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기자(kjw@yonhapnews.co.kr)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가운데 북한과 미국이 조만간 고위급 정치회담을 열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권내에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25-26일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첫 국방장관회담 합의서 ④항에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주변의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를 개방해 남북 관할지역을 설정하는 문제는 정전협정에 기초해 처리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남북 군 당국은 또 제주회담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함으로써 남북 분단체제 유지의 근본 토대인 정전협정이 남북간 화해 협력 및 긴장완화가 진전되면서 서서히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것임을 예고했다.

또 회담에 앞서 주한 토머스 슈워츠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23일 조성태 국방장관에 서신을 보내 DMZ와 관련한 북측과의 협상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남북 분단체제 유지의 법적 권한이 유엔사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가 북-미 양국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경의선 철도 복원이나 도로 개설 등 MDL과 DMZ를 관통하는 각종의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해서는 유엔사를 대표하는 미국이 남측에 협상권을 위임할 수는 있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까지 남측이 미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27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김계관(金桂寬)-카트먼 회담이 주목을 받는 것도 바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연관돼 있다.

북한과 미국 양측이 이번 회담을 시작하면서 현지 언론들은 지난 4월로 예정됐다 무산된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사일 개발과 수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현안을 일괄 타결하기 위한 정지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지난 5월말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의 대담에서 "김용순 비서 등 고위 인사를 미국에 곧 보낼 것"임을 밝힌 바 있어 이번 김계관-카트먼 회담은 이를 위한 사전 조율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곧바로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논의될 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미국 역시 작년 `페리보고서` 이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약속한 만큼 북한이 휴전 이후 줄기차게 요구해 오고 있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계속 도외시할 수는 없다.

또한 `북-미 고위급회담`은 정전협정 제4조 60항 `쌍방관계 정부들에의 건의`에 명시돼 있는 `고위 정치회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해 `고위의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마자 이 `고위 정치회의` 소집을 요구해 마침내 이듬해인 54년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 프랑스, 미국, 영국 등 각국이 `조선문제의 평화적 조정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미군과 중국군 동시 철수 및 남북 동시 선거에 관한 북한측의 주장을 무시, 중국군 일방 철수 및 북측 지역만의 선거를 고집함으로써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결렬됐다.

북측은 58년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중국 역시 이를 수락, 이 해 10월 26일까지 철군을 완료함으로써 정전협정 의무를 이행했으며 이후 북측은 미국에 대해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과의 대화를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더이상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호전되고 있어 2000년내 열릴 북미 고위급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종의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21일 중앙일보와의 회견에서 "내년 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때 남북한 `평화체제`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될 것"이라며 "(남북이)`평양 합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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