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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 세움이 재조산하의 첫걸음이다<칼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환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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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1  0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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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2개월이 넘었다. 발 빠른 행보를 통해 장시간의 국정 공백을 무난히 넘긴 듯하다. 대미, 대중, 대일 관계도 우려했던 만큼의 돌발 변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북 관계 역시 극도의 긴장은 해소된 듯하다. 반면 뚜렷한 돌파구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10 민주항쟁에 대한 관심도 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참여와 열기로 의미를 되새겼다.

문득 지난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다시 떠올려 본다. 그 중에도 서로 간의 지향가치를 대변했던 하나가 사자성어다. 문재인의 재조산하(再造山河), 홍준표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안철수의 마부위침(磨斧爲針), 유승민의 불파불입(不破不立), 심상정의 석과불식(碩果不食) 등이 그것이다.

특히 당선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재조산하’라는 말은, 한 동안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회자되었다. ‘재조산하’란 한마디로 ‘나라를 다시 추스르라’는 의미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행인(行人) 사헌(司憲)이란 인물이 언급한 말이다. 즉 그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조선에 보낸 자문(咨文) 내용에 나오는 글귀다. 엉망이 되어버린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로 만든다는 의미야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그 ‘재조산하’가 ‘재조지은(再造之恩)’, ‘재조번방(再造藩邦)’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명명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칭하는 중국의 명칭도 ‘항왜원조전쟁’이다. 임진왜란 당시 그들은 천조(天朝)의 사신인 천사(天使)와 천조의 군대인 천군(天軍)으로 조선에 왔다. 하늘을 대신하는 천자(天子)의 이름으로 번방(藩邦)을 지키러 온 것이다.

‘재조번방’이란 중화(中華)의 국가인 중국이 번방의 종속국인 조선을 다시 세워준다는 뜻이다. ‘재조지은’ 역시 그 은혜 백골난망이라는 의미다. 임란 당시의 주종 인식이 6‧25전쟁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암시받을 수 있다. 시진핑이 방미 당시 트럼프에게 넌지시 건넸다는 “한국은 중국의 일부다”라는 표현이 우발적 수사(修辭)가 아님을 알게 된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다. 다른 나라 정상이 우리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언사에 대해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기에 급급했다. 국권을 수호해야 하는 부류들부터 최일선의 관료들까지, 그저 핫바지 방귀 날리듯 넘겨버린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관용이 철철 넘치는 것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주인만이 세울 수 있는 가치다. 관용 역시 떳떳한 주인만이 베풀 수 있는 미덕이다. 노예의 가치에서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기대할 수 없다. 노예의 관용은 타협과 아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호들갑을 떤 지도 엊그제다.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에 저항하며 분노했던 시절도 우리의 뇌리에 그대로 온존해 있다. 분명한 것은 동북공정이 일제식민주의사관을 답습했다는 사실이며, 일제식민주의사관은 중화사관을 리모델링한 것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역사에 대한 서술권력을 중국과 일본이 번갈아 가며 지배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조선조 이후 그러한 서술권력의 정신에 충실히 기여한 인물들이 우리의 지도층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의 기초를 닦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국호조(國號條)」을 보자. “해동은 그 국호가 하나가 아니었다. 국호를 조선으로 삼은 경우가 셋이었으니, 단군‧기자‧위만이 그것이다.…(중략)…오직 기자만은 주무왕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에 봉해졌다. 이제 천자(天子, 명태조)가 명하길 ‘조선이란 칭호가 아름답고 또한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그 이름을 근본으로 삼고 하늘을 몸으로 삼고 백성을 다스린다면 후손들이 길이 창성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생각컨대 무왕이 기자에게 명하던 것으로 전하에게 명한 것이니, 그 이름이 이미 바르니 말이 순리에 맞다.…(중략)…조선이란 이름이 천하 후세에 알려진 것이 이와 같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이미 계승하였으니, 기자의 선정 또한 마땅히 도모해야 할 것이다. 아! 천자의 덕도 주무왕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전하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것이 있겠는가? 장차 홍범지학(洪範之學)과 팔조지교(八條之敎)가 금일에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공자께서 ‘나는 그 나라를 동주(東周)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정도전이 지향한 조선은 한마디로 중화의 뿌리인 주나라였다. 조선의 모든 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후일 일제가 수많은 자료들을 수거하며 정체성 말살에 광분했음에도 『조선왕조실록』을 온존시킨 이유를 곱씹어볼 때다. 중화에, 중화에 의한, 중화를 위한 나라가 조선이었음을 일깨워 준 관찬사서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우리 역사서술의 권력을 거머쥔 일제 역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조선반도사편찬요지(朝鮮半島史編纂要旨)」에서 다음의 지침을 하달한다. “조선인은 여타의 식민지의 야만미개한 민족과 달라서, 독서와 문장에 있어 조금도 문명인에 뒤떨어질 바 없는 민족이다.…(중략)…오히려 옛 역사를 강제로 금하는 대신 공명적확한 사서로써 대처하는 것이 보다 첩경이고 또한 효과가 더욱 클 것이다. 이 점을 조선반도사 편찬의 주된 이유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서적의 편찬이 없다면 조선인은 무심코 병합과 관련 없는 고사(古史), 또한 병합을 저주하는 서적만을 읽는 일에 그칠 것이다.…(중략)…이와 같이 된다면 어떻게 조선인동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내용이다.

