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6월 창설, 56년의 역사를 지닌 조직. 세 차례 이름을 바꾸고, 네 차례나 원훈을 갈아치우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려고 했지만 여전히 56년전 그대로인 조직. 바로 국가정보원이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던 '중앙정보부(중정)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라는 이름을 거쳐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정보는 국력'이라며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한 번도 비난의 대상에서 비켜난 적이 없다.

창설 이후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를 지나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수술대에 올랐지만 실패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안기부를 개혁하겠다던 김대중 정부,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겠다던 노무현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의 역사는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개입 최전성기를 누릴 토대를 마련했을 뿐이다. 

그런 국정원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칼을 뽑아들었다. 국정원은 지난 1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치개입 논란 등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미래 지향적이고 역량있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라고 이유를 밝혔다.

'국정원 개혁발전위' 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위원 이석범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등으로 구성됐다. 면면으로 보면 이번에는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들은 국정원 국내분야를 축소하고 해외분야를 확대강화한다는 취지에 맞게 '적폐청산T/F'와 '조직쇄신T/F' 등의 조직을 운영한다. 적폐청산T/F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있던 국정원 댓글,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민간인 사찰 등을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쇄신T/F는 정치개입 근절, 해외 및 북한정보 역량 강화 등 국정원 업무 및 조직에 대한 쇄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파트 수사권' 폐지없이 개혁이 가능한가

하지만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국정원 국내파트 수사권까지 건드릴지는 미지수다. 적폐청산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폐단을 파헤치겠다고 하지만, 국내파트 수사권 폐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내 파트와 대공수사권이었다. 국정원이 언제든 국내정치나 선거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1967년 유학생 간첩사건, 1973년 김대중납치사건이나 북풍사건, 안풍사건 등으로 국내 정치에 깊숙히 개입해 온 과거가 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사건,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사건, 서울시 공무원간첩조작사건, 서해NLL 대화록 공개 등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절정에 이르렀다.

오히려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국정원법 제3조와 제9조 등 정치관여금지 조항을 버젓이 어기기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국내 수사권 폐지를 과감히 건드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개혁위가 과연 몇 가지 사건을 조사한다고 개혁이 될 지 의문"이라며 "국정원이 정치개입하지 못 하도록 막아야 하고, 정치개입을 하고 싶은 유혹을 못 갖도록 해야하는데, 결국 법 개정으로 그런 요소를 차단시켜야 하지만, 과연 그 단계까지 나가느냐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의 적폐조사가 국정원의 국내파트 수사권 폐지로 이어질 수 없으니 차라니 국정원법 개정으로 수사권 자체를 빼앗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개혁이 번번이 좌절된 역사를 되풀이 할 수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당시에도 국내수사권 축소 개혁방안이 나왔지만, '남매간첩단 사건' 등 간첩조작 사건으로 수사권은 그대로였고, 김대중 정부는 조직자체를 바꿨지만, 제자리 걸음이었다. 노무현 정부도 '국정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만들고 6권의 조사결과를 내놓았지만, 수사권은 폐지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첫 정보기관 수장이 된 서훈 국정원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언제까지나 수사권을 가질 수는 없다"면서도 "현 상황에서 대공수사를 가장 잘 할 기관은 국정원이다. 수사권의 국가 전체적 조정과 재편의 관계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말해, 수사권 폐지가 당장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국정원 법 자체를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일반경찰이나 검찰이 수사활동을 하고, 국정원은 말그대로 정보수집만 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법 개정으로 국정원은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에 대한 판단과 정책수립은 헌법 상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다뤄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국내파트 수사권 폐지는 물론, 국정원의 기획조정업무를 폐지하고 예산에 대한 감시기능 강화라는 인식을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정원, 적폐세력 인적청산하는 과감한 '뇌 수술' 필요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개혁에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은 기대보다 회의적이다.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제아무리 과거정부 적폐를 조사해 밝히고, 조직쇄신으로 국내파트를 약화시킨다 하더라도, 56년 동안 묵혀있는 적폐세력 청산으로 갈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번번히 좌절된 국정원 개혁이라는 그림만 화려한 병풍 뒤에는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혁 반동세력이 국정원 내에 존재하고, 그래서 인적 청산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적폐청산T/F'가 과거 정부 정치개입 사건 조사에 그치느냐,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자 처벌로까지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다.

장경욱 변호사는 "(개혁발전위에) 기대는 갖고 있지만, 과거 정권 시절에 대한 조사범위가 어느 수준까지 가느냐를 지켜봐야한다. 진상을 규명해 검찰이 수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단계로 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진상규명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잘못을 저지른 국정원 직원들에게 잘못을 묻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개혁인가"라며 "이들에 대한 잘못을 물을지 아닐지가 정해지지 않아 현재까지 개혁발전위에 기대반 우려반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래군 상임이사도 "분명히 국정원 내부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항하는 이유자체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수사권을 마음대로 휘둘러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범죄이고 이를 저지른 범죄자를 퇴출시킨다는 대수술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국정원 직원과의 전쟁' 수준까지도 제언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과거사위'는 국정원이 저지른 과거 범죄사를 들추는 '40년 역사 고해성사'에만 그쳤다. 그리고 반성과 사죄, 책임자 처벌이라는 범죄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국가안보를 위한 일에, 잘못은 저질러도 책임지지 말라'는 인식을 국정원 직원들에게 심어줬다.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다시 9년 동안의 국정원 범죄를 들추는데 그친다면, 맷집만 좋은 국정원을 만드는 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간인 사찰, 정치와 선거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4대 공안 범죄를 국정원 개혁을 통해 근절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다. 어설픈 '국정원 개혁발전위'의 개혁안에 기대기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잘 공약을 이행하는가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개혁발전위가 어떤 개혁안을 내놓든지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느냐 아니냐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개입에 일임한 직원들에게 낚싯밥 던지듯 하면 안된다. 조직을 바꾼다고 개혁이 되는가. 엄청난 결단으로 밀어붙어야 한다"고 이재승 교수는 강조했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담당관을 폐지했다. 그리고 해외정보분석국장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북한정보분석국장에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을 사실상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설립 이후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최근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는 국정원 개혁 8개 법안을 제출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개혁법안이 통과될지 아직 알 수없다. 여기에 서훈 국정원장이 국정원 개혁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개혁을 위한 4대 공약을 이행할지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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