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닿는 곳에 위치한 한반도는 안보불안을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 왔다. 한반도의 주인인 한민족은 같은 반도국가인 그리스나 로마처럼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하였다. 물론 고구려는 한때 중원을 넘보기도 했지만 강력한 중국에 의해 패퇴당하였다. 그 결과 한민족의 영토는 한반도로 한정되었고 늘 주변국의 침략을 걱정해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우리 선조들은 안보 유지를 위해 중국친화적인 정책을 폈다. 중국 왕조에 편승하여 여타 대륙세력과 일본을 견제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서 중국은 우리를 보호하여 주지 못하였다. 우리는 쓰라린 일제 36년을 겪었다. 심히 분통한 것은 일제 36년으로 인해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난 사실이다. 북쪽은 대륙세력에 의해 남쪽은 해양세력에 의해 점령당하였다.

이후 우리 민족의 소원은 통일이 되었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만의 노력에 의해 달성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국 특히 중국과 미국의 의지 및 국가이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가 되었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 죽자 사자 통일을 하겠다면 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현실성이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남북한이 멀어져도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위 주변 4강은 한반도 통일에 대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다. 현상유지를 통해 얻는 것이 너무 많은 데 굳이 통일을 시켜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북통일을 시켜주었다가는 괜히 호랑이새끼를 키운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대국들은 일제시기부터 동방의 조그만 나라 한국의 분단을 생각하였다. 1945년 얄타회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한반도 분단은 이미 1592년 임진왜란 직후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근대에까지 이런 발상이 잔존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족 분단 72주년이 다가오는 즈음 출범 2개월도 안 되는 문재인 정부는 중요한 난제들을 앞에 두고 있다. 국내 문제는 차치하고 북핵 및 사드 문제를 중심으로 소위 주변 4국의 ‘스트롱 맨’들과 일합을 겨루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하지만 거한들과의 싸움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로서 쉬운 것이 아니다.

최고의 군사력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돈키호테’ 트럼프, 원·명·청시대의 천자를 꿈꾸는 ‘몽상가’ 시진핑, 짜르시대의 황제를 꿈꾸는 ‘음흉한’ 푸틴, 제2의 ‘대동아공영시대’를 희구하는 ‘2중인격자’ 아베, 강대국은 아니지만 ‘미친척하는’ 김정은 등은 누구하나 쉬운 상대가 없다.

문 대통령과 그 막료들은 거대하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설프고 빈틈이 보이면 그 즉시 KO패 당할 수가 있다. 체급이 전혀 다른 상대와의 대결을 위해서는 절대로 혼자 싸워서는 안 된다. 각종 합종연횡 전략이 구사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에게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공조를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에게는 미국 및 일본과의 공조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조합이 나와야 한다.

강자와 ‘강 대 강’으로 맞서는 것은 금물이다. 약자는 철저히 아웃복싱을 해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비공식 국가인 IS가 있고 공식국가로는 북한이 있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외교관의 표상이 된 고려 시대 서희는 10세기 당시 발해를 멸망시킨 강대국 거란과 당당히 맞서 강동6주를 확보하였다. 19세기 말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능수능란한 동맹외교를 통해 독일을 구해냈다. 20세기에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이 현란한 약소국 외교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다.

1500년대 초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는 자기 조국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서는 위대한 군주가 필요하고 그 군주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군주상은 국내 통일을 위한 것이었지만 국제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문 대통령은 6월 29일 미국에서 첫 번째 빅매치를 치른다. 섬 출신인 문 대통령이 프랑스 코르시카섬 출신인 나폴레옹처럼 흘깃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전술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글래디에이터(Gladiator)가 되길 기대해 본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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