일제가 조선사를 편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제에 노예가 되는 조선사’, ‘일제에 굴복하는 조선사’, ‘일제에 순종하는 조선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성이 아닌 타율성론을 부각시키고, 발전성이 아닌 정체성론을 강조하였다. 또한 단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이 아닌 복속된 열등민족으로서의 시혜의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 일제의 식민주의사관이다.

그러한 서술권력에 굴복하고 숨죽인 이들 누구인가. 세칭 지도자요 권력가요 지식인들이었다. 조선조 중화의 가치에 거스르는 일은 사문난적이 된다. 곧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 기다렸다. 일제강점기 식민주의사관에 저항하는 일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이 된다. 곧 발본색원의 대상이었다.

또한 중화와 일제의 권력이, 혹은 우리 스스로 없애버린 서적은 얼마나 될까. 그 서술권력에 개처럼 기며 알아서 처신하던 이들 얼마나 될까. 더욱이 합리성과 학문성으로 포장된 그러한 서술권력이 과연 퇴출되었는지, 이 시대의 역사서술권력에 묻고 싶을 뿐이다.

올바른 ‘재조산하’는 ‘재조지은’의 감격에서 헤어날 때 가능하다. 그러한 감격은 노예에게는 희열이지만 주인에게는 눈물로 흐른다. 진정한 주인의 희열을 안겨줄 지도자는 없는 것인가. 노예의 굴레를 벗겨줄 지도자는 허황된 꿈인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사필을 휘두른 백암이나 단재의 예를 보자. 그들은 잘못된 역사서술권력에 통으로 부딪치며 저항했다. 시‧공간적으로 중화사관과 일제식민주의사관의 굴레를 부숴버린 것이다. 과연 그들이 꿈꾸던 ‘재조산하’는 무엇이었을까. 주인에, 주인에 의한, 주인을 위한 나라를 바랬을 뿐이다.

이 시대는 피아(彼我)의 구별이 무너진 사회다. 노예의 가치로도 주인 된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노예의 생각으로 주인 된 가치를 사이비라 몰아세워도 공분(公憤)함이 없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이 전도(顚倒)된 난장판이다. 새삼 문대통령이 외쳐댄 ‘재조산하’를 곱씹어 보는 이유다.

그분의 복심에 박힌 ‘재조산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상의 변화에만 머무르는 가치 구호가 아니기를 소망해 본다. 역사의식을 바로 세움이 곧 ‘재조산하’의 본질임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예근성으로 벗어난 진정한 주인 됨이며, 좌우를 넘어서는 본질이요, 통일로 다가가는 첩경이다. 나아가 5년 권력으로 백년 천년의 기반을 다지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새겨주길 바란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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