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기대를 갖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남북관계라 할 것이다. 이전 정권의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을 개척해야 할 과제가 새 정부에게 부과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길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북의 계속되는 미사일 시험과 미국의 거듭되는 제재와 압박이라는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부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로 지난 주 있었던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제 막 운전석에 앉았는데, 운전을 하기도 전에 운전대를 흔드는 꼴’이 되었다.

이전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인정받고, 이제 막 구체적인 정책을 가다듬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괘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북도 어엿한 주권국가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구상하는 전략과 전술이 있을진대 ‘우리의 희망’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라 할 것이다.

다른 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의지와 능력’이 요구된다. 의지란 고집이 아니며,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라 할 것이고, 능력이란 다름 아닌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예술적 방법을 말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현 정부가 맞닥뜨린 과제는 다름 아닌 의지의 일관성을 지켜나가면서, 자신의 정책을 예술적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는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살펴보자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와 내용은 차고 넘쳐났다. 그런데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 즉,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거나 단지 ‘우리의 희망’을 말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래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또 하나는 과거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난 담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와 같은 인도적 지원과 민간단체의 교류 등을 통해서 북에 접근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 민간단체가 북과의 접촉 승인을 받아 일부는 북과 협상하여 공동행사를 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장소 등의 문제로 결국 따로따로 행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또 일부는 북에 대한 지원을 북으로부터 아예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과거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당연히 지난 10년 동안 우리도 변했고, 미국도 변했고, 주변국들도 변했으며, 무엇보다 북도 그만큼 변화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에 안주해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담대한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 과거의 익숙했던 방식이란 다름 아닌 경제와 안보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즉, 북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경제적 지원을 통해 보상하는 방식의 교환이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핵과 미사일을 체제안보와 북미관계 정상화 등과 교환하는 방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시작은 경제와 안보를 교환하는 방식이었고, 그것이 북을 협상장이나 남북대화로 이끌어내는 주된 지렛대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경제-안보의 교환논리가 마치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최근 세계태권도대회에 참석한 북의 태권도 시범단 앞에서 대통령이 말한 체육교류와 단일팀 구성 등의 제의에 대해 장웅 IOC 위원의 반응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한 북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장웅 위원은 스포츠가 남북교류를 주도하고 물꼬를 튼다는 기대를 아예 ‘천진난만하거나 절망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 교류의 문제에서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북의 접근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사실, 이러한 남의 태도와 북의 반응은 그간 수 십년간 진행되어온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남의 기능주의적 접근에 북의 정치 우선주의적 접근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이 기능주의적 접근을 아예 거부하거나 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북이 거부했던 것은 남북관계의 정치군사적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놓는 것이었다.

이를 포함하여 최근의 상황은 더 이상 이러한 경제-안보의 교환 논리가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북이 요구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은 전형적인 안보-안보 교환의 시작점이라 하겠다.

이미 중국에 의해 ‘쌍중단’이라 이름붙여진 동결과 훈련 중단(혹은 축소)은 과거와 같은 경제-안보의 교환이 아니라 안보-안보의 교환을 통해 대화의 입구를 찾아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은 이러한 안보-안보 교환의 첫 시작점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를 포함하여 남북간에 현안이 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문제에 대한 주동성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쌍중단으로 표현되는 ‘안보-안보 교환의 논리’를 넘어서는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교류와 협력을 뒷전에 놓자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남북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하고, 또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안보가 단지 군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 때, 남북의 경제협력은 또 다른 안보의 증진을 위해서 필수적인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문제를 뒷전에 놓거나, 경제나 사회문화적 협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북미간 정치-군사적 대결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군사적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핵심문제이다. 따라서 문제를 풀기위한 첫 시작부터 ‘안보-안보의 교환’이라는 방식으로 출발해야 한다.

북은 5차례의 핵실험과 올해 들어서만 10차례가 넘는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해왔다. 그때부터 북이 내놓는 주장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 정책’이 있는 한 결코 자신들의 핵억지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금번의 ICBM의 발사 후에도 이와 유사한 주장들을 내놓고 있다.

우리에게는 중대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북이 요구하는 적대시정책의 철회 즉, 자신들의 안보에 상응하는 안보를 제공하거나 교환된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안보-안보의 교환에 바탕하여 더욱 담대한 구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지금 당장 ‘안보-안보’ 교환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와 문화 등의 교류와 협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어차피 남북관계 앞에 놓인 길은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하지 못하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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