜 오키나와에 왔는지, 바람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이야기하고 다시는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원한다고 발언했다.

우리가 가지고 간 플래카드에는 “군사주의 반대, 여성의 힘으로 만드는 평화, No Militarism Yes Peace", "군사기지는 진정한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바다를 건너 온 우정과 연대 : 우리는 함께 일어난다, 외친다, 군사주의에 저항한다”라는 평화와 연대의 다짐이 적혀 있었다.

오키나와 대학 세미나실로 돌아 와서 본 오키나와 역사에 대한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영상은 미국의 시각에서 만들긴 했지만 오키나와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 헤노코 신기지 건설현장을 방문해 평화 염원을 담아 연대의 응원을 하고 왔다. '군사기지는 진정한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사진-안김정애]

6월 24일
오전에 헤노코 신기지 건설 현장을 방문하였다. 계속되는 군사기지 건설에 20년째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오키나와인들의 꾸준한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 대표단도 배에 올라 현장 가까이 가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방위국은 작업을 지금 중단하라”, “헤노코 기지 건설 결사반대” 일본 해상자위대와 경찰은 계속 우리 옆을 맴돌며 촬영과 경고 방송을 내 보냈다. “듀공을 구하라(Save the Dugongs)"는 플래카드를 들고 카약을 타고 기지현장으로 떠났던 수십 명의 시위대는 해상자위대에 체포되어 1시간 동안 억류 후 풀려 나기도 했다. 육상 현장도 방문해 힘 내라는 응원을 전하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전직 미 해병대원이 오키나와 여성을 납치, 강간, 살해한 현장을 방문하여 추념식을 가졌다. 미 군사주의에 의해 희생되는 여성은 어느 나라에나 있었고 우리나라의 기지촌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그 위에 포개지는 유사한 그림은 작년에 한국에서 발생한 ‘강남역 여성 혐오 살해 사건’이었다. 군사주의와 여성의 불안, 비안보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오후에는 △군사주의와 성폭력 △탈식민지화와 경제 자립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 △군사기지와 환경문제 △안보의 재정의 등 5개의 비공개 그룹 토론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선택하여 참여했으며, 각 지역이 처한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6월 25일
오전에 오키나와 대학에서 지역보고서 공개 발표가 있었다. 오키나와 인들과 현지 언론, <도쿄 타임즈> 등 여러 언론사가 참석한 가운데 처음 순서로 대한민국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마침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이 되는 날이었고, 122명의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가 발표한 보고서는 2012년 푸에르토리코에서의 8차 회의 이후 최근까지 여성들의 평화운동사를 정리한 것으로, 먼저 작년 10월말부터 있었던 ‘촛불시민혁명’과 5월 대선, 그리고 새로운 민주정부에 대한 기대 등을 소개하였다.

뒤이어 △탄저균 반입 반대 △강정기지 건설 반대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 △사드배치 반대 △유엔결의안 1325 입법화 및 국가행동계획 수립 촉구 △여성평화걷기 등에 대해 소개하고 현재 우리가 원하는 것은 “No THAAD, No Nukes, Peace Treaty"라는 호소로 발표를 마쳤다. 

이어지는 괌,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등의 지역 보고서들에서는 여전히 미 군사기지의 폐해와 군사주의 문제, 국방비 문제, 지배층의 친미행태, 환경파괴 문제,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 선주민의 자유와 독립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그나마 기쁜 소식은 푸에르토리코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35년간 미국 감옥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가 석방되었다는 것이었다. 2012년 회의 때 그를 위한 성명서를 작성하고 각국 대표들이 서명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바마가 퇴임하기 직전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하는데, 특정인의 자비에 기댄 석방이 과연 기쁘기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평화의 외침이 무용지물은 아니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운동은 계속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점심시간에는 강정마을의 기지건설 반대 평화투쟁을 담은 ‘스물 다섯 번째 시간’ 영상물 상영이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꿋꿋이 낙천적으로 강정마을을 지켜내고 있는 평화활동가들의 행동과 육성을 영상으로 보고 들으며 여러 나라의 활동가들도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오후에는 공개 그룹 토론이 열려 6월 24일에 있었던 비공개 그룹 토론을 이어 갔다. 일반 남성과 기자들도 참여하여 24일보다 커진 그룹 토의를 이어갔는데, 주로 오키나와 현지의 문제점과 어려움을 각국 대표단이 듣는 상황이었다. 저녁에는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뒷풀이 시간을 가졌다. 

우리 대표단은 다시 ‘바위처럼’을 열창하며 신나는 율동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6월 26일
마지막 날이라 오전에는 전체 평가 및 행동계획 토론이 있었고, 오후에 발표할 전체 성명서를 다듬고 수정하느라 분주했다. 오후 3시에는 첫 날 기자회견을 가졌던 현청 공보실에서 2차 기자회견을 가졌다. 

각 대표단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동안 수고한 오키나와 주최 측에 커다란 헝겊그림을 선물하는 것을 시작으로, <류쿠 신보>, <오키나와 타임즈>, <도쿄 타임즈> 등 언론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기자회견은 성명서 발표와 질의 응답으로 이어졌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평화여성들이 펼친 미 군사주의 반대를 정리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니 남다른 감회가 밀려들었다. 현청 로비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시간은 숙연하고 뭉클하고 아쉽고 섭섭했다. 그래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우리가 평화의 연대로, 자매애로, 반군사주의로, 인류애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며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말, 덕담을 나누었다.

평화, 인권, 자유, 평등, 자존감, 신뢰, 우정, 꿈...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여성의 힘으로, 이땅 한반도와 전 세계에 평화의 기운이 깃들기를 기원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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