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출해 보지 못한 청소년은 100살을 살아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러시아 속담)


 수업
 - 김진경

 일요일 저녁
 텅 빈 운동장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렇지,
 비어 있음이 늘 가장 많은 걸 가르치지


 현장 학습을 가던 도중 한 초등학생이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고 그 아이를 다음 휴게소에 내려 준 후 학부모가 올 때까지 혼자 있게 한 교사를 경찰이 ‘아동 학대’로 조사를 하고 교육청에서는 그 교사를 직위 해제했다고 한다.

 그 교사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휴게소에 혼자 있게 한 것은 분명히 큰 잘못이다.

 물론 학부모가 아이를 휴게소에 내려주라고 했고 그 교사는 ‘현장 학습’이라는 의무를 다해야 했기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9년 동안 교사를 하며 많은 걸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자꾸만 ‘수동적인 교사’가 되어갔다. 교장, 교감, 장학사. 학부모가 무서워졌고 아이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전교조를 하며 전혀 다른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을 ‘모범생’이라는 기준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일요일 저녁/텅 빈 운동장 구석에/한 아이가/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런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지,/비어 있음이 늘 가장 많은 걸 가르치지’

 저 아이는 지금 ‘최고의 수업’을 받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하고 권장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동적인 교사가 된다.

 지금처럼 관료적인 체계에서는 말단에 처한 교사는 비상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아이는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본 것이 너무나 창피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장 학습을 포기하고 휴게소에 내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버스 기사는 버스를 갓길에 세우는 게 위험하다고 거절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게 뭐 그리 창피한 일인가?

 지금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림대상이 된다고 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이리도 슬프게 되었다.

 입시 위주 교육에서 교사들은 학원 강사가 되어 간다.

 교사는 아이들이 겪는 모든 것들을 아이가 성장하는 교육적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

 항상 독수리의 눈으로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사는 지금의 학교 교육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사건이 교육 당국,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범적이지 않은 아이들을 따스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교사가 간절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